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Kodaked’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코닥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코닥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필름과 카메라로 유명한 코닥(Kodak)을 뜻한다. 코닥은 아날로그 필름 시장의 3대 회사 중 하나다. 그러나 2012년 부도를 맞으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다 망한,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다른 3대 필름 회사로 손꼽히던 독일의 아그파필름 역시 마찬가지.

 

 

아스타리프트, 아스타리프트의 출시로 후지필름은 그해 최고의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3대 필름 회사 중 남은 후지필름은 조금 다르다. 후지필름은 코닥과 대조되는 훌륭한 사례이기도 하다. 핵심 사업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혁신을 이뤘다. 후지필름은 광학 산업 외에도 ‘아스타리프트’라는 화장품도 만들고, 에볼라 전문 치료약인 ‘아비간’을 만들기도 했다. 그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후지필름은 카메라 사업이 아닌 다른 사업으로 매출의 85%가량을 올리고 있다. 카메라 분야는 15%로 초라한 편이다. 그러나 스스로 ‘사진을 업(業)으로 한다’고 밝히는 후지필름. 그리고 세간에서 후지필름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사진’이다. 그만큼 필름과 사진이라는 가치에 무게를 두는 후지필름의 철학은 그 카메라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후지필름과 카메라

후지필름은 영화용 필름을 생산하기 위해 창업한 회사다. 1934년에 창업해 벌써 80년이 넘은 장수 기업이기도 하다. 후지필름의 역사에서 세계 최초 복식 프로그램 셔터 기능을 갖춘 카메라를 출시했다든지, 오토 스트로보 내장 카메라를 출시했다든지 하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디지털로 시장이 넘어가면서 1989년에는 상용 디지털카메라인 FUJIX MEMORYCARD CAMERA DS-X라는 제품을 시험 발매하기도 했고, 2000년에는 후지필름 최초의 DSLR인 S1pro를 출시하기도 했다는 사실도, 2011년 들어 후지 X-시스템과 함께 미러리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을 테다.

 

 

다만, 후지필름 카메라가 이전부터 독특한 색구현력으로 주목받아왔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는 후지필름이 아날로그 필름의 색감을 디지털로 옮기는 데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이는 후지필름의 ‘사람이 기분 좋다고 느끼는 색을 표현하자’는 색상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정리하자면 색감, 그리고 사진, 이 사진으로 감동을 전하는 게 후지필름의 역할이고, 정체성이다. 후지필름의 사명에는 아직 ‘필름(Film)’이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후지필름은 처음부터 영화용 필름을 국산화하겠다는 목표로 창업한 회사이고, 필름과 사진이 기저에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이런 후지필름의 철학과 카메라를 보면 자연스레 ‘레트로’라는 단어가 입에서 맴돈다.

 

 

 

레트로를 담다

레트로(Retro)란 무엇일까? 위키피디아에서 레트로라는 단어를 찾으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레트로란 회상, 회고, 추억이라는 의미인 ‘Retrospect’의 준말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과거의 체제, 전통 등을 그리워하여
그것을 본뜨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카메라 시장의 답보 상태를 ‘혁신’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후지필름과 ‘레트로’와는 서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지필름의 레트로는 과거를 그리워한다기보다는 과거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존경(Respect)한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후지필름의 X-시스템 시리즈의 면면을 보면 얼핏얼핏 과거 클래식 카메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클래식 카메라에서 볼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조작방식을 갖췄고, ‘고전미’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우아한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다.

 

 

후지필름의 필름, 리얼라 100

또한, 필름을 그리워하는 소비자 요구에 맞는 다양한 필름 시뮬레이션은 과거 필름 이용자의 향수를 다시 불러올 정도로 매력적인 기능이다. X-시스템의 고급기는 RAW로 촬영한 이미지를 직접 바디에서 필름 효과를 입히거나 사진 설정값을 조절할 수도 있어, 언제든지 원하는 필름 효과를 입힐 수 있다.

 

그리고 과거 기기를 함께 품는 모습도 눈여겨봄 직하다. 소프트웨어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끊임없는 펌웨어 업데이트로 해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2년에 출시한 기기의 펌웨어를 2016년까지 관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7년, 후지필름은 새로운 렌즈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꾸준한 기술 개발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양한 도전을 하는 후지필름의 카메라에 끊임없이 이어진 요구 중 하나는 35mm 풀프레임 이미지 센서 탑재 기기 출시다. 그러나 후지필름은 작년 미러리스 진출 5주년 간담회에서 ‘풀프레임은 라이카가 만든 규격’이며, ‘더 이상 과거 포맷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중형 센서를 탑재한 미러리스 카메라를 출시했다.

 

결국 후지필름의 기술개발은 후지필름의 철학을 존중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맞닿는다. 뛰어난 사진을 찍게 해, 사진으로 감동을 전하겠다는 후지필름의 의지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기술로 드러나고 있다. 과거를 존중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후지필름의 현재는 아직도 기대할 만한 요소가 많다. 레트로를 담아낸 후지필름의 앞으로를 좀 더 기대해봄직하다.

 

 

 

눈여겨볼 만한 후지필름의 카메라

1. X100F

후지필름의 새로운 시스템, 후지 X-시스템(Fuji X-System)을 열어젖힌 첫 카메라인 X100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카메라다. X시리즈 최초의 카메라이자, 후지 X시스템의 시조(始祖)다. 그리고 네 번째를 맞은 X100 시리즈의 적통인 X100F 역시 후지필름의 카메라 중 빼놓을 수 없는 제품이다.

 

 

클래식 카메라가 떠오르는 레트로한 디자인, 아날로그 조작 방식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손맛을 갖췄으면서도, 후지필름의 최신 센서인 X-Trancs CMOS III를 탑재해 화질을 끌어올렸다. 또한, 0.08초에 이르는 빠른 연사속도와 기계적 만듦새는 전통을 살리면서도 디지털 바디의 특성을 한껏 살린 카메라라 할 만하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점은 렌즈교환식 카메라가 아닌 ‘프리미엄 콤팩트 라인’에 속하는 콤팩트 카메라라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APS-C 센서를 탑재해 작은 바디에 큰 센서를 넣었다는 특징을 갖췄다.

 

 

2. X-T2

후지필름의 플래그십 카메라를 고르라면 무엇을 고를까? 많은 사람이 RF방식의 X-Pro 시리즈와 SLR 방식의 X-T 시리즈 사이를 헤맨다. 같은 센서를 탑재했고, 기계적 완성도도 뛰어나 모두 플래그십이라 부를 만한 카메라 선택하기가 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현재까지는 가장 뛰어난 플래그십 카메라로 X-T2를 꼽아야 할 것 같다. SLR과 비슷한 디자인을 갖춰 다른 카메라 브랜드에선 일반적이지만, 후지필름 카메라 중에선 가장 이질적인 형태의 디자인을 갖춘 점도 눈여겨볼 만한 특징이다.

 

X-T2는 X-Pro2에 있던 광학식 뷰파인더(OVF)를 제거한 대신에 전자식 뷰파인더(EVF)를 탑재하고, 틸트 액정과 같은 사용 편의성을 개선했다. 그러면서도 X-Pro2와 같은 센서를 탑재해 같은 품질의 결과물을 내면서도 사용 편의성을 높였다.

 

방진방적을 지원하는 견고한 바디, 다양한 편의성은 플래그십이라 부를 만큼 강력한 기능을 갖췄다. 후지필름의 자존심이 담긴 바디라 할 만하다.

 

 

3. GFX50S

후지필름에서 새롭게 내놓은 카메라는 35mm 이미지 센서(풀프레임)보다 1.7배가 큰 중형 센서를 탑재한 미러리스 카메라 GFX50S다. 새롭게 개발한 5,140만 화소 CMOS 센서와 중형 카메라를 위한 새로운 후지논 GF 렌즈 시리즈를 함께 내놓아 뛰어난 화질을 살렸다.

 

 

기존 X 시리즈에 탑재된 최신 화상처리 엔진 X-Processor Pro를 탑재해 빠른 처리속도를 갖췄다. 미러리스 카메라로 미러쇼크에 따른 해상력 저하나 이미지 흔들림 문제도 없는 게 특징이다. 마그네슘 합금 재질로 이뤄져 같은 크기의 중형 센서를 탑재한 DSLR의 60%에 불과한 무게를 갖춰 소형 경량화를 이뤘으며, 내구성 또한 확보한 점이 특징이다.

 

무엇보다도 GFX50S는 후지필름이 작년 ‘라이카가 만든 규격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이를 하나의 압축된 결과물로 보여줬다는 느낌에서 의미가 깊다. 일반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제품은 APS-C 규격의 완성도 높은 센서로 구현하고, 프로가 만족할 만한 제품은 풀프레임을 넘어선 중형 포맷으로 구현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사진으로 기쁨을 줄 수 있는 브랜드
테크와 브랜드를 공부하며 글을 씁니다. 가끔은 돈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