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전축’의 시대는 갔고, 오디오의 시대도 갔다. 그 빈자리는 이어폰과 헤드폰, 그리고 가냘픈 블루투스 오디오가 대신하고 있다. 분리형 파워와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사람은 이제 신화속에서나 등장할 지경이다. 그러나 한 때,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홍대에서는 인디밴드가 하나둘씩 연주를 시작했고, 카페에는 좋은 시스템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시절 음악 좀 튼다는 곳에는 으레 이렇게 생긴 스피커가 바닥에 놓여 있거나 매달려 있었다.
카페에서는 아마 위 이미지처럼 스탠드에 올려지기 보다는 브라켓을 통해 천정에 매달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업소용 제품은 가격대 성능비가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발견한 제품이 바로 보스 901이다. 당시 쓸만한 중고 제품은 100~150만원 정도였는대 이 가격대에서 보스 901을 이길 수 있는 스피커는 많지 않았다. 보통 카페들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틀기 마련인데 보스 901만큼 장르를 가리지 않는 스피커를 찾기 힘들었었다. 또한 카페에서 이 스피커를 사용하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잘못 설치한 사례가 많은 스피커
유닛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스피커는 방향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일정한 각도를 벗어나면 소리의 에너지가 감소해 잘 들리지 않는다. 반면 우리가 가장 좋은 소리라 여기는 콘서트홀의 경우 소리가 벽을 타고 반사되는 반사음이 훨신 많다. 이런 실제 음악 청취의 환경을 고스란히 스피커에 담아낸 것이 바로 보스 901이다. 이 스피커는 1968년, 미국의 보스 박사가 자신이 연구한 모든 이론을 집대성해서 만든 스피커다. 다른 스피커와 달리 앞으로 나오는 소리보다 뒤로 나가는 소리가 더 많았다. 매뉴얼에도 89 : 11로 표시되어 있다.

그래서 후면에 8개의 4.5인치 유닛이 있고, 전면에 1개의 유닛(역시 4.5인치)이 있다. 그래서 흔히 보는 북셀프나 톨보이 형태의 스피커와는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그렇기에 뭔가 특이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선택한 카페 사장이나 오디오 업자들도 꽤 많았다. 물론 그런 곳은 제대로 설치된 경우가 거의 없긴 했지만. 심지어 거꾸로 설치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TV 화면을 벽을 보도록 설치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보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도대체 이 스피커, 소리가 왜 이래??” 아니다. 당신이 잘못 설치한 거였다.
어떤 소리를 들려주길래?
반사음을 기반으로 하는 보스 901의 소리는 큰 공간을 형성한다. 이건 장점이자 단점이다. 먼저 장점이다. 일반적인 스피커 근처(특히 소리가 잘 들리는 스윗스팟)에서는 목소리를 높여야 대화가 된다. 반면 보스 901은 스윗스팟의 개념이 거의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공간 어느 곳에서나 적당한 볼륨으로 소리가 들리고 적당한 목소리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카페용으로는 최적이었다.
단점도 있었다. 반사음을 이용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특정 악기의 위치가 눈에 보이는 것(위상감이라고 한다)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업소라는 특성상 이걸 집중적으로 듣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스피커보다 업소에 딱 맞는 소리 성향을 가진 스피커는 찾기 힘들었다. 풀레인지 특성상 고음은 약했지만 대신 라이브 음악을 듣는 듯한 생생함은 일품이었다. 반면 이런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나름 까다로운 설치 기준을 지켜야 했다.
전용 이퀄라이저가 필요
일반적인 이퀄라이저는 특정 음역대의 음량을 키워 소리의 변화를 주는 물건이다. 반면 보스 901에 딸린 전용 이퀄라이저의 역할은 각 스피커 유니트에 같은 양의 소리(전기 에너지)를 공급하고, 배음을 형성해 음색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전용 이퀄라이저가 연결되지 않은 소리는 상당히 맹맹하다. 전용 이퀄라이저를 연결해줘야 제대로된 소리를 들려준다.

LP가 한참이던 1968년에 처음 등장했기 때문에 음악의 소스가 CD로 변한 이후에는 이 전용 EQ도 그에 맞춰 변화가 있었다. 당연히 초기형과 후기형에도 소리의 차이가 있다. 또한 이 전용 EQ가 어느 시대의 것이냐에 따라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재미도 있다. CD가 나오기 이전 시대의 음악을 주로 듣는다면, 초기형의 EQ가 달린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조금 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두가지 EQ를 구해 상황에 따라 맞춰 듣는 것이겠지만.
다시 음악의 시대로
소제목은 ‘다시 음악의 시대로’라고 썼지만 다시 음악의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제는 ‘음악’보다는 ‘음원’이 더 익숙한 시대니까. 그래도 만약 남들과는 독특한 ‘슬로어답터’가 되고 싶다면 보스 901로 도전해 보라. 카페를 운영하지 않는 사람도 보스 901이 필요할까?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보스 901은 큰 울림없이도 집에서 연주회장에서 듣는 듯한 생생함을 안겨준다. 물론 스피커 외에도, 앰프가 필요하며, PC를 연결 하더라도 음원도 좀 좋은 것으로(이어폰이나 헤드폰과는 다르기에) 구비해야 한다. 비용도 많이 든다. 또한 보스 901의 스탠드는 별매다. 하지만 귀에서 맴도는 음악이 아니라 공간을 가득 채운 소리의 향연을 즐기고 싶다면 이 방법 밖에는 없다. 음악이 싸지긴 했지만 원래 음악감상이란 것은 저렴한 취미가 아니며 제대로 하려면 그만큼 투자가 따라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조 : 보스(BOSE)
출시 : 1968년 미국
신품가 : $1398.95(EQ 포함, 스탠드 제외)
크기 : 51.5×32.6x33cm(본체만)
무게 : 19.5kg(1개)
출력 : 10~450w(4~8옴)
현재가격
1968년도에 탄생한 스피커지만 놀랍게도 현재도 신품이 생산중이다. 신품 가격은 국내 기준으로 약 300만원대. 그런데, 미국 가격은 아마존에서 1,398$. 도대체 태평양에는 무슨 가격 혼란 지대가 있어 물만 건너 오면 가격이 비싸지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중고 가격은 미국의 경우 350$부터이고, 국내 중고샵에서는 스탠드, EQ포함해서 100만원~120만원선이다. 다만 소스기기와 앰프도 추가 구매해야 한다.
주의할점
국내의 경우 업소에서 브라켓을 이용해 전정에 매달았던 제품들이 꽤 많기 때문에 신품이 아니라면 스피커 윗면에 구멍이 뚫려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업소용 제품들은 대부분 격렬한 노동으로 인해 상태가 좋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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