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폭력으로 오랫동안 격동의 시간을 보낸 프랑스는 19세기 말이 되어 드디어 평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때를 좋은 시대 또는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이라고 부르죠.

 

서울의 대표적인 공장 지대인 성수동은 최근 들어 서울에서 가장 트렌디한 동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수동에 아름다운 시절이 찾아온 걸까요?

 

열정 하나로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벨에폭(Belepok), 그들을 만나러 성수동에 다녀왔습니다.

 

 

 

성수동에 자리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일단 저희가 이 동네 출신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놀던 동네고 학교도 졸업한 동네이기도 하죠.
항상 있어왔던 곳에서 시작을 하고 싶었어요.

 

몇 년 전만해도 성수동은 그냥 평범한 동네였죠. 공장이 많은…
저희는 지금처럼 핫플레이스라고 불리기 직전에 자리를 잡았는데요.
점점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작업 방식 등에서) 예전 성수동을 지키고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해요.
성수동이 유명세를 타면서 조금 이용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긴 했어요.

 

 

 

가죽 공예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일까요?

가죽 공예를 한번 배워보지 않겠냐고 권유했어요.
당시 둘 다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으로 가죽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죠.

 

막연히 가죽 공예를 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가방을 만들고 싶었어요.
가방에 가장 적합한 소재가 가죽이다 보니 가죽 공예를 시작하게 됐죠.

 

 

 

그런데 브랜드까지 런칭하셨네요?

가방을 만들기 위해 가죽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실력이 어느 정도 위치가 됐을 때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졌어요.
요즘 가죽 공방이 많은데, 사실 만들고 있는 제품이나 작업 방식이 비슷비슷하거든요.
그런 가죽 공방에서 벗어나 저희만의 느낌을 담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죠.

 

 

그러다가 벨에폭이란 브랜드 이름을 만든 건가요?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으니 이름을 짓기로 했는데
마침 그날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있었어요.
영화에서 벨에폭(Belle Epoque)이라는 말이 나오는 데
좋은 시대라는 의미가 너무 멋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Belle Epoque는 스펠링이 너무 길잖아요?
발음 기호로 묶어서 Belepok이라고 만들게 된 거죠.

 

 

 

벨에폭의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기존 가죽 공방이 하지 않는 방식에서 시작하다 보니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제품에 저희만의 메시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로고를 내세우기 보다 저희의 메시지를 담은 문구를 보여주기도 하죠.

 

Nothing Is Absolute.
Everything Changes, Moves, Revolutionizes.
All Things Flow.

 

프리다 칼로(Frida Kahlo)가 했던 말에서 몇몇 단어를 바꾼 문구인데요.
저희의 메시지, 벨에폭의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품을 만들거나,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행위가 흐름 속에 있다는 내용이에요.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옮긴 거죠.

 

 

 

 

ⓒ belepok.co.kr

그럼 작업 프로세스가 특별한가요?

어떤 제품을 만들어보자라고 결정을 하면
먼저 저희끼리 전체적인 기획을 하고 자체적으로 디자인을 하죠.
그러고 나서 성수동에 예전부터 있어왔던 공장들과 함께 협업을 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제품들을 이런 식으로 진행하고 있죠.

 

 

 

ⓒ belepok.co.kr

그런 과정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일단 공장 쪽에서 거절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는 곳이 거의 없어요.
거의 이런 돈 안 되는 일을 왜 하냐고 하죠.
초기 오더 수량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껄끄러워 하는 편이에요.

 

 

그러면서 어떻게 공장들과 협업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전혀 모르는 공장에서는 거의 다 퇴짜를 맞았지만
아무래도 이 동네 출신이다 보니 알고 있는 공장들이 있긴 했어요.
그 공장들도 매일 얼굴을 비추면서 각인을 하고 설득을 했죠.
그러다가 협업을 하겠다는 공장들이 생겨서 협업을 하게 된 거죠.

 

 

 

라이터 케이스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일단 둘 다 흡연자에요.
라이터 중에서 기능이나 안전성 면에서 BIC 라이터를 선호하는데요.
그런 라이터의 케이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일회용 라이터일 뿐이지만 케이스를 씌우면서 나만의 라이터라는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거죠.

 

 

가죽으로 시작했는데 금속으로 케이스를 만든 이유는요?

사실 가죽으로 라이터 케이스를 만드는 건 너무 쉬워요.
가죽 공예를 배워봤다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게 라이터 케이스에요.
다른 브랜드와 차별점이 있을 여지가 없는 거죠.

 

 

 

ⓒ tumblbug.com

라이터 케이스는 텀블벅에서 목표액의 1400% 이상을 달성하기도 했죠?

(덤덤하게) 생각보다 많이 모였구나… 정도랄까?
물론 기분은 좋았습니다.
근데 기분이 좋은 이유도 공장 쪽에 오더를 많이 줄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아무래도 저희는 공장들과의 관계가 있으니까요.

 

 

크라우드 펀딩에서 초과 달성을 달라진 게 있나요?

그래서 바로 만든 게 새로운 컬러의 라이터 케이스입니다.
기존 황동 재질에 니켈 도금을 입힌 제품이죠.
다른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게 많은데 자금 사정 상…

 

 

이후에 크라우드 펀딩을 또 이용할 계획이 있나요?

크라우드 펀딩의 추가 진행보다는
차별되고 재미있는 제품을 기획하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라이터 케이스의 경우 저희의 모든 걸 쏟아 붓지는 않았었는데요.
다음에 또 하게 된다면 정말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만들었던 제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은 무엇인가요?

라이터 케이스만큼 사연이 많았던 제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일단 기획하고 제작하는 데만 1년 6개월 정도가 걸렸는데요.
지금까지 만들었던 어떤 제품보다 가장 시간이 오래 걸렸고 가장 많이 실패했던 제품이에요.
금속으로 라이터 케이스를 만들기 위해 왁스 카빙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방식을 다 시도해 봤어요.
지금도 하나하나 수제로 새틴 마감 처리가 되고 48시간 염소 분해 테스트 통과된 코팅을 거치고 있죠.
단가를 생각했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았는데
에이징되는 모습이나 빈티지한 느낌을 극대화하고 싶었죠.

 

ⓒ belepok.co.kr

100% 구리로 만든 팔찌도 비슷했었어요.
저희의 장점 중 하나는 소규모 공방이라 소비자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건데요.
명품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방법도 써보기도 하고 정말 여러 코팅을 시도해봤어요.
그러면서도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문제점을 개선해 보려고 노력했죠.
소재에 맞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어요.

 

 

 

벨에폭이 어떤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나요?

구체적이지 않지만 금속을 활용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만들 계획이에요.
물론 금속 제품은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상황이 여의치가 않죠.
아이디어를 갖고 기획까지 했는데 공장 쪽과 협의 과정에서 무산된 적도 있어요.
그래도 뻔하지 않고 재미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가죽이나 금속을 취급하는 다른 브랜드와는 확실하게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는 브랜드로 남고 싶어요.

고르다 사다 쓰다 사이에 존재하는 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