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보다 더 아름다운 사실적 묘사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배경은 실제 일본의 장소인 경우가 많다. 필요한 곳에서 원하는 빛이 드는 시간에 맞춰 촬영한 뒤 재가공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기 때문.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 등 개봉할 때마다 사실적이지만 현실보다 아름다운 묘사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렇게 실제를 바탕으로 제작하는 만큼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물건들은 실제로 있기도 하고, 또 만들어지기도 한다. 영화 속 장소에 찾아가 그 물건을 들고 있다면 영화만큼 낭만적인 순간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그 중 인물들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했던 아이템을 소개한다.
<초속 5cm> 타카키의 시계, G-2500-3V
<초속 5cm>는 벚꽃이 떨어지는 시간이다. 벚꽃은 같은 자리에서 핀 꽃잎도 떨어지는 동안 서로 다시 만나기도 하고 다시 흩어지기도 하는 사람 사이의 인연으로 묘사된다. ‘타카키’와 ‘아카리’의 만남도 첫 장면에서 벚나무로 이야기를 암시한다.
아카리가 전학을 가게 되면서 서로 애지중지하고 떨어지지 못하던 둘은 멀어지게 된다. 그 와중 타카키도 지하철을 타고도 만날 수 없는 먼 곳으로 이사가게 되어, 멀어지기 전 둘은 만나기로 한다.
하지만 폭설로 인해 열차는 계속 지연되고 멈추길 반복한다. 약속 시각인 7시를 넘어서까지 열차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15시 54분, 17시 10분, 7시, 10시 20분… 초조한 마음이 무색하게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타카키가 시간을 확인하는 시계가 바로 ‘지샥 G-2500-3V’. 영화 속 벚꽃의 시간을 한껏 보여준 시계다.
그렇다면 지샥 G-2500-3V는 현실에선 어떤 시계일까? 지샥 G-2500 중에서도 3V는 일본 내수용으로, 1V와 액정 컬러만 다르다. 영화가 주는 느낌 탓인지, 세피아톤의 컬러 탓인지 옛날 사진 같은 아련한 느낌이 난다.
특별한 기능이 없음에도 비대칭 모양의 베젤로 설계됐고, 시계 내부의 디자인은 지금도 비슷한 모델이 있을 정도로 깔끔한 편. 200M까지 방수가 되고, 흠집이 잘 안 가는 미네랄 글라스에 우레탄 밴드로 꽤 내구성도 꽤 좋은 편이다.
지샥 G-2500-3V의 당시 가격은 10만원 초반대로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액정 컬러만 다른 지샥 G-2500-1V는 국내에서 군인 시계로 많이 쓰였다. 지샥 G-2500-1V는 아직은 구하기 어렵지 않은 모양이나, 지샥 G-2500-3V는 생산이 중단된 지 오래기 때문에 중고 거래 사이트에 드물게 올라오는 편이다.
<언어의 정원> 타카오의 책, Handmade Shoes for men
비가 오는 날 지하철을 타기 싫어 공원에 머무는 ‘타카오’와 등교 거부를 하고 있는 고전 문학 선생 ‘유키노’. 그들은 비 오는 날마다 공원에서 만나게 되고, 장마철이 끝날 때까지 미묘한 관계가 계속된다. 서로 만나는 사이, 구두 장인을 꿈꾸는 타카오는 유키노에게 구두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타카오가 만든 구두는 현실에서도 기성품이 아니다. 2014년 ‘신카이 마코토 전 – 그대는 이 세계의 절반’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판매하는 제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타카오가 이 신발을 만들 때 도움이 되었던 것들이 있다. 가장 영감을 준 것은 타카오의 열망의 대상이었던 유키노겠지만, 유키노가 선물해준 ‘Handmade Shoes for men’이라는 책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Handmade Shoes for men은 1999년, 헝가리의 유명한 구두장인 ‘라즐로 바쉬(Lazlo Vass)’가 쓴 구두 제작에 관한 책이고, 지금도 구두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한다. 남성 구두 위주라 여성 구두에 대한 설명은 다소 부족하겠으나, 부품은 무엇이 있는지, 망치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두 제작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과 노하우가 잘 쓰여있다고 한다.
좋은 책 덕분일까 타카오는 그 해 겨울 유키노를 위한 신발을 완성한다. 그녀에게 전달해주진 못했지만 말이다.
Handmade Shoes for men은 올해 푸른숲 출판사에서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되었으니, 평소 구두에 관심이 있다면 장인의 구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판매가는 32,000원이다.
<너의 이름은> 미츠하의 사케, 쿠치카미자케
주인공인 ‘미츠하’와 ‘타키’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 몸이 바뀌기도 하고 만나기 까지 한다. 무녀인 미츠하의 할머니는 그것을 무스비, 운명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운명을 계속하게 만들어준 아이템이 있는데 무스비를 상징하는 끈매듭과 신에게 바치는 술 ‘쿠치카미자케’다.
쿠치카미자케는 서로 몸이 바뀌지 않게 된 후, 타키가 미츠하를 간절히 만나길 기도하며 마신 뒤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아이템이다. 영화가 성공한 뒤 일본 현지에서 실제로 이 쿠치카미자케가 만들어졌다.
미츠하가 사는 곳의 배경은 일본 혼슈 기후 현의 ‘히다시’와 나가노 현의 ‘스와호’를 합쳐놓은 배경인데, 그 중 사케로 유명한 히다시의 와타나베 주조장에서 이 사케를 만들었다. 생김새도 영화 속 쿠치카미자케와 흡사하다. 같은 병 모양에 미츠하가 만들었던 매듭까지 재현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만드는 방식까지 재현하진 않았다. 쿠치카미자케는 본래 입으로 씹어 만드는 술로, 고대 일본에서 제사에 올리는 술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한다.
히다시의 쿠치카미자케는 와타나베 주조장의 우물에서 올린 청수와, 히다산의 쌀을 이용해 만든다. 영화 속 신사의 모델이 된 카타와카미야 신사의 스님의 기도까지 더해져 신에게 바치는 술이라는 이름에 걸맞다. 기도에 담긴 의미는 인연의 맺어짐으로 영화에도 잘 어울린다.
히다시의 쿠치카미자케는 현지 매체에 소개되는 등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은 재고 부족으로 한 달 이상 주문 대기 상태라고 한다. 늦더라도 구매를 원하면 와타나베주조장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자. 정미율 60%로 알콜 도수는 15도로 부담 없고, 가격은 420mL 한 병에 3,240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