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음악 감상용 이어폰(인이어 헤드폰)의 역사는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워크맨과 아이팟이 ‘퍼스널 뮤직 리스닝’을 시작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이 ‘퍼스널 하이엔드 뮤직 리스닝’을 시작해버린 셈이다. 커다란 라우드 스피커를 집에 두고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혼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지금은 더욱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어폰들이 어찌나 비싼지 가격표를 보면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어폰으로 음악 감상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이 더 좋은 소리를 위해 이어폰에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어폰의 가격 범위가 1만원부터 100만원 이상까지 크게 넓어졌으나 실제로 시장을 둘러보면 5만원 이하의 제품은 찾기가 무척 어렵다.
그동안 약 300여개의 이어폰, 헤드폰을 직접 사용해보고 후기를 써온 경험에 의거하여 다양한 가격대, 다양한 형태, 다양한 사용법 등을 기준으로 리스트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복잡한 얘기는 됐고! 대체 쓸만한 이어폰, 헤드폰은 어디에 있나?” –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 리스트를 참조해보기 바란다. 그 첫 번째는 5만원 이하 가격의 이어폰으로 골라보았다. 만약 다음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의 리스트를 클리핑 해 두자.
1. 번들 이어폰의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2. 번들 이어폰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3. 번들 이어폰의 착용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4. 스마트폰 패키지에 번들 이어폰이 들어 있지 않았다. (…)
물론 아래에 추천하는 리스트는 모두의 취향에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 번들 이어폰에서 벗어난 후 더 비싼 이어폰으로 올라가는 첫 관문이 될 확률도 높다. 사실은 ‘번들 이어폰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하고 배춧잎 5장을 꺼내든 순간 당신은 이미 퍼스널 뮤직 리스닝의 개미 지옥(아니..아니다.) 신세계에 진입한 셈이다.
1. LG 쿼드비트2 (HSS-F530) (2만원대)
시작부터 대단히 황당하겠으나, 추천 항목 1순위는 LG 스마트폰의 번들 이어폰이었던 쿼드비트2다. 그러나 이 제품은 LG 스마트폰의 번들 이어폰이 아니라 일반 판매용 이어폰으로서 더 많이 팔려나가고 있다. 소문이 워낙 대단해서 대뜸 구입해서 사용해봤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쿼드비트2는 쿼드비트1의 후속작이다. 쿼드비트1은 소리의 고.중.저음 균형을 중시한 이어폰이었는데, 사람들이 고음과 저음이 강조된 소리를 더 좋아한다는 반응에 따라서 조절을 한 것이 쿼드비트2라고 보면 된다. 이 제품의 가격은 2만원대에 불과하지만 모든 음의 해상도가 높으며 약간 밝고 선명한 고음과 탄력이 강한 저음으로 음악 감상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확실하게 저음 강조가 있는데, 그 덕분에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사용해도 든든한 저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저음의 울림이 고.중음을 가릴 정도로 강하게 나오는 것은 아니라서 다양한 음악 장르의 감상에도 적합하다. 평평한 모양의 케이블이 장착됐으며 통화용 마이크와 3버튼 리모트가 있어서 스마트폰을 쓸 때에도 편리하다. (안드로이드 호환이지만 아이폰에서도 재생 버튼이 동작한다.)
2. 소니(Sony) XBA-C10 (4만원대)
돈을 조금만 더 쓰면 소니의 진정한 스테디 셀러, XBA-1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저렴한 XBA-C10을 리스트에 넣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착용감이다. 매우 작은 본체(콩알만 하다)의 후면에 부드러운 실리콘 구조물이 있는데, 이것이 귓바퀴에 안착되면서 이어폰을 잘 고정해주고 차음 효과를 향상시키며 착용감도 좋게 해준다. 둘째는 XBA-1보다 재미있는 소리다. XBA-1은 고.중.저음의 균형을 중시하고 있지만 XBA-C10은 고음과 저음 모두 조금씩 강조가 되어 있는 ‘살짝 양념된 소리’에 속한다. 즉 K팝 중심으로 음악을 듣는다면 C10의 소리가 마음에 들 확률이 높겠다. 엄밀히 말하면 일렉트로니카, 팝, 락, 재즈 쪽으로 조금 더 최적화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독특한 컬러의 멋은 보너스다.
3. 유코텍(Ucotech) UBQ-ES903 (5만원대)
사람들의 귀 모양은 천차만별이다. 내가 멀쩡하게 착용하고 있는 이어폰을 친구의 귀에 꽂아주면 그냥 흘러내리는 경우가 있다. 귓바퀴의 형태가 유독 특이한 사람들은 이어폰의 선택에서 큰 제한을 받게 된다. 그래서 보통은 외이도 입구(귓구멍)에 바로 꽂는 커널형 이어폰의 인기가 높지만, 커널형 이어폰을 착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오픈형 이어폰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오픈형 이어폰은 가격은 둘째치고 그 존재 자체가 드물다. ES903은 이런 상황에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제품이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훨씬 높은 해상도를 갖고 있으며, 중음과 저음 일부를 강조한 소리로 보컬 파트를 더 가깝게 들려주는 성향이 있다. 금속 광택이 좔좔 흐르는 고급스러운 외관, 작고 가벼운 무게, 보기 드문 가격대성능비 중심의 오픈형 이어폰이라는 점에서도 권할 수 있겠다. 다만, 플랫(Flat)한 소리의 이어폰은 아니므로 참고해두자. 오픈형 이어폰이므로 소음 차단 효과도 거의 없다.
4. 파이오니어(Pioneer) SE-CL40 (4만원대)
만약 2년 전이었다면 이 제품을 리스트에 넣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격이 7~8만원대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품이 4만원대로 팔리고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알루미늄 절삭으로 제작된 하우징(이어폰 본체) 속에 고품질의 드라이버(이어폰 스피커)를 넣어서 상당히 정밀하고 탄력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스피커의 소리를 묘사할 때 ‘응답 속도가 빠르다’는 표현이 있는데 소리가 한번 울린 후 다음의 소리가 시작될 때까지의 간격이 짧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소리의 잔향이 적게 남아서 보다 선명한 느낌을 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빠른 응답 속도는 중저가형 이어폰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이다. 드라이버를 더욱 비싼 것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SE-CL40은 여기에서 주목할 수 있는 제품이다. 고.중.저음의 균형이 잘 맞으며 특히 중음의 밀도가 높고 질감이 부드러워서 현악기, 보컬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잘 맞을 것이다.
5. 더 하우스 오브 말리(The House of Marley) 이어폰 3종 (3~5만원대)

일명 ‘착한 브랜드’를 떠올릴 때 본인은 더 하우스 오브 말리를 떠올리곤 한다. 재활용 소재(나무, 금속)의 사용, 제품의 판매 수익 일부가 원 러브 재단에 기부된다는 점 등이 그렇다. 이 브랜드의 기초가 밥 말리(Bob Marley)에게 있기에 더욱 믿음을 갖게 되는 면도 있다. 그러나 본인은 이어폰 자체의 특징 몇 가지 때문에 추천하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매우 다채롭고 예쁘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어필하는 디자인이지만 특히 ‘여친, 마눌님 선물용’으로 이만한 물건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추천 제품은 세 가지로, 스마일 자메이카(Smile Jamaica), 업리프트(Uplift), 챈트(Chant)다. 3~5만원 정도의 가격이며 스마일 자메이카와 챈트는 나무로 만들었고 업리프트는 금속과 나무를 함께 사용한다. 케이블이 모두 멀티 컬러의 패브릭으로 만들어졌으며 모델에 따라 3버튼 리모트와 마이크가 탑재된 것도 있다. (아이폰 호환) 소리는 모두 중저음형이다. 굉장히 강한 저음으로 느껴질 것이며 고음은 약하다. 맑은 소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귀가 더욱 편안하고 시끄러운 바깥에서 들을 때 중저음이 잘 들리는 면도 있다. 더 하우스 오브 말리의 이어폰, 헤드폰 제품은 모두 레게 음악을 중심으로 튜닝되기 때문에 잔향이 많고 중저음이 강하니 참조해두자.

*참고 1
이어폰은 그나마 몇 개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5만원 이하의 헤드폰 중 사운드 퀄리티가 만족스러운 제품은 사막에서 다카르 랠리 중인 낙타 한 마리 찾는 것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소리가 새어나가며 소음 차단이 되지 않는 개방형 헤드폰은 몇 가지가 있지만(예: PortaPro, V-Jays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밀폐형 헤드폰에서 5만원 이하의 ‘고급품’을 권하기는 어렵겠다. 최소한 10만원은 투입해야 음악 들을 때 불쾌감이 없는 소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참고 2
샤오미의 피스톤2는 2만원대 가격으로 좋은 소리를 내주어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본인이 직접 들어보지 않아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현재 중국제 이어폰들의 시장 진입이 무서운 가속도를 보여주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편집 : 김정철 / 본 컬럼은 얼리어답터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