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음질의 세계는 참 오묘합니다. 다 작고 비슷한 것 같은데 어떤 건 만원, 어떤 건 수백만원에 이르기도 하죠. 그 중에서 저처럼 적당한 가격에 나쁘지 않은 음질의 이어폰을 찾으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이번에 제가 들어본 줄루코리아의 제로(Zero) 이어폰은 듣기 전부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녀석입니다. 안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죠. 그 특별함 때문에 지난 KITAS 2015 전시회에서도 기대를 모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 녀석의 진면목은 어떨까요?
장점
– DAC가 들어있어 소리를 아주 우렁차고 크게 키울 수 있다.
– 리모콘이 크고 조작하기 편하다.
– 케이블이 튼튼하다.
단점
– 얇은 막에 가려진 듯한 음질
– 스마트폰 충전을 하면서 들을 수 없다.
– 일부 안드로이드 기기에서는 들을 수 없다.
DAC를 아시나요? DMC는 아는데…
우선 제로이어폰의 특별한 점은 꽂는 플러그가 마이크로 USB 단자인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DAC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DAC는 Digital Analog Converter,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해주는 변환기입니다. 보통 볼 수 있는 3.5mm 이어폰 플러그는 아날로그인데요, 음악을 곧바로 아날로그 신호로 바뀌면 음질이 알게 모르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기기에서 나오는 음악의 디지털 신호를 그대로 받아서 아날로그로 바꿔주는 앰프가 있다면 음질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거죠.
제로이어폰은 리모콘에 DAC가 들어있습니다. Cortex M3 MCU라고 하는 울프슨(Wolfson)의 앰프인데, 제조사에 따르면 가장 작은 오디오 DAC 앰프라고 합니다. 게다가 전력을 소모하는 양도 적은 것이 매력인데 실제로 기기의 배터리 타임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작지만 알찬 내용물이 들어있어요.
우선 줄루이어폰의 평범한 종이 상자는 크게 기대하게 만들진 않지만 여러 가지 내용물이 들어있는 파우치를 열어보면 꽤 의외입니다. 크고 작은 이어폰 팁이 여분으로 더 들어있고, 컴퓨터에도 연결할 수 있는 USB 젠더까지 있습니다. 다만 이어폰 팁은 전체적으로 크기가 좀 큽니다. 귓구멍이 작은 저에게는 치명적이네요.
범상치 않은 생김새
줄루는 은은한 금색과 장미 같은 붉은색 2가지 컬러가 있습니다. 이어폰 유닛과 리모콘의 색상만 다릅니다. 선택하기는 애매하지만 튀지 않아서 어떤 걸 골라도 무난합니다. 케이블은 안이 보여서 독특합니다. 매번 검은색 케이블만 보다가 이걸 보니 신선합니다. 유연하면서 꽤 튼튼한 느낌을 주네요.
안드로이드만 바라보는 망부석
줄루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안드로이드 기기는 공식적으로 갤럭시 S3나 갤럭시노트 2 이후의 모델, LG G Pro 2와 G3, 소니 엑스페리아 Z1 이후 모델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더 자세한 지원 기기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제가 갖고 있는 넥서스 7 태블릿은 목록에 나와있진 않지만 연결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 아이폰에는 꽂을 수 없을까 하다가 라이트닝-마이크로 USB 젠더를 사용해봤지만 인식이 되진 않았는데, 굳이 아이폰에 연결하고 싶을 때는 라이트닝 USB 카메라 어댑터와 USB 젠더를 쓰라고 합니다. 굉장히 거추장스럽겠네요.
USB로도 되는 디지털 출력
노트북의 USB 단자에 이렇게 꽂아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PC의 사운드 출력에서 항목을 제로 이어폰으로 선택하면 음악이 나옵니다. 맥북에서도 작동하죠. 보기에는 썩 좋지 않지만 리모콘으로 컴퓨터의 볼륨을 조절하면서 노래를 들으니 꽤 편했습니다.
호방한 저음에 놀라고 터프한 고음에 또 놀라고
DAC를 내장한 만큼 출력이 굉장히 높아서 소리가 아주 큽니다. 귀를 완전히 멀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음질은 놀라운데요, DAC를 내장했다고는 어쩐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어폰 유닛 드라이버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몇 곡의 노래를 직접 들어본 느낌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세기의 명곡,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 어쿠스틱 라이브 버전을 들어봤습니다. 간드러지는 기타 소리와 비트가 퍼지며 울리는 무대의 현장감이 잘 느껴집니다. 공간감이 넓게 느껴집니다. 다만 어딘가 약간 먹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제가 좋아하는 걸그룹 러블리즈의 발랄한 곡 ‘Hi~’의 경우에도 박력 있는 테크노 비트와 저음은 마음에 들었지만, 청아한 보컬들을 그대로 표현해 주지는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러블리즈의 리더 베이비소울의 가늘지만 청아한 보이스 매력이 다 보여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 AC/DC의 ‘Back in Black’도 들어봤습니다. 날카로운 기타와 보컬, 풍성한 소리들이 어우러져 롹 스피릿으로 머리를 까딱거리기 충분하지만 어딘가 드럼의 타격감이 시원하게 뻗는다기 보다는 조금 뭉치는 듯 했습니다. Limp Bizkit의 ‘Rollin’ 처럼 기타와 드럼의 타격감이 센 메탈 음악의 경우는 그 뭉치는 느낌이 확연해졌습니다.
꿈과 야망이 가득한 DAC 내장 이어폰
DAC를 넣은 헤드폰은 있었지만 이어폰은 제로이어폰이 처음입니다. 작은 리모콘에 들어간 DAC의 위력은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했죠. 실제로 출력이 높아서 커다란 소리에 놀랐고 저음을 잘 잡아내며 제가 좋아하는 파워풀한 부스트로 노래가 풍부해진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고음이 다소 뭉툭한 것은 아쉬웠죠. 고출력에 걸맞게 더 섬세한 표현까지 할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가격은 58,600원으로 웬만한 번들 이어폰보다는 조금 더 비싸다고 할 수 있는데요. 고음질 음악 감상 마니아 분들을 제외하고 내장 DAC가 도대체 뭘까 궁금해 하신다면 한 번쯤 살펴 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세요
– 음악을 무조건 크게 들으시는 분
– 중저음 위주의 묵직한 노래를 즐겨 들으시는 분
– 케이블이 튼튼한 이어폰을 찾으시는 분
사지 마세요
– 맑고 청량한 음색을 선호하시는 분
– 애플 기기로 음악을 들으시는 분
– 하이파이 오디오 리스너 (더 비싼 거 사세요.)
* 본 리뷰에 쓰인 제품은 줄루코리아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무난한 디자인 |
힘세고 강한 출력 |
호방한 저음 부스트 |
청아한 고음 |
호기심을 부르는 가격 |
7.0 |
DAC를 너무 신뢰한 나머지 실전에서 약간 긴장한 것 같은 이어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