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평범한 가정을 꾸려 무난하게 살아야지’하던 꿈이 얼마나 어려운 목표였는지 깨달아가고 있는 요즘. 무엇이든 ‘적당히’, ‘평범히’ 한다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균형적이고 적당한 수준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평범하다는 건 최소 일정 수준은 되어야 들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니까.

 

음악을 들을 때 베이스나 타격감이 다이내믹하게 느껴지는 음색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사운드를 들려주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에 대한 고급 오디오 유저의 평은 대체로 ‘왜곡되었다’고 한다. 원음 그대로의 자연스러움 대신, 필요 이상으로 강조된 쿠궁쿠궁 저음과 촬랑촬랑 쏴아쏴아 몰아치는 고음. 그런 ‘양념’이 싫거나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은 소위 ‘모니터링 헤드폰’이라 부르는 제품을 사용한다. 왜곡되지 않은, 본래 그것대로의 ‘평범한’ 소리를 들어야 할 때 필요한 헤드폰. 이번에 사용해본 야마하(YAMAHA) HPH-MT7도 그런 모니터링 헤드폰 중 하나다. 이름이 참 요상하고 어렵다. 가격은 19만원대. 수십, 수백만 원짜리 헤드폰이 널려있는 이 세상에 상대적으로 비싼 물건은 아니다.

 

 

야마하라고 하면 악기가 먼저 생각난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이 외에도 엔진, 오토바이, 전기 자전거, 골프용품,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사업 욕심을 보여준다. 음향기기로 워낙 유명하고 좋은 평이 많은 만큼, 이 헤드폰도 듣기 전부터 기대가 된다.

 

 

헤드폰 자체는 아주 멋있지만, 딱 봐도 아웃도어용은 아니다. 케이블 길이가 무려 3m다. 이런 모니터링 헤드폰이 다 그렇지만, 고급 음향 장비에 연결하고 조금씩 움직이기 좋게 넉넉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길어도 너무 길다. 기껏해야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휴대용 고음질 플레이어에 연결해서 듣는데 또 하나의 짐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만 같다.

 

 

애석하게도 케이블은 다른 걸로 교체할 수도 없다.

 

 

플러그에는 스프링까지 달려 있어서 튼튼하고 멋지다. 그리고 각종 음향 장비를 위한 6.3mm 어댑터도 기본으로 들어있다.

 

 

귀를 전부 덮는 오버이어 형태다. 밀폐형이라 바깥 소리도 잘 차단해준다. 음악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도 않는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폭신한 가죽 이어패드도 좋고 360g 정도의 적당한 무게감도 부담스럽지 않다. 이어컵이 하도 커서 얼굴도 작아 보인다. 그런데 요즘 날씨에 30분 넘게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귀가 슬슬 더워졌다. 목에 걸고 있을 때는 턱에 자꾸 걸리적거려서 불편하기도 하고.

 

 

적당히 귀를 압박하는 장력과 쓱쓱 조절이 가능한 헤드밴드는 나의 커다란 머리도 포근하게 감싼다.

 

 

음질은 한 마디로 바다 같다. 시원함에 귀가 트이고 가슴도 확 트인다. 그러나 한여름의 시원한 바다는 아니고, 추분이 지나고 슬슬 차가워져서 함부로 입수하기 망설여지는 바다랄까? 고음이 굉장히 차갑고 날카롭다. 볼륨을 너무 많이 올리면 귀가 베이진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뾰족하다. 특히 시옷과 치읓 발음이 등장할 때는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어쨌든 모니터링용 헤드폰이 지향하는 ‘플랫’하고 심심한 느낌보다는, ‘어떻게 하면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를 들려줄까’하는 고민에서부터 만들어낸 것 같은 시원∙상쾌한 사운드다.

 

 

장인이 세밀히 갈아 올린 칼날처럼, 모든 음악을 날카롭게 만들기 때문에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청명한 해상력은 정말 발군이다. 각각의 모든 소리가 또렷한 건 물론이고, 음악이 연주되었던 그 당시의 공기까지 그대로 가져와 들려주는 것 같다. 평소에 클래식을 자주 듣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헤드폰으로 클래식을 들어보니 전자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현의 떨림과 연주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들어보라. 윤기 흐르는 바이올린은 따뜻한 봄이 와서 행복한지 미쳐 날뛰는 듯 화려하다. The Piano Guys의 ‘The Cello Song’에서는 첼로의 커다란 울림통 소리와 현을 긁는 생생함이 귀에 확 들어온다.

 

이 상쾌한 소리를 들려주는 헤드폰에 대해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획일적인 고음 성향이라는 것. 묵직한 표현이 필요한 음악에는 상대적으로 조화로움이 덜하다. 곡에 따라서는 쨍하고 시원한 소리보다, 몽글몽글하거나 두툼한 음색이 더 잘 어울리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요약하면, 집에 있는 고급 오디오에 연결해 시원하고 해상력 높은 음악을 듣고 싶다면 아주 잘 어울리는 헤드폰이다. 반면에 주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사운드의 묵직함과 맛깔나는 분위기 그 자체를 즐기고 싶다면 고민을 좀 해볼 필요는 있다.

 

 

장점
– 클래식을 자주 듣는 사람에게 좋은 극강의 해상력
– 시원한 인상의 사운드
– 깔끔한 디자인
– 가벼운 무게
단점
– 목에 걸면 거슬리는 다소 큼지막한 이어컵
– 헤드폰 본체와 분리가 불가능한 케이블
– 특정 음악 장르에는 어울리지 않는 음색
– 시옷과 치읓 발음에 매우 민감한 예민도
모던한 디자인
알맞은 착용감
상쾌한 음질
모바일 기기와의 궁합
여러분의 잔고를 보호하거나 혹은 바닥낼 자신으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