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간혹 어디선가 쿵작쿵작 듣기 싫은 음악 소리가 들렸던 적이 있다. 옆 사람의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였다. 거 참, 무식하게도 크게 듣네. 에티켓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볼륨을 필요 이상으로 높여서 그렇지만, 소리가 밖으로 다 새어 나오는 것은 오픈형 이어폰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커널형 이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이어폰이 이런 오픈형이었다. 귓구멍 입구에 살짝 걸치듯 끼우는 방식으로, 이물감이 덜하고 음질도 대체로 맑고 시원한 편이다. 하지만 소리가 밖으로 많이 새고, 동시에 외부 소음도 그대로 다 들린다. 조용한 방 안에서 홀로 들을 때는 참 좋은데, 시끌벅적한 밖에서 듣기에는 힘들다.

 

한 때 오픈형 이어폰 중에서 극강의 매력으로 많은 이를 사로잡았던 제품이라 한다면 B&O(BANG & OLUFSEN)의 A8을 꼽을 수 있다. 스타일리시한 디자인만큼이나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음질 때문인지 김범수, 이승환, 이소라, 박정현, 소녀시대 태연 등 유명 가수들이 무대에서 모니터링용으로 착용해 화제가 되고, 음향기기 커뮤니티에서도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는 물건이었다.

 

지금은 커널형 이어폰이 훨씬 더 많아졌기 때문에 오픈형 이어폰 자체를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B&O A8처럼 상당히 오래 전에 출시됐던 모델임에도 수요가 꾸준하게 존재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분명 괜찮은 오픈형 이어폰은 세상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1MORE E1008

One more, 다시 한 번 1MORE의 제품이다.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커널형과 오픈형 이어폰에 각각 하나씩 랭크가 되었다. 사실 멋진 1MORE 헤드폰도 하나 꼽고 싶긴 하지만, 다른 브랜드와의 공정성을 위해 신중을 기하여 2개까지만 허용하기로 했다. 그만큼 1MORE의 제품은 인상적이다.

 

나는 이 이어폰의 사운드를 ‘절의 종소리’라고 정의하고 싶다. 오픈형 이어폰 특유의 맑은 소리, 산들바람에 흩날리며 청아한 소리를 내는 크리스탈 모빌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맑은 사운드와 1MORE 제품들이 들려주는 특유의 선 굵은 톤이 겹쳐졌다. 크고 묵직한 종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맑은 울림 소리 같다.

 

E1008은 오픈형임에도 불구하고 중저음의 베이스와 비트가 힘차게 치고 들어온다. 음악 소리에 가속도를 붙여 케이블을 타고 마음의 문을 열라고 쿵쿵쾅쾅 귀를 두드린다. 이 정도면 내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겠다. 유닛의 생김새가 마치 자동차의 스파이더 휠을 닮았는데, 그 때문인지 전체적인 소리는 적당한 굵기의 톤에 박력 있는 비트, 그리고 깨끗한 목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세련된 이미지로 완성된다. 사실, B&O의 A8과 같이 멀끔한 인상과는 조금 다르다. 매일같이 세미 정장만 입던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라이더 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온 걸 보는 느낌이랄까? 오픈형 이어폰 특유의 상쾌함에 적당히 힘이 실린 사운드가 새롭게만 들린다. 새벽 공기의 시린 듯한 상쾌함이 느껴지는 곡, The Script의 「Breakeven」을 들어보며 E1008의 매력에 한껏 취해보길 권한다.

 

바깥에서 듣고 다니려 한다면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조용한 실내에서 홀로 음악에 흠뻑 젖고 싶을 때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녀석이다. 멋진 생김새에 이런 소리를 들려주며 가격도 착하니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오픈형 이어폰의 계보를 이어갈 새로운 출입구를 만들었다는 의의도 갖췄다.

 

 

Name : 1MORE E1008
Type : 오픈형
Sound Specs : 1BA + 1DD, 주파수 20Hz – 40kHz, 감도 102dB, 임피던스 32Ohms
Physical Specs : Y형, 3버튼 마이크 리모컨, 케이블 1.25m
Strength : Hi-Res Audio 인증
Release : 2016
Price : ₩110,000
Well-matched song : The Script – 「Break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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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 MONK PLUS Mic-U

국민 이어폰으로 불리던 SENNHEISER MX400을 시작으로, 나는 SENNHEISER라는 브랜드에 꽤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여러 개로 세분화되어 있는 MX 시리즈의 라인업 안에서, 조금씩 자금을 투자할수록 만족도 역시 정비례했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만일의 단선 사태에 대비한 비상용 이어폰으로는 MX400만한 게 없었다. 심플한 생김새에 충분히 발군의 소리를 들려주면서도, 가격도 저렴해서 부담 없이 쟁여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고 오픈형 이어폰 자체를 잘 쓰지 않게 되면서 MX400은 기억 속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져갔지만, 이 오픈형 이어폰 ‘VE MONK PLUS Mic-U’는 다시 예전의 추억을 그대로 불러오는 신기한 녀석이다. 신(新)과 구(舊)의 조화, 그 정중앙에 놓여있는 물건이라고 할까. 생긴 것도 MX400과 상당히 닮았다. 음질도 꽤 비슷한 인상을 준다. 예전에 MX400으로 감명 깊게 듣던 앨범 ‘Lazenca – A Space Rock Opera’를 VE MONK PLUS Mic-U로 다시 들어보면,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당시의 추억을 고스란히 생각나게 한다. 음악은 이래서 시간의 예술이라 불리는 것인가 보다. 단단하고 깔끔하게 울리는 저음과 그 사이에서 부드럽게 스며 나오는 고음. 마치 가뭄에 허덕이고 있는 대지에 촉촉한 단비가 내린 것 같은 느낌이다.

 

추억과의 조우를 위한 또 하나의 곡이 있다. 80년대를 풍미했던 LA 메탈 그룹 Cinderella의 킬링 록 발라드 넘버 「Don’t Know What You Got」이다. 잔향 효과가 잔뜩 들어간 드럼 소리를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펑펑 터질듯한 스네어 드럼 소리의 강렬한 파워는 너무도 매력적이다. 그 사운드 톤 자체가 나에겐 80~90년대를 상징하는 것과도 같다. 오픈형 이어폰 특유의 시원함이 귀에 바람 불 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가운데, 에코가 잔뜩 들어간 목소리와 드럼, 기타, 키보드 연주가 나를 바람에 실어 두둥실 띄워 나른다. 록 발라드 마니아라면, 이 곡을 들으며 심취한 듯 몰입한 표정으로 드럼을 치는 시늉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의외의 음질과 저렴한 가격 외에 또 한 가지 감동적인 부분은 국내 업체가 만든 이어폰이라는 것. 게다가 세계적으로 많은 유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물론 가격이 저렴한 게 가장 큰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정도의 가격이라면 뭐든 용서할 수 있을 텐데,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고 깔끔한 톤으로 음악을 준수하게 표현하니 말이다. 이리저리 재고 고민하기 싫다면, 당장 손에 넣어도 좋을 그런 이어폰이다.

 

 

Name : VE MONK PLUS Mic-U
Type : 오픈형
Sound Specs : 주파수 20Hz – 20kHz, 감도 122dB, 임피던스 64Ohms
Physical Specs : 1버튼 마이크 리모컨, 케이블 1.2m
Strength : MX400의 추억
Release : 2016
Price : ₩12,900
Well-matched song : Cinderella – 「Don’t Know What You G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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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같이 들을래?」 시리즈
① 응답하라 8090
② 커널형 이어폰
③ 오픈형 이어폰
④ 블루투스 이어폰
⑤ 헤드폰
⑥ 블루투스 스피커
⑦ 기억에 남은 음악꾸러기
⑧ 마치며
저는 커널형 이어폰을 좋아하지만, 사무실에서는 오픈형을 주로 사용해요.
여러분의 잔고를 보호하거나 혹은 바닥낼 자신으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