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얼리어답터의 실험실 대장님은 신기한 부채를 하나 지르셨다며 흐뭇한 미소로 자랑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여름이 다 갔는데 웬 부채? 하지만 대장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애매한 시기야말로 이런 부채가 필요한 최고의 적기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은 모르겠지만 물건을 구경해보니 꽤 궁금해졌습니다. 이름하여 ‘USB 전동 부채(USB 電動 うちわ)’ 입니다.
장점
– 그 어떤 소품도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나타낼 수 있다.
– 손으로 부채질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 선풍기를 창고에 넣었다면 유용해진다.
단점
– 바람 세기가 애매하다.
– 소리가 시끄럽다.
– 선풍기와 함께 창고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코레와 덴도 우치와데쓰.
이것은, 부채입니다. 그냥 부채도 아니고 전동 부채입니다. 기모노를 입고 있는 예쁜 여인 덕분인지 조금 므흣… 아니 흐뭇한 생각도 들고 제품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져갑니다. 어쨌든 저는 상자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만들어 볼까요
손재주가 좋으신 얼리어답터 실험실 대장님께서 직접 조립을 하십니다. 소요 시간은 약 30분, 난이도는 별 5개 중에서 2개 정도로 어렵진 않은 편입니다. 어렸을 때 과학상자를 많이 갖고 놀아보셨다면 이 정도는 껌입니다. 만들면서 굉장히 뿌듯해 하시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오오키이네… 스고이요…
만들어 놓고 보니 이것 참 희한합니다. 부피도 크고 책상에 놓으면 은근히 동선을 방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부채도 나사로 박아야 해서 탈부착이 번거롭습니다. 모터 부위의 마감은 왜 만들다 만 것처럼 되었는가, 부채를 손으로 부치지 않기 위해서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것인가, 퇴근은 언제 할 수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또 여긴 어딘가, 잡생각이 많아집니다.
키레이네…
사실 이 전동 부채의 생김새는 도저히 예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또 이런 물건을 볼 수 있을까요? 이 기괴하고 엉성한 생김새에서 뚝뚝 흘러 떨어지는 희한한 분위기. 이걸 집이나 회사 책상에 놓는다면 분명 당신도 유니크해질 것입니다. 조금 더 예뻐 보이게 만들고 싶다면 아래의 판때기에 아기자기한 소품이라도 올려놓아 보세요. 모두 쇠로 만들어져 있어서 자석이 잘 붙으니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액세서리도 좋습니다.
기모찌이이?
어쨌든 컴퓨터의 USB나 보조배터리에 꽂으면 부채를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부채를 부치기 위해 마치 차량 엔진의 피스톤처럼 부품들이 열심히 휙휙 움직이는 모습이 가관입니다. 이걸 보다 보면 이상하게 계속 멍하니 바라보게 만드는 무언가 묘한 매력이 있기도 합니다. 저는 이 움직임에서 자꾸 뭔가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아마 공감을 받을 수 없을 테니 말씀 드리진 않겠습니다.
하야꾸. 하야꾸. 이꾸. 이꾸!
놀랍게도 스위치를 통해 바람의 세기까지 조절할 수 있습니다. 1단계 초미풍과 2단계 약풍이 그것이죠. 이름은 제가 지었습니다. 초미풍은 1분에 약 108회 정도 바람을 부쳐줍니다. 노인들이 그늘에서 설렁설렁 부치는 듯한 세기입니다. 약풍은 1분에 약 154회 정도의 부채질을 합니다. 여름 더위에 짜증을 내면서 부채질을 할 때의 속도와 비슷합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바람은 세지 않습니다. 좌우로 약 20cm 정도를 움직이며 부채질을 하는데, 부채를 떼어버리고 그냥 손으로 부쳐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게 만듭니다. 하지만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어야 하니 귀찮기도 하고, 손으로 들어서 더 가까이라도 부채질을 하고 싶지만 전체 1kg가 넘는 쇳덩이의 무게 때문에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근력 운동을 할 땐 좋을까요? 그립이 불편해서 별로겠죠. 할 수 없이 그냥 이 녀석이 열심히 돌고 있는 모습을 차분히 보고 있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안정되죠. 가만히 있으면 시원하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몸소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참을성을 길러주는 교훈적인 면도 갖췄네요. 그래도 한여름에는 사용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모오 이야, 이야다…!

이렇게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라면, 상자의 그림에서처럼 잘 때 틀어놓기 딱 좋지 않을까요? 아니오. 안됩니다. 꽤 시끄럽기 때문이죠. 초미풍은 그럭저럭 견딜 만하지만, 약풍은 삐걱삐걱 끼익끼익 왱왱왱왱 위잉위잉 비잉비잉 돌아가는 세상도 나를 비웃듯이 계속 꿈틀대는 기계 소리가 굉장히 거슬립니다. 사무실에서 10분 정도 켜놓고 있었더니 통로 2개를 건너 반대편에 앉아계신 호랑이 과장님께서 뭐가 이렇게 시끄럽냐며 불만을 토로하실 정도였죠.

약풍의 경우 바람에 비해 힘은 또 무지막지하게 들어갑니다. 어찌나 진동이 센지 책상에 덜덜덜 흔들림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온 몸으로 주인님을 위해 부채질을 해준다는 걸 어필하는 걸까요. 밑면에 붙어있는 각종 고무 패킹들이 밀려있는 흔적이 가슴 아픕니다. 고무가 밀리면서 하얀 책상도 더러워졌네요.
바람 쐬어보지 않은 자는 말하지 말라.
USB 전동 부채는 Thanko라는 일본 업체에서 판매하다가 지금은 품절 상태입니다. 이베이에서도 살 수 있죠. 저희 실험실 대장님께서는 91.64달러(약 10만6천원)에 구매하셨다고 합니다. 10만원이면 14인치 스탠드 선풍기 2개를 살 수 있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썰며 풍족하게 외식을 할 수 있겠다구요? 그렇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 겁니다.
이 전동 부채엔 손으로 부치는 부채를 굳이 자동으로 만들겠다는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소울이 느껴지신다면 다 똑같은 기성품에 질려 파김치가 된 지름의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습니다. 이건 아무나 느끼지 못하는 거죠. 또한 더워도 시끄러워도 참을 수 있다는 인내력과 함께 세상 만물의 이치에 대해 다시금 고찰하게 되는 기회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작은 부채 하나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 아이템, 참 대단하죠?
전동 부채의 힘세고 강한 움직임과 솔솔바람의 미스매치를 가만히 지켜보시던 실험실 대장님께서는 한 마디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리뷰 쓰고 얼른 치워.
사세요
– “이런 걸 왜 사?”라는 말을 자주 듣는 분
– 유니크한 소품에 관심이 많은 분
– 간단한 부채질도 귀찮은 궁극의 귀차니스트
사지 마세요
– 기계 소음을 싫어하는 분
– 허리케인 같은 바람을 기대하는 분
– 가족과 함께하는 풍족한 외식의 즐거움이 더 중요하신 분
* 본 리뷰에 사용된 제품은 실험실 대장님께서 직접 구매했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디자인 |
화제성 |
바람 생성 능력 |
발암 유발 확률 |
유니크한 가격 |
6.4 |
이게 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