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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시로코는 쿠페(coupé)다. 대개 해치백으로 생각하지만, 폭스바겐은 시로코를 스포츠 쿠페(Sports coupé)라고 소개한다. 이번에 시승한 3세대 시로코 뿐만이 아니다. 최초의 시로코도 쿠페였고, 2세대 시로코도 마찬가지였다. 골프의 뼈대를 기본 삼아 만든 실용적인 쿠페였다. 비록 1, 2세대에 비해 3세대 차체는 해치백 스타일에 가깝지만, 폭스바겐은 여전히 시로코를 쿠페라고 부른다.

시로코가 가진 의미는 이렇다. 골프의 실용성, 이를테면 유지비나 공간 활용도 등은 최대한 유지한 채, 외모를 섹시하게 가꾼 차다.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골프보다 이것 저것 불편한 부분도 생겼다. 하지만 잔뜩 웅크린 듯 낮게 깔린 모습과 매서운 인상의 앞, 뒤 모습이 모든 불편을 잊게 한다. 섹시한 외모가 시로코의 최고 매력이다.

 

익스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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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이 낮게 깔렸다. 보닛 끝 높이가 차체 높이의 절반에 한참 못 미친다. 지붕 라인은 스티어링 휠 위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후 트렁크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쿠페라곤 하지만 과감함은 없다. 대신 뒷부분은 빵빵하게 부풀었다. 걸터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뒷휀더가 크게 굴곡졌다. 여기까지가 골프와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시로코가 훨씬 섹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골프가 심심한 느낌이라면, 시로코는 역동적이다. 우리는 어쨌든 역동적인 차에 열광한다. 실제로는 얌전한 차를 구입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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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시승한 시로코는 3세대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전에 비해 앞, 뒷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헤드라이트 안에 주간주행등이 들어갔다. 물론 우리가 사랑하는 LED다. 동그란 안개등은 네모나게 바뀌었다. 테일라이트는 크기가 조금 커지면서, 안쪽 모서리를 뾰족하게 날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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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시로코는 R-라인(R-Line) 패키지가 기본 적용됐다. 일반 모델과는 앞, 뒤 범퍼와 사이드스커트 디자인이 다르다. 앞범퍼 하단 공기 통로는 벌집무늬 대신 가로줄로 채워지고, 사이드스커트에는 굵직한 주름이 추가됐다. 뒷범퍼 양 끝단에는 공기 통로를 형상화한 디테일이 들어갔다.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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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분위기는 6세대 골프와 비슷하다(시로코는 6세대 골프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차다. 참고로 지금 판매되는 골프는 7세대 모델). 가장 큰 차이는 딱 두 명만 앉을 수 있는 뒷좌석이다. 옆구리 부근이 볼록하게 솟은 헤드레스트 일체형 시트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두 명이 뒷좌석에 들어가 앉아봤다. 시외버스 좌석만큼 밀착된다. 남자 둘이 타면 우정이 돈독해져 미지의 세계로 진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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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변경을 거치면서 실내 곳곳이 조금 달라졌다. 스티어링 휠은 7세대 골프 GTD의 것과 같다. 그립감은 예전 게 낫지만, 디자인은 깔끔하다. 엔진 회전수(RPM) 및 속도계에는 흰색 띄가 둘러졌다. 애매하게 생겼던 송풍구는 네모로 바뀌었다. 역시 전보다 깔끔하다. 이전보다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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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시보드 중앙에는 스포츠 인스트루먼트 다이얼이 새로 생겼다. 1세대 시로코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왼쪽부터 엔진오일 온도계, 크로노미터, 터보 부스트 게이지 순으로 구성돼 있다. 운전하면서 볼 일은 별로 없었지만, 기분 내는 데에는 훨씬 유용했다. 가속 페달을 조작할 때마다 터보 부스트 게이지 바늘이 정신없이 요동친다. 엔진이 뭔가를 부지런히 하고 있다고 티내는 듯하다. 스포츠카를 탄 기분이다. 뉴 비틀에도 똑같은 게 들어가 있는데, 느낌은 꽤 달랐다. 뉴비틀 시승 때에는 게이지를 볼 때마다 대체 왜 달아놨을까 궁금했다.

 

주행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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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의 파워 밴드가 넓어졌다. 이전보다 더 큰 힘을 보다 넓은 영역에서 고르게 뿜어낸다. 엔진 회전수 상승에 맞춰 차체가 앞쪽으로 쪼오옥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강해졌다. 가속도 한결 시원하고 꾸준하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분명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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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들시프트로 기어를 바꿔가며 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변속 속도가 무척 빠른 6단 DSG(폭스바겐의 듀얼 클러치 변속기) 덕분이다. 패들 시프트를 누르는 순간 변속을 끝마치는 느낌이다. 엔진 회전수를 4500rpm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달리는 것이 가장 즐겁다. 그 이상 사용하면 가속이 늘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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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차감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시야가 정신없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지만, 단단한 편이다. 공사판이나 울퉁불퉁한 도로에서는 다소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장점도 많다. 우선 차의 피드백이 세밀하다. 타이어가 노면과 마찰하는 느낌, 서스펜션의 수축과 이완 등이 잘 전해진다. 이런 성향이 강한 차일수록 운전이 즐겁다. 대신 일상 주행에서는 피곤할 때도 많다. 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시로코는 적정선에서 잘 조율됐다. 운전이 즐겁되 피로감은 적다. 운전 시간이 길어지면 조금 피곤해지긴 하지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서스펜션은 롤링을 부드럽게 시작하고, 이내 탄탄하게 버티는 셋팅이다. 날카로운 맛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스티어링 휠 조작에 대한 반응은 민감하지 않고 적당히 빠릿하다.

 

주목할 만한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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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변경을 통해 엔진 성능이 조금 향상됐다. 2리터 4기통 디젤 엔진이 최고 출력 184마력, 최대 토크 38.7kg.m을 낸다. 이전보다 14마력, 3kg.m씩 높아졌다. 7세대 골프 GTD와 같은 성능이다. 게다가 단순히 최고치만 올라간 것도 아니다. 파워밴드도 넓어졌다. 이전에는 4200rpm에서 170마력이 잠깐 나오는 데 그쳤지만, 부분변경 모델은 3500~4000rpm에서 184마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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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코에 들어간 XDS+와 사운드 제네레이터도 주목하자.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운전 재미를 은근하게 높여준다. XDS+는 차의 코너링 실력을 몰라보게 향상시킨다. 코너를 빠져나오면서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언더스티어를 최대한 억제하며 가속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너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며 가속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때에 따라선 오버스티어가 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없는 차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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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제네레이터는 소리를 이용해 감성을 채워준다. 사운드가 빈약한 디젤 엔진에 인위적인 저음을 살짝 더해 스포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엔진 회전수 상승에 맞춰 ‘보로로롱’ 과 ‘오오오옹’을 적당히 섞은 소리가 나온다. 호불호가 크게 나뉘는 장치지만,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훨씬 매력적이다.

 

종합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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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코는 골프나 제타와 비교할 차는 아니다. 골프 GTI나 GTD 등과 함께 두고 고민해야 한다. 이 둘도 그냥 골프에 비하면 감성적이지만, 시로코는 한 발 더 나아가 있다. 시로코 앞에선 골프 GTI와 GTD마저 이성적으로 고르는 차가 된다. 그만큼 시로코는 기분으로 타는 자동차다. 멈춰있을 땐 섹시하고, 달릴 땐 역동적이며, 빠름 보다는 운전하는 맛을 즐기는 차다. 골프가 너무 심심하다고 생각한다면 시로코를 고르면 된다. 시로코는 2.0 TDI R-라인 단일 모델로 나오며, 딱 4300만 원이다. 골프 GTD는 4240만 원, GTI는 4350만 원이다. 참고로 시로코 2.0 TDI R-라인의 연비는 복합 14.8km/l다. 시승하는 동안 연료 게이지의 3/4으로 500km를 넘게 탔으며, 평균 연비는 12.5km/l 정도 기록했다.

 

참고 링크 : 폭스바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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