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다. 아침에 창문을 열 때마다 어제보다 따뜻해진 공기가 느껴진다.

“어 벚꽃이네?”

반가워하며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던 꽃잎들이 어느 사이엔가 바닥으로 내려앉아 이제는 내려다보는 시기가 됐다. 올해 봄은 아쉽지 않게 즐긴 건가? 봄을 돌아보는 사이에 이미 저만치 멀어진 기분이 든다. 아쉽다. 벌써 한낮에는 반소매 티만 입고 돌아다녀도 어색하지 않은 날씨인데.

이제 여름이다. 봄의 숙제라면 벚꽃 구경. 여름이라면? 당연히 냉면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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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준비해 봤어. 쿄로짱 빙수기. 이 귀여운 곰돌이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처음 쿄로짱 빙수기를 본 건 영화 ‘호노카아 보이’에서 소품으로 등장한 장면이었다. 영화 등장인물인 ‘비(Bee)’ 할머니의 아기자기한 부엌 선반 위에 얌전히 놓여 있는 쿄로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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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호노카아 보이 中

영화 ‘호노카아 보이’속, 여유롭다는 말로는 모자랄 정도로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하와이의 조그마한 마을. 소녀 감성인 비 할머니의 취향으로 꾸며져 있는 부엌 소품 중에서도 쿄로짱 빙수기는 단연 눈에 띄는 아이템이었다.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호노카아 보이 빙수기’로 많이 알려졌다.

쿄로짱 빙수기는 1978년에 처음 출시된 제품으로 이미 단종된 제품이다. 복고풍인 제품을 선호하는 수집가들 때문인지 빈티지 아이템을 판매하는 쇼핑몰에서는 무려 2~30만원대에 거래 중이기도 하다. 단종된 제품이라 구하기 쉽지 않아서 웃돈이 붙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너무 갖고 싶은 아이템이었지만 단순히 얼음만 갈아줄 뿐이고 아무리 예쁜 모양이긴 하지만 선뜻 구매하기에는 부담되는 가격이라 포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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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쿄로짱이라고 해! 1978년생이지!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소식. 쿄로짱 빙수기를 원형 그대로 재발매한다니! 게다가 가격은 빈티지 가게에서의 판매가보다 훨씬 저렴한 5,400엔(약 57,000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주문. 아쉽지만 제조사인 일본 타이거 온라인 쇼핑몰에서 국제 배송을 해주지 않아 일본 배송대행지를 이용했다. 수수료+국제/국내 운송료 등으로 27,000원 추가로 지출.

 

kyorochan-11제조사 홈페이지에서 예약 판매했던 제품이라 주문을 하고서는 잊고 지내기를 몇 주. 어느 날 택배 아저씨가 내 이름을 부른다. 목소리 톤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던 건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본다. 원래는 배송대행지를 이용할 때 부피와 무게를 줄여 국제 운송료를 낮추려고 제품 상자 등의 포장을 제거해버리는 옵션이 있었다. 하지만 원형 그대로를 만나고 싶어 원래 상자 그대로 받아봤다. 패키지는…. 일본 제품들은 원래 이런가? 작년에 장만했던 여름 아이템 전동 부채 패키지랑 비슷한 분위기다. 좀 촌스럽다. 그래도 좋다!

 

생각보다 쿄로짱이 크다. 이미지로 봤을 때는 그냥 귀여운 곰돌이 장식품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하긴 아래에 그릇을 놓고 갈린 얼음을 받으려면 이 정도 크기는 되어야겠지.

 

kyorochan-12패키지 안의 구성품은 단출하다. 쿄로짱과 얼음을 얼릴 수 있는 얼음통. 냉장고에 있던 얼음틀로 얼린 각진 얼음도 사용할 수 있고, 함께 들어있는 얼음통을 이용하면 크기에 딱 맞는 얼음을 만들 수도 있다. 우유를 얼려서 빙수를 만들어 먹을 때 써먹으면 편하겠다.

사용 방법은 단순하다. 쿄로짱 모자를 열고, 얼음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갈린 얼음이 나온다. 끝. 손잡이를 돌릴 때 귀여운 쿄로짱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이는 건 덤.

 

kyorochan-08큰 빙수 그릇을 사용할 때는 얼음이 갈리는 부분만 분리해서 사용할 수 있다. 쉽게 분리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설거지하기도 쉽다.

 

사실 많고 많은 얼음 갈아주는 제품들 중에 굳이 쿄로짱을 선택한 건, 기능적인 부분 보다 디자인 때문이다.

 

꼭 주방 선반이 아니더라도 아무 데나 얹어놓으면 예쁜 곰돌이 장식품으로 변신하는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몇 년 전 자취를 시작했을 때 귀여운 토스터기를 장만 했다가 식빵 한 봉지 달랑 구워 먹고 사용하지 않아서 나중에 보니 안락한 거미집이 되어있는 걸 발견한 적이 있는데… 괜한 걱정이겠지?
쓸데 없는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빙수기도 생겼으니 빙수를 만들어 볼까?

 

kyorochan-06오늘은 간단하게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스푼에 → 쿄로짱으로 갈은 얼음을 뿌리고 → 딸기잼을 얹어서 → 과자와 딸기 장식으로 마무리.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쿄로짱의 눈동자와 눈 맞춤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얼음을 갈고 싶어진다. 직접 손으로 얼음을 갈아 빙수를 만드는 과정이 수고스럽지 않다. 왠지 얼음만 갈아도 자연 치유가 되는 기분이야. 이런 게 힐링인가.

 

kyorochan-03올 여름은 쿄로짱과 함께라면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쿄로짱~! 잘 부탁해~!

아 귀여워...
보기에 좋거나 쓰기에 좋은 걸 사고 싶지만 그냥 싼 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