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은 광복절 70주년이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서거 70주기였기도 했죠. 그래서일까요. 조용하지만 강하게, 윤동주와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 볼 기회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많은 관객이 찾고 있는 영화 ‘동주’부터, 윤동주 시집까지 판매되고 있죠.
1948년 초판본
이미 인터넷에서 많은 화제인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초판본. 거의 완벽하게 원래의 디자인을 복원해서 재발행했습니다. 사실은 밑에 소개할 증보판의 부록인데요. 복고풍의 디자인이 주목 받는 요즘 시대와도 잘 맞아 떨어집니다. 이 파란 표지의 얇은 책은 그가 살아있을 때에도 발표되지 못했던, 세상을 떠난 후에 비로소 발행된 유고시집입니다.
그의 섬세하면서도 강직한 자아성찰의 흔적이 엿보이는 아름다운 시 구절. 예스러운 활자체, 당시의 맞춤법과 한자, 깔끔하지 않은 인쇄 상태까지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보기 불편하다는 불평이 아니라 마음 한 구석에서 뭉클한 무언가가 생겨납니다.
그것은 아마도 진실된 그의 마음이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전해지면서, 죽어있던 제 마음에 부드러운 경종을 울리는 게 아니었을까요? 이 작은 시집에는 짧은 듯 오랜 여운을 전달하는 31편의 시가, 쓰여진 날짜와 함께 들어있습니다.
1955년 증보판
이 책은 서거 10주기를 기념하여 발행됐던 증보판을 그대로 다시 발행한 것입니다. 1948년의 초판본이 나온 이후에 추가로 공개된 시와 산문이 포함되어서 훨씬 두껍고 분량도 많죠. 투박한 듯 옛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표지 디자인이지만 이질감보다는 친근감이 듭니다. 6·25전쟁 후 5년, 암울했던 그 시기에 윤동주 시인의 서거 10주년이 갖는 의미는 지금의 70주기와 어떻게 달랐을지 생각에 잠기게 하네요.
상당한 미남이었다고 하는 윤동주 시인의 모습과 함께, 책의 첫 장은 많이 익숙한 ‘서시’로 시작합니다. 어두웠던 당시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하지만 부끄럽지 않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의 글귀는 지금까지도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전해주기 충분하겠죠.
지금은 어색한 세로 읽기,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한자와 지금과는 다른 맞춤법 때문에 천천히 경건하게 읽어 내려가게 됩니다. 그럴수록 한 줄 한 줄의 메시지가 마음에 더욱 깊이 안착해 머리를 깨우는 느낌이 듭니다.
역사재중
역사 기록이 들어있는 또 하나의 부록 ‘역사재중’입니다. 이번 증보판 재발행 책을 구매하면 초판본과 함께 딸려 오는 선물인 셈인데요.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 영인본이 실려있습니다. 이 육필원고의 원본은 2012년, 윤동주 시인의 큰 조카인 윤인석 교수가 연세대학교에 기증했던 것인데요. 비록 복사본이지만 손끝으로 매만지면 그의 감정과 생각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일제시대의 세로 원고지에 오밀조밀 꾹꾹 눌러 쓴 윤동주 시인의 개성 있는 필체가 눈에 한 줄 한 줄 들어오면서 반가움과 함께 왠지 모를 안타까운 감정도 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낯선 한문과 차가운 일본어. 윤동주 시인에 대한 교토 지방재판소의 1944년 재판 기록 판결문입니다. 윤동주의 죄목은 반제국주의 행위로 인한 치안유지법 위반. 우리나라에 대한 애착을 문학적 탐구로 표출한 걸 독립의 야망을 실현하려 했다며 징역 2년의 판결을 내립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죠. 윤동주는 항소를 하지 않고 이 내용들을 전부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2년이 지나기도 전에 바람에 실려 하늘의 별로 떠나가고 맙니다. 광복의 기쁜 순간을 맞이하지도 못한 채로 말입니다. 마지막에 휘갈겨 쓴 일본인 판사들의 서명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저에게 ‘윤동주’는 학창시절부터 국어 문제를 풀며 그저 익숙해져 있던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책을 받아 들고 보니 새로운 문학적 경험과 함께 과거 성찰과 자기 반성의 시간도 갖게 합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증보판 오리지널 디자인의 가격은 인터넷 서점에서 8천원대입니다. 로봇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감성을 깨워줄 색다른 책, 그리고 그 이상의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도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