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블랙베리를 일컫는 말은 ‘예쁜 쓰레기’다. 특유의 미려한 디자인으로 관심을 끌었지만, 사용성이 떨어져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 더군다나 블랙베리 9900 이후 공식적으로 한국시장에서 철수하면서 블랙베리는 이제 쓰는 사람만 찾아서 쓰는 스마트폰이 돼버렸다. 이를테면, 지금 책상위에 놓인 블랙베리 클래식은 해외에서 주문해 국내로 들여온 제품이다.
블랙베리의 부족한 사용성은 대개 자체 OS인 블랙베리 OS 탓으로 꼽힌다. 그래서 블랙베리는 자사 OS를 포기하고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첫 블랙베리 스마트폰인 블랙베리 프리브(Priv)가 20일 출시발표회를 갖고 3년만에 다시 한국시장에 돌아왔다. 안드로이드를 품은 블랙베리는 한국 시장에 승부수를 던질 수 있을지, 직접 만져봤다.
장점
– 블랙베리 허브를 이용한 메시지 관리
– 하드웨어 키보드를 이용한 빠른 메시지 입력
단점
– 아쉬운 출시 시기
– 어중간한 가격
안드로이드를 담아낸 블랙베리 프리브 디자인
한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쓰는 모습 때문에 ‘오바마 폰’으로 불렸던 블랙베리. 그러나 생태계를 제대로 꾸리지 못해 사용 편의성이 떨어져 스마트폰 시장에서 몰락을 면치 못했다. 뒤늦게 안드로이드 앱을 제한적으로 돌릴 수 있게 했으나, 오히려 생태계 경쟁력이 빠르게 퇴보해 자체 OS인 블랙베리 OS 10으로는 스마트폰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결국, 블랙베리 프리브를 통해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블랙베리가 출시됐고 앞으로 블랙베리 OS 10 업데이트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드로이드를 담은 블랙베리 출시 소식에 많은 골수 이용자가 블랙베리의 새 모습을 기대했다. 많은 기대 끝에 등장한 블랙베리 프리브는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던 블랙베리와는 조금 다른 모양새를 갖춰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블랙베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바 타입이 아닌, 풀터치 스마트폰 폼팩터를 채택한 것. 그리고 하드웨어 키보드를 슬라이드식으로 넣어 꺼내쓸 수 있는 방식을 채택했다.
5.4인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블랙베리 프리브의 크기는 147×77.2×9.4mm로 한 손으로 쥐기에 조금 큰 크기를 갖췄다. 여기에 제품 뒤에 숨겨진 슬라이딩 키보드를 꺼내면 길이는 184mm까지 늘어난다. 여기에 무게는 192g으로 생각보다 묵직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 손으로 조작하기 조금 어렵다.
디스플레이 양쪽에 곡률이 들어간 듀얼 엣지 디스플레이지만 실제로 만졌을 때 깨닫긴 어렵다. 충전기를 꽂으면 옆에 충전 정도가 표시되는 기능, 그리고 오른쪽 엣지 디스플레이에 있는 버튼을 볼 때, 블랙베리 프리브가 듀얼 엣지 디스플레이라는 걸 알게 한다. 해상도는 QHD(2560×1440), 인치당 픽셀 수는 540PPI다. AMOLED 디스플레이는 뛰어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부드럽게 밀려나오는 하드웨어 키보드는 4열 키보드로 기존 블랙베리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하드웨어 키보드와 같은 구성을 갖췄다. 사용법도 같다. 기존 블랙베리 이용자라면 불편함 없이 익숙해질 수 있다.
마이크로 5핀 케이블을 이용해 충전하고, 위에는 최대 2TB까지 지원하는 마이크로 SD 카드와 유심칩이 들어간다.
디자인은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이겠으나 블랙베리 프리브는 겉으로 보기에 하나의 번듯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다. 그리고 뒤에 숨겨진 하드웨어 키보드는 블랙베리의 정체성과 같은 부분이다. 슬라이드를 밀어 길쭉한 블랙베리 프리브를 보면 LG의 초콜릿 폰이 문득 떠오른다. 슬라이드 쪽 유격과 같은 문제가 보고된 적이 있어 전시된 제품을 꼼꼼하게 살펴봤지만, 다행히 만듦새가 떨어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특유의 보안성, 그리고 하드웨어 키보드를 활용한 블랙베리의 특징
블랙베리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보안이 특징이 회사다. 블랙베리 프리브에도 보안을 위한 많은 기술이 적용됐다. 블랙베리 프리브는 매번 부팅할 때마다 소프트웨어 보안을 검증한다. 그기고 구글에서 배포하는 안드로이드 보안패치를 매달 적용할 정도로 빠른 패치 적용도 블랙베리의 보안성에 믿음을 주는 부분이다. 대신 안드로이드 폰에서 흔히 적용하는 부트로더 언락이나 루팅도 막혀있어, 자신만의 안드로이드를 꾸미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권하기 어렵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프로그램은 안드로이드용 블랙베리 DTEK다. 이앱은 블랙베리 프리브의 보안성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안내해 이용자가 블랙베리 프리브의 보안성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블랙베리 프리브에 설치된 모든 앱을 모니터링해 권한 요구사항이나 요구 정도를 기록해 알려준다. 이용자는 이를 통해 불필요한 앱의 권한을 끄거나 앱을 완전히 제거해 보안성을 강화할 수 있다.
하드웨어 키보드는 블랙베리 프리브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슬라이드 키보드를 꺼내면 자동으로 소프트웨어 키보드가 사라지고 하드웨어 키보드로 글씨를 입력할 수 있다. 블랙베리 클래식과 비교하면 키감은 조금 밋밋한 편이다. 그러나 하드웨어 키보드를 통해 글씨를 입력하는 것은 분명 소프트웨어 키보드를 활용하는 것보다 빠르게 입력할 수 있다. 단, 무게 중심이 조금 위로 쏠려서 키보드만 잡고 있기 불안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키보드 자체에 터치 센서가 있어 키보드 표면을 쓸어 내리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제스쳐를 활용할 수 있다. 화면 아래에 추천 단어가 나오는데, 직접 터치하거나 키보드 표면을 위로 쓸어올리면 자동으로 추천 단어를 입력할 수 있다. 키보드 표면을 아래로 쓸어 내리면 sym 버튼을 누른 것처럼 특수 키를 입력할 수 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쓸면 어절 단위로 글씨를 삭제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에 뜨는 소프트웨어 키보드도 나쁘지 않다. 마찬가지로 키보드를 쓸어서 제스쳐를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문맥을 예측해서 예상 단어를 보여주고, 이를 바로바로 입력할 수 있는 키보드를 탑재해 글을 빠르게 적을 수 있다. 이미 블랙베리 Z10을 써봤다면 익숙한 기능일 것이다.
키보드를 터치하는 것으로 화면 스크롤을 조절할 수도 있다. 사진처럼 가로로 블랙베리 프리브를 잡고, 손가락을 슥슥 미는 것만으로도 화면을 밑으로 내릴 수 있다. 화면에 직접 손을 대지 않아도 돼 편리하다.
그런데 왜 지금, 왜 이 가격에?
한 가지 문제를 짚자면, ‘도대체 왜 이제, 그리고 이 가격에 나왔느냐?’는 점이다. 블랙베리 프리브는 이미 작년 11월 해외에 출시된 스마트폰이다. 블랙베리의 한국시장 진출이 불투명했기 때문에 블랙베리 이용자 중 프리브에 관심이 있는 이용자는 직접 해외에서 기기를 들여와 제품을 이용했다. 그리고 10개월이 지난 지금, 해외에서 관세까지 포함해 40만원 전후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출시한 블랙베리 프리브의 가격은 59만8천원이다.
물론, 해외를 통해 들여온 제품과 달리 이번에 출시한 블랙베리는 키보드에 한글 각인이 기본적으로 들어있고, 소프트웨어의 한글화가 진행되는 등 한국을 위한 수정이 이뤄진 제품이다. 그런데도 빠르게 변화하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블랙베리 프리브의 한국 출시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심지어 블랙베리는 이미 그 다음 제품의 출시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아쉽다.
성능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1년이 지났지만, 블랙베리 프리브의 성능은 그리 떨어지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블랙베리 프리브에 탑재된 프로세서는 퀄컴 스냅드래곤 808 프로세서로, 출시 당시 과도한 발열로 문제가 보고됐던 제품이다. 이번 출시 발표회에서 다각도로 검토한 후에 문제를 줄였다고 하지만, 실제 제품에 문제가 없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발열은 AMOLED 디스플레이의 번인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소비자의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AS. 현재 유통사인 3KH에서 AS를 담당하고 있는데, 3KH의 인프라가 소비자의 불만을 만족스럽게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과거 SKT를 통해 출시했던 블랙베리 모델들도 통신사 인프라를 활용했음에도 부품 수급에 문제가 있어 사설 수리가 저렴하고 더 빠르게 수리할 수 있었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블랙베리가 풀어가야 할 숙제다.
블랙베리의 하드웨어 키보드를 좋아했던 이용자라면 블랙베리 프리브는 분명 매력적인 스마트폰이다. 블랙베리 프리브를 이용하면 안드로이드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동시에 하드웨어 키보드를 쓸 수 있다. 블랙베리 이용자로서 첫인상으로 만나본 블랙베리 프리브는 만족스러운 경험을 줬다. 그러나 한편으로 블랙베리 프리브를 구매하겠냐고 묻는다면 고민해보겠다. 단순히 하드웨어 키보드만 보고 사기에 어중간한 가격, 전체적인 사용성을 보기에 한 세대 늦은 시기라는 점이 걸린다.
하지만 역시 현재 블렉베리 클래식을 쓰는 상황에서 블랙베리 프리브를 고민하게 된다. 블랙베리를 쓸 땐 사용성이 아쉬워 팔았다가, 안 쓰자니 하드웨어 키보드가 아쉬워 다시 블랙베리를 구매하길 수차례. ‘블베병'(블랙베리를 자꾸 사고 파는 병) 걸린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번에 블랙베리 프리브를 선택할 것인지는 조금 더 고민해 보겠다.
사세요
– 반쪽짜리 안드로이드가 아쉬웠던 기존 블랙베리 이용자 분
– 나는 남들과 다른 폰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
사지 마세요
– 최신 스마트폰을 원하시는 분
– 블랙베리를 한 번도 써보지 않으신 분
디자인 |
보안성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넘나드는 키보드 |
애매한 출시 시기 |
더 애매한 가격 |
빈약한 AS 인프라 |
5.4 |
이 농약같은 스마트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