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박지성의 왼발과 오른발이 있는 나라, 세계 피겨 챔피언 김연아의 나라,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회사인 삼성전자와 LG가 있는 나라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한국인들은 직구로 전자 제품을 구입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남자들이 직구하느라 정신 없는 분야는 역시 TV. 특히 삼성전자와 LG 전자의 제품들은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싸다.
참고 링크 : 세계 최고의 TV회사를 가진 한국인. 행복한가요?

TV는 보통 때도 싸지만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세일과 같은 대형 프로모션이 뜨면 국내와 비교하여 거의 반값 가까운 수준으로 구입할 수 있다. 국내에서 40~50인치 가격의 비용이면, 같은 돈이나 오히려 더 적은 돈으로 60인치 이상으로 TV 계급 상승을 이룰 수 있는 기적같은 기회를 맛볼 수 있다.  삼성과 LG TV를 싸게 살 수 있는 것은 역시나 대단한 경쟁사의 존재 때문이다. 삼성과 LG로 하여금 해외, 특히 미국에서 그렇게 싼 가격으로 팔 수 밖에 만든 업체가 있다. 그 기업의 이름은 바로 비지오(VIZIO)다.

 

비지오는 어떤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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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상 마이크로소프트의 드로잉 툴인 VISIO와 구별하기 힘든 비지오는 2002년 윌리엄 왕(William Wang)을 포함한 3명의 설립자가 60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만든 V라는 기업으로 시작했다. 이 회사는 한때 PC 제조사로도 유명했던 게이트웨이와 함께  저렴한 PDP  TV를 만드는데 참여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나중에 회사 이름이 된 비지오 브랜드로 TV를 출시,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다. 급기야 2007년에는 잠깐이지만 미국 HDTV 시장 1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2013년 4/4분기 기준으로도 북미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은 2위의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과 LG가 급격히 친해져서 가격경쟁을 하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비지오가 2등이기 때문에 가격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해외 TV 가격이 국내의 절반값에 불과한 이유다.

 

비지오의 ‘진짜’ 선택과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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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치 풀 HD LED TV인 비지오의 E500i는 최저가는 40만원 정도다.

어떻게 비지오는 이렇게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선택과 집중의 극대화를 통해서였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처럼 흔하게 쓰이는 것도 찾기 힘들지만 정말 비지오는 그렇게 했다. R&D나 TV 생산은 외부에 맡기고 제품의 기획과 마케팅, 그리고 고객 서비스만 직접 운영한다.  유통망 또한 초기에는 기존의 베스트바이와 같은 수수료가 많이 들어가는 곳이 아닌 코스트코, 샘즈클럽 등 대형 회원제 할인 마트를 이용했으며 차후 월마트, 케이마트 등 대중적인 마트로 확장하는 전략을 썼다. 이렇게 아낀 돈은 고스란히 제품의 가격에 반영되었으며 그 결과 창업 5년만인 2007년에는 무려 20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전부 200명도 안 되는 직원이 이뤄낸 결과이며 지금도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있는 본사에는 200여명이, 별도의 장소에 있는 고객 센터에서 200여명이 각각 근무 중이다.

 

비지오는 싸지만 싸구려는 아니다.

소비자는 왜 이렇게 비지오의 TV를 환영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경쟁사에 비해 가격은 싸고 품질도 좋은데, 화면은 더 컸기 때문이다. 2012년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예로 들어보자. 경쟁사들이 60인치 LED TV를 1700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와중에 비지오는 999달러로 제품을 내놓았다. 경쟁사인 삼성과 LG, 소니 역시 울며 겨자먹기로 제품 가격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가격이 싸다면 품질은 떨어지지 않을까? 그러나 비지오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보는 다른 제조사와는 달리 비지오는 유명 부품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이들과 협력을 통해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내놓는데 성공하고 있다. 대만의 AUO는 물론이고 LG 디스플레이나 샤프 등 쟁쟁한 패널 회사들이 비지오에 납품 중이다. 이러한 비지오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타사에도 영항을 미쳐 전반적인 TV의 가격 하락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저가의 달인, ‘비지오’는 만만치 않았다. 2013년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에서 비지오는 자사의 E 시리즈 55/60인치 TV를 각각 480달러, 688달러의 가격에 내놓으며 시장에 불을 질렀다. 물론 진짜 불은 아니다. 소비자의 마음과 경쟁업체의 질투에 불을 질렀다는 얘기다.

 

비지오의 뒤에는 대만과 중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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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오의 아름다운 P시리즈, 대부분의 리뷰사이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비지오는 미국 법인이다. 그러나 비지오 TV 생산량의 절반 이상은 대만의 AmTRAN이 맡고 있고, 아이폰 제조와 착취의 아이콘 ‘폭스콘’ 또한 비지오의 돈독한 파트너 회사다. 패널을 공급하는 AUO까지 생각하면 이들의 공통점이 딱 나온다. 대만 회사지만 생산 공장을 중국에 갖고 있다는 것. 겉으로는 미국 회사긴 하지만 그 뒤에는 말 그대로 대만과 중국의 연합군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 동안 각종 전자산업에서 한국에 일방적으로 밀렸던 대만이 중국과 연합하여 도전하는 형세랄까? 따지고 보면 이런 움직임은 굳이 비지오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비지오의 성공 모델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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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오의 24인치 올인원 PC

비지오는  미국 시장에서 급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미국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진출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비지오의 TV를 해외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리고 자체 R&D가 아닌 공고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부품을 수급하여 최소한의 이익을 남기고 TV를 팔고 있는 것도 장점이자 단점이다. 가격은 낮출 수 있지만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 제품보다는 철저하게 대중적인 제품 위주로 라인업을 짤 수 밖에 없다. 즉, 레드오션에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데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TV 이후,  비지오가 새로 진출한 PC나 태블릿 시장에서의 성공이 의문시되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게다가 비지오의 행보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실속/저가형 TV 업체들의 압박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인에게 비지오 TV는 큰 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지오 TV는 한국인에게 꼭 필요한 회사다. 비지오 TV를 산다면 돈을 아낄 수 있고, 비록 비지오 TV를 사지 않더라도 경쟁 덕분에 삼성과 LG의 TV를 해외에서 더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해외직구를 통해서지만… 오늘밤, 나는 아마존과 이베이를 돌아다니가다 문득, 비지오 TV가 한국에 출시해서 엄청난 판매를 기록하고, 경쟁을 위해 삼성과 LG의 TV도 가격을 내리는 달콤한 꿈을 꾸어본다. 그러나, 내 눈에서는 어느덧 눈물이 흘렀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휴대기기 전문 블로그 라지온 lazion.com 을 운영하는 한지훈입니다. 작고 강한 녀석에 매력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