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와디즈 ’라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재미있는 제품 하나를 만났다. 생전 처음 들어본 참기름 브랜드였다. 목표로 하는 투자 금액은 500만원, 딱히 관심 있는 제품 카테고리도 아니건만 독특한 카피와 제안이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이 참기름 브랜드는 자신의 ‘양심’을 눈으로 보여주겠다고 호언하고 있었다. 품질도 공정도 아닌 생산자의 양심을 보여준다고? 도대체 어떻게? 여름 수박처럼 재배한 사람의 사진을 스티커로 붙여놓았을까? 하지만 이 브랜드의 방법은 조금 달랐다.
“정준호 참기름은 한병의 기름을 착유 후 남은 원재료를 함께 드리고자 합니다. 함께 드리는 깻묵을 통해 원료의 가공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전문가라면 원산지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브랜드가 선택한 방법은 포장에 기름의 원료인 찌꺼기, 즉 깻묵을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 깻묵으로 샐러드 소스나 나물 무침 등의 음식에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빼곡히 적어두고 있었다. 이뿐 아니다. 자신의 양심을 져버릴 경우 1억 원을 배상하겠다는 약정서와 제조 방법 특허는 물론 발암물질 불검출 검사 성적서까지 꼼꼼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소박한 펀딩 프로젝트의 소개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참기름 자체도, 후원을 통한 혜택도 아니었다. 바로 다음과 같은 호소문?이었다.
“그래서 저, 정준호는 양심을 함께 드려 진짜가 진짜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자 합니다. 양심 있는 식품이 일상이 되는 식문화를 위해, 함께 응원해주세요!”
500만 원의 돈이 없어 투자를 원하는 참기름집 주인장이 양심과 식문화와 진짜로 살아남기 위한 고민을 이야기한다. 한편으론 뿌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길 없다. 역사상 가장 풍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빈곤한 것이 바로 이 ‘믿을만한’ 먹거리 아니었던가. 굳이 <먹거리 X파일>의 착한 음식을 찾기 위한 고된 여정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동안 맞닥뜨렸던 ‘가짜 음식’의 히스토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결국 이 브랜드는 목표로 했던 금액을 훌쩍 넘긴 700만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고 그 어렵다는 대형 마트까지 입점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 참기름이 얼마나 ‘진짜’ 참기름에 가까운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나지만 괜스레 가슴 뿌듯해지는 경험이었다. 이런 브랜드들의 성공만이 수익과 관행이라는 이유로 양심에 눈감은 식품 시장을 깨끗하게 정화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생각’이 실제로 거대한 브랜드로 성장한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정직’이라는 이름을 가진 브랜드 하나가 1억 달러가 넘는 가격에 코카콜라 브랜드에 인수되었다. ‘Honest Te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브랜드의 창업자인 세스 골드먼은 어느 날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묻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뭔가를 만들고 싶어. 날 흥분시키고 하루하루 살 수 있게 하는 그런 거.”
하버드대와 예일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유명투자회사에 근무하던 그는 결국 스승인 배리 교수와 함께 보온병 5개로 설탕 범벅인 차 음료 시장에 뛰어들어 파란을 일으킨다. 그는 정직한 원료와 유통 방식을 통해서도 유의미한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사업을 시작했다. 결국 이 브랜드의 성공은 결국 다른 음료의 칼로리까지 낮추는 등의 직접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이런 그의 창업 철학은 마케팅 캠페인과 프로모션을 통해 다양하게 드러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정직지수 캠페인’이다. 그는 미국 50개 주에 무인판매대를 설치하고 어니스트 티 한 병에 1달러를 받는 일종의 미국판 ‘양심 냉장고’를 진행했다. 그 결과 앨라배마와 하와이가 100%를 기록해 가장 정직한 주로 꼽혔으며, 미국인 전체의 정직 지수는 무려 92%에 달했다. 2010년부터 계속된 이 캠페인은 결국 2011년 칸 광고제 아웃도어 부문에서 ‘골드(GOLD)’ 상을 수상했다.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나라에서 같은 캠페인을 했다면 과연 몇 %의 사람들이 제값을 내고 음료수를 가져갔을까? 중요한 것은 1달러짜리 음료의 가치가 아니다. 사람들의 양심은 일견 개인적인 도덕심, 혹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정직’과 ‘양심’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 결과가 눈에 보이는 보상과 결과로 돌아오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과 제품과 서비스들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매출이 인격’이란 말에서도 드러나듯 오늘날 비즈니스에서 성공의 척도는 많은 경우 ‘돈(매출)’으로만 측정되어왔다. 하지만 이같은 자본에 대한 믿음 역시 결국은 상대방이 그 돈을 다른 물건으로 바꿔주리라는 사회적인 신뢰와 약속 위에 서 있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더 많은 제품을 더 싸게 내놓는 것만으로도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연결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고(Airbnb), 낯선 이를 자신의 차에 태워주기도 하고(Uber), 자신의 반려동물을 모르는 사람에게 순순히 맡기고 있다(Rover). 그리고 이러한 비즈니스 플랫폼의 변화에 중심에는 바로 정직, 진정성, 양심과 같은 ‘신뢰’라는 자산이 자리 잡고 있다.
‘정준호 참기름’의 성공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박한 농부 정도로 여기거나, 어니스트 티의 성공을 먼 나라 미국의 이야기로만 생각한다면 분명 그것은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양심이란, 정직이란 그리고 신뢰란 윤리 교과서나 사전 속에서만 등장하는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자본만큼이나 중요한 보이지 않는 ‘자산’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하나다. 당신이 가진 그 신뢰를 이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 새로운 브랜드의 등장은 바로 이 어려운 숙제를 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글 : 박요철 / 편집 : 김정철 / 본 컬럼은 얼리어답터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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