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인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기술의 로드맵에 따라 사람들이 신제품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못지 않게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도록 디자인된 ‘사용자 경험’과 ‘서비스 디자인’에 의한 변혁이다. 새로 등장하는 각종 기술들을 보면서 이것으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는 행위가 필요하다. 이런 상상은 그저 헛된 공상일 수도 있지만 어떤 순간에는 수많은 기업을 먹여 살리는 미래 산업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학생이 투명 키보드의 콘셉트를 스케치했다. 기술적으로는 말도 안 되지만, 속이 비치는 소재의 전자 기기에 대한 욕구가 존재하며 클리어 타입의 하우징을 키보드에 적용할 경우 어떤 모습이 되는지 상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수많은 엔지니어들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테크 기업의 인문학 타령’도 사실 사용자 경험과 서비스 디자인을 위한 콘셉트 구상 때문에 붐업이 된 셈이다. 신제품을 구상할 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상상하고 발견한 후 거기에 맞춰서 기술을 대입하는 방식을 고려해보면 어떨까?

 

초소형 스틱 PC와 N스크린

오늘의 상상은 스틱 PC에서 시작된다. 스틱 PC란 휴대하고 다니는 USB 메모리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막대 모양 케이스에 하드웨어가 집약된 기기다. HDMI 포트가 있는 모니터나 TV에 스틱 PC를 꽂으면 인터넷 연결이 포함된 일반적 컴퓨팅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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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컴퓨트-스틱(Compute-Stick)이라는 제품을 내놓았는데, 어지간한 문서 작업과 비디오 감상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양이다. 구글도 에이수스를 통해 올 여름에 크롬비트(Chromebit)라는 스틱 PC를 출시할 예정이다. 크롬비트 역시 USB 메모리처럼 작고 가볍게 만들어진 초저가형 크롬북이라고 보면 된다. (가격이 100달러 미만이라고 한다.) 아무 모니터나 골라서 크롬비트를 꽂으면 크롬 OS를 통해 곧바로 컴퓨팅 환경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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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스틱 PC가 그 범용성을 인정 받고 하드웨어 사양이 좋아진다면 스크린의 범주 확장을 통해 실로 자유로운 컴퓨터 사용을 할 수 있다. 스틱 PC를 스마트 TV, 대형 모니터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과 태블릿에도 연결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스틱 PC를 사람의 몸에 착용할 수 있게 디자인할 수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컴퓨팅 환경이 탄생한다. 바로 웨어러블 컴퓨터와 N스크린 서비스의 결합이다.

※ N스크린(N-Screen)이란 하나의 콘텐츠를 여려(N) 개의 기기에서 연속적으로 즐길 수 있는 기술 또는 서비스를 말한다.

 

팔찌 형태의 PC와 N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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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밴드(Gameband)라는 제품이 있다. 마치 팔찌 형태의 피트니스 기기같이 생겼는데, 게임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하드웨어가 내장되어 있다. 평소 팔목에 차고 다니다가 USB 포트가 있는 PC에 꽂으면 밴드 속에 있는 게임을 바로 플레이 할 수 있다. 클라우드 서버에 게임 진행 데이터가 저장되기 때문에 스크린을 옮겨 다니면서 끊임없이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마인크래프트(Minecraft)가 설치된 게임밴드는 수시로 땅을 파고 건물을 지으며 이것저것 관리해야 하는 마인크래프트 플레이어에게 훌륭한 N스크린 서비스를 제공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fg_tH4ZKIs&feature=youtu.be

 

증강현실 고글형 PC와 N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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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을 흥분시키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HoloLens)도 웨어러블 컴퓨터의 일종인데, 이 제품은 홀로그램을 재생하는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사용하여 사람이 보는 주변 세계 모두를 스크린으로 바꿔버린다. 그런데 홀로렌즈에서 더욱 중요한 기능은 따로 있다. 윈도우 10이 설치된 일반 PC라는 사실이다. 머리에 쓰는 개인용 PC다. 작업하던 데이터를 일반 모니터에서 보면서 수정한 후 다시 홀로그램 세계로 불러들일 수 있지 않을까? 홀로렌즈는 여러 종류의 스크린에서 끊임없이 콘텐츠를 접하는 N스크린 서비스의 영역을 홀로그램으로까지 넓혀줄 수 있다. 이 제품의 현실화를 수많은 IT 긱(Geek)들이 열망하는 이유다.

https://www.youtube.com/watch?v=aThCr0PsyuA&feature=youtu.be

초소형 PC 한 대를 사람이 몸에 착용하고 다니며, 자신이 원하는 사이즈와 타입의 스크린에 연결해서 즉시 컴퓨팅을 시작한다. 이 개념은 클라우드 컴퓨팅이 지닌 불안함을 해소할 수도 있다. 자신의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 서버에 담아두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웨어러블 PC는 기본적인 저장 용량을 갖추고 있으므로 사용자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중요 데이터를 담아둔 후 항상 몸에 휴대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웨어러블이라는 플랫폼은 사용자의 생체 데이터로 데이터를 잠글 수도 있으니 보안에도 유리하다. 물론 대용량의 음악, 영상 콘텐츠는 클라우드 서버에 두고 스트리밍으로 소비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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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스마트폰을 메인 PC로 사용해 N-스크린 서비스의 중심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인 제한을 갖고 있다. 하루 종일 커뮤니케이션 용도로만 사용해도 빠르게 닳아버리는 배터리다. 그 정도로 스마트폰은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 강하기 때문에 메인 PC로서 모든 역할을 담당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또한 스마트워치가 웨어러블 PC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섬세한 서비스 디자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넵튠 수트(Neptune Suite)라는 제품이 이것을 시도하고 있으니 두근두근 기대해보자.

 

제품에서 사용자 경험 뽑아내는 일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