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필름을 쓰지 않아도 사진을 수백 장 찍을 수 있게 되면서 필름의 도태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즉석 카메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진을 바로 인화할 수 있다는 장점과 특유의 색감 때문에 아직은 꾸준히 수요가 있으나 언젠가 디지털 기술에 잠식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 두각을 보이는 기술이 디지털 사진을 즉석 인화할 수 있는 포토 프린트 기술이다. 디지털 사진을 전송하면 전용 인화지에 바로 인쇄하는 포토 프린터는 즉석 인화의 장점과 디지털 기술의 장점을 모두 갖춰 즉석 카메라를 대체할 수 있는 기기로 평가받는다.

즉석 카메라를 생산하는 후지필름에서도 포토 프린터를 출시했다. 다른 포토 프린터와 차별점이 있을까? 후지필름 피킷(PickIt)을 살펴봤다.
장점
– 사진 품질이 뛰어나다.
– 전용 앱에서 다양한 사진 편집 기능을 제공한다.
– 카트리지 교체로 반영구적 이용을 지원한다.
– 디지털 사진을 바로 인화할 수 있다.
– 인스탁스 시리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사진을 인화할 수 있다.
단점
– 크기가 휴대하기 부담스럽다.
– 배터리 성능이 나쁘다.
– 앱을 이용한 기능이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았다.
– 정보 제공이 불친절하다.
좋음과 나쁨 그 어딘가에 있는 휴대성
피킷은 성인 남성 손에 꽉 차는 크기다. 정확한 크기는 76.1×152.8x24mm. 무게는 238g으로 일반적인 스마트폰보다 조금 무거운 무게다. 휴대하기 나쁘다고 하기 어렵지만, 좋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한 손으로 들 수 있다는 점에 위안 삼아야겠다.

결국, 들고 다니려면 작은 가방에 넣어 다녀야 한다. 경쟁 업체의 제품은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고 가벼운 휴대성을 갖췄으나 피킷은 상대적으로 휴대성이 떨어진다.

또 하나 잊어선 안 되는 부분이 카트리지다. 피킷 본체에 꽉 차게 들어가는 카트리지는 그 자체로도 부피를 차지한다. 카트리지 하나당 들어간 인화지는 총 10매. 밖에서 수백 장씩 인화할 일이야 없으나 인화량이 늘어나면 카트리지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안 그래도 부족한 가방 공간을 피킷과 카트리지에게 나눠주려니…. 뭔가 아쉽다. 억울하다.
경쟁 업체의 인화지는 명함 크기다. 피킷은 카트리지를 통째로 갈아 끼워야 하기에 둘을 비교하면 휴대성 차이가 두드러진다. 후지필름 피킷으로 외부에서 사진을 인화하려면 본체, 카트리지, 보조배터리나 USB 전원 어댑터를 챙겨가는 것이 좋다. 따라서 부족한 가방 공간을 넉넉하게 내줘야 한다. 아, 가격은 비슷하다. 두 제품 모두 장당 450원 정도다.
휴대성을 버리고, 품질을 취하다.
카트리지와 인화지, 이 둘의 차이는 인쇄 방식에서 오는 차이다. ZINK 인화지는 잉크가 필요 없다. 인화지에 열을 가해 열 차이에 따라 색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잉크가 들지 않고 인화지만 넣어서 쓸 수가 있다. 피킷은 잉크를 겹겹이 입히는 염료승화형 프린팅 방식. 따라서 피킷으로 사진을 인화하면 사진이 나올 듯 말 듯 밀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러 번 인화해 색을 씌우기 때문이다.

한 번 나올 때마다 사진이 색을 입는다. 처음에는 노란색, 두 번째에는 붉은색, 세 번째는 모든 색을 다 입고 나오고, 마지막으로 말끔하게 코팅 옷을 입고 나온다.

이렇게 나온 사진의 품질은 휴대용 포토 프린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다. 출력한 사진의 색감이나 선명함이 ZINK 방식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피킷이 사진의 원래 느낌을 충실히 살렸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롤러가 지나간 세로줄이 살짝 보인다. 그러나 이 사진은 전문 인화기가 아닌 휴대용 포토 프린터로 인화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인화된 사진의 크기는 신용카드 정도의 크기로 지갑에 무리 없이 넣을 수 있다. 코팅된 부분이나 인화지 촉감은 영락없는 옛날에 우리가 만졌던 사진의 그 촉감이다. 피킷이 사진을 인화하는 마지막 단계가 코팅이라 인화된 사진은 물에 닿아도 크게 손상되지 않는다.
사진 출력을 돕는 앱
피킷에서 사진을 인화하려면 전용 앱을 설치해야 한다. 피킷에는 NFC 태그가 있어 NFC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이라면 피킷에 스마트폰을 올려보자. 바로 앱을 설치하고, 실행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플레이 스토어. 앱 스토어 등에서 ‘후지 피킷’을 검색해서 저장하자.

피킷 앱은 바로 크게 사진을 찍어서 인화하는 기능과 갤러리에서 사진을 골라 인화하는 기능으로 나뉜다. 두 기능을 실행하기 위해선 피킷과 같은 Wi-Fi로 연결해야 한다. 피킷을 켜면 자동으로 ‘Direct-Cube-코드’라는 Wi-Fi 신호가 생긴다. 스마트폰에서 연결하고 앱을 열면 왼쪽 윗부분에 피킷과 연결했다는 메시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배터리가 정확히 얼마나 남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갤러리에서는 여태까지 찍은 사진을 폴더별로 분류해 볼 수 있고, 찍은 날짜별로 분류해 볼 수도 있다. 원하는 사진을 선택하고 프린터 아이콘을 누르면 사진 인화를 시작한다. 한 번에 여러 장을 고를 수도 있다. 오른쪽에 폴라로이드 아이콘을 누르면 폴라로이드 모드가 켜진다. 폴라로이드 모드는 사진 주위에 테두리를 만들어 마치 후지필름 인스탁스로 촬영한 사진처럼 인화한다.

사진을 한 장만 선택하면 인쇄할 사진의 매수를 선택하고, 사진을 편집할 수 있다. 피킷을 쓰면서 높이 평가하는 점 중 하나가 기본 앱이 지원하는 편집 기능이 많다는 점이다.

필터 종류도 많고, 필터 적용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세밀한 조작을 지원한다. 사진을 자를 수도 있고,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로 묶을 수도 있다. 폴라로이드 모드를 켜서 테두리를 만들었다면 이 테두리에 무늬도 넣을 수 있고, 액자 효과를 넣을 수도 있다. 그 밖에도 명함이나 크리스마스 카드 템플릿을 지원해 여러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강력한 기능을 여러 장을 선택했을 때는 쓸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편집한 사진을 일일이 저장하고 이를 한 번에 인화하는 방법이다.
사진을 뽑다, Pick It!
수정을 마쳤으면 인화 버튼을 눌러 인화를 시작한다. 인화는 장당 약 1분30초 정도가 걸린다. 여러 장을 한 번에 인화하는 기능이 있는 만큼 대기열 기능도 지원한다. 피킷 하나에 기기 여러 대를 연결해 각자 인화할 사진을 선택해 인화하면 피킷은 이를 기억하고 차례대로 인화한다. 단, 인화가 끝나지 않았는데 앱을 종료해버리면 그 기기의 사진은 인화되지 않는다.

사진을 인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카트리지를 장착하십시오’라는 메시지가 나오면서 사진이 인화되지 않는다. 카트리지 안에 인화지가 떨어졌다는 소리다. 옆면을 열고 카트리지를 그대로 교체하면 된다. 잘못 넣을 구석도 없다. 카트리지는 복잡하게 생겼지만, 이용자가 손봐야 할 부분은 없다. 다 쓴 카트리지를 빼고 그대로 새 카트리지를 넣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현재 남은 사진이 몇 장인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앱에서도 기기에서도 남은 장수를 확인할 수 없다. 카트리지를 빼서 남은 장수를 어림해볼 수는 있지만, 정신 건강을 고려하면 추천하고 싶진 않다. 인화할 때마다 바를 정(正)자를 새길 수도 없는 노릇. 기껏 들고 나갔는데 인화지가 다 떨어졌다면… 그다음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진을 여러 장 인화할 수 있어, 이용자가 인화 버튼만 누르고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용지 출구에 사진이 걸려있으면 위와 같은 경고창이 표시되고 사진이 인화되지 않는다. 사진을 여러 장 인화하려면 이용자는 피킷 앞에서 약 1분30초마다 사진을 출구에서 빼고 확인 버튼을 눌러줘야 한다.

그리고 배터리도 신경 써야 한다. 배터리 소모량은 꽤 높은 수준으로 1장 인화할 때마다 5% 전후의 배터리를 쓴다. 이론상으로 사진 20장을 인화하면 배터리가 방전된다. 더군다나 배터리 잔량이 10% 미만일 때는 충전해야 쓸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가 표시된다. 따라서 실제로 인화할 수 있는 수는 더 적다. 그래서 외부에서 사진을 인화할 때, 본체, 카트리지와 전원 충전기를 챙겨야 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은 피킷의 배터리는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스탁스 다음은 피킷
냉정히 생각하면 인스탁스를 비롯한 즉석 카메라는 언젠가 디지털 카메라 때문에 잠식될 시장이다. 그나마 인스탁스는 전문적인 사진을 찍기보다는 액세서리로, 추억을 남기는 재미있는 도구라는 위치에 있어 시장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분명 인스탁스를 낡은 유물로 만들고 말 것이다. 폴라로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인스탁스 다음은 무엇일까? 디지털을 실물로 인화하는 기술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이미 디지털 카메라와 즉석 인화 기술을 덧붙인 제품이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제품이 편의성은 포토 프린터보다 나을 수 있으나 다양한 기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과 카메라 하나에 머물러야 한다는 점. 후편집 기능의 부재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인스탁스 다음은 피킷과 같은 일반 포토프린터 제품이 그 바통을 이어가리라 생각한다.

인스탁스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나누는 것만큼의 낭만은 떨어질 수 있지만, 즐거운 순간을 기록하고 이걸 바로 손에 들 수 있는 즐거움은 피킷으로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인스탁스 만큼의 ‘감성’은 없지만, 부족한 감성을 ‘편리함’과 ‘사진 품질’로 메꿨다. 앞서 언급한 사소한 단점이 보완돼 더 멋진 기기가 등장하길 바라본다.
사세요
– 모임에 나가서 사진 인화로 귀인이 되고 싶은 분
– 이미 찍은 사진을 인화해 앨범에 담아두고 싶은 분
– 지갑 속에 넣고 다닐 사진이 필요하신 분
사지마세요
– 인화의 꽃은 대형 인화라고 생각하시는 분
– 소지품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시는 분
– 장당 450원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시는 분
인화된 사진 품질 |
사진 인화 앱 기능 |
인화에 필요한 정보 확인 |
휴대성 |
사진 인화에 드는 기회 비용 |
6.8 |
포토 프린터 중 값어치는 하는 제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