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가 내렸습니다. 봄이 저만치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네요.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 우산을 들고 다닙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보니까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 새빨간 우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벚꽃우산. 우산의 주인 M씨에게 우산의 정체가 무언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걸 왜 사셨나요?
M : 비를 맞으려고요.
얼리어답터 : 네? 연휴 동안에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셨나요?
M : 이 사람 참. 뭘 모르시네. 나는 비를 맞지 않지만 내 마음은 꽃비를 맞는다고요.
얼리어답터 : 그냥 이렇게 보면 숨은그림찾기에나 나올 법한 평범한 우산 같은데…
M : 그렇죠? 이 강렬한 빨간 색채. 보호본능을 부르는 슬림한 몸매. 귀여우면서도 시크한 블랙 손잡이.
얼리어답터 : 간만에 비가 와서 그런지 굉장히 감성이 풍부해지셨네요. 시 한 편 쓰셔도 되겠어요.
M : ‘오늘은 무얼 먹을까. 비가 오는 날엔. 아무래도 라멘이지.’
얼리어답터 : ……
감성을 건드리는 수동우산
얼리어답터 : 장우산인 건 그렇다 치는데 심지어 자동도 아니네요?
M : 그래요. 아날로그 감성이 충만한 우산이죠. 요즘은 모든 게 디지털이다, 자동이다, 인간미가 하나도 없어요.
얼리어답터 : 네, 그렇긴 해요. 응답하라 시리즈가 사랑받는 이유도 그런 감성이 있기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설득 당하는 중)
M : 손으로 이렇게 쫙 피면 비가 와서 흐려진 내 마음도 활짝 문이 열리는 것 같아요. 해보세요.
얼리어답터 : 아… 네…
M : 그래, 이거지 이거.
얼리어답터 : 펼치는 느낌은 좋네요. 살도 많아서 튼튼할 것 같고요.
M :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요.
비가 오면 벚꽃이 내 마음에

얼리어답터 : 왜 이름이 벚꽃우산인가요?
M : 비가 오면 알게 됩니다.
얼리어답터 : 이제 비가 안 오는데요…
M : 분무기라도 뿌려보죠. 이거 봐! 꽃이 나오잖아! 꽃! 벚꽃! 사쿠라네? 사쿠라여!
얼리어답터 : 네 그러네요.
M : 왜 반응이 그렇게 미적지근하죠?
얼리어답터 : ……어머낫! 아니 이럴 수가!
M : 그렇죠? 엄청나죠? 너무 예쁘죠? (흐뭇)
얼리어답터 : 네, 정말 그렇습니다. 근데 가격은 얼마쯤 하나요?
M : 만 얼마 했던 거 같아요. 오래 돼서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얼리어답터 : 우산 치고는 그렇게 싼 건 아니네요.
M : 이렇게 예쁜데 만원이면 거저지 무슨 소리를! 물론 내꺼 아니고 우리 집사람꺼라서 상관없어요. 사실 이거 집에서 나올 때 몰래 갖고 나온 거야. 알면 큰일 나. 예뻐서 그런지 여자들이 진짜 좋아해. 아까도 봤죠? 여신 과장님이랑 우리 디자이너님 감탄 연발하는 거?
얼리어답터 : ……
마음에 내리는 벚꽃.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하는 벚꽃.
얼리어답터 : 그런데 우산 안쪽에서는 꽃이 안 보이는데요? 그럼 저는 못 보잖아요.
M : 그렇죠. (당당)
얼리어답터 : 너무 당당하신 태도 같습니다…
M : 벚꽃은! 비가 오면! 내 마음 속에 내립니다! 마음을 적십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되지 이 사람아!
얼리어답터 : 아… 네…
M : 그리고 다른 사람이 딱 봤을 때. 어? 예를 들어봐요. 우산을 딱 펴고 걸어가는 순간에 맞은 편에서 예쁜 여자가 이 우산을 딱 봤어. 서서히 벚꽃이 나타나. 그럼 어떨 거 같아요?
얼리어답터 : 헉. 정말 멋지겠는데요. 장난 아닌데요. (설득 당함)
M : 바로 그거지 이 사람아! 이제야 얘기가 통하네.
우산은 잃어버리라고 있는 것?
얼리어답터 : 그런데 이렇게 예쁘고 비싼 우산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참 마음이 아플 것 같아요.
M :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잃어버려야 빨리 다른 걸로 또 사지. 이 사람 진짜. 말이 좀 통한다고 생각했더니만.
얼리어답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