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이후 삼성)는 애증의 기업이다. 삼성이 정치인과 검사를 관리하고, 언론을 관리했으며, 많은 이권사업에 무리하게 개입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계 언론 매체를 장식하고, 타임스퀘어 광장과 홍콩 야경속에 빛나고 있는 삼성의 로고를 보면 가슴 뿌듯해 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삼성은 한국인에게 근대적 기업의 비루함과 근대와 결별시킨 규모 경제의 성공 신화를 동시에 안겨주는 애증의 기업임에 틀림없다.
의도된 실적 쇼크인가?

삼성전자는 이 달 초에 올해 2분기 실적 잠정치를 발표했다. 매출 52조원에 영업이익 7조 2천억원,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9.5%, 영업이익은 24%가 감소했다. 삼성의 이번 발표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갤럭시 시리즈의 부진과 경쟁사인 LG, 중국 업체들의 약진으로 순익의 60%를 차지하는 모바일 부문의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각은 금물이다. 10조 벌던 회사가 7조를 번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차피 상상의 숫자다. 참고로 7조원이면 라면을 100억개 살 수 있고, 10조면 40억 개쯤 더 살 수 있다. 공기밥으로 치면…..그만두자. 아직까지는 섣불리 삼성의 퇴조를 예상하기는 힘들다. 일부 외신에서는 이번 삼성의 실적악화가 ‘의도된’ 것이었다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복귀가 불투명한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을 이재용 회장에게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라는 선물을 안겨주기 위한 시나리오라는 분석이다. 만약 그들의 분석이 맞다면 ‘왕의 귀환’의 아라곤같은 등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수염을 기르고 칼을 차고 나와도 멋질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왕이면 적자를 만드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연봉 1000원을 받으며 이재용 부회장이 임시 회장으로 취임한다면 좀 더 드라마틱한 왕의 등극이 가능했을 거다.
의도하지 않은 실적 쇼크가 계속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음모론을 걷어 보자. 실제로 삼성 갤럭시S2나 S3에서 보였던 해외 언론의 찬사는 줄어들고 있다. 물론 이건 애플 제품도 마찬가지다. 다만 애플에게는 ‘혁신은 없었다.’ 정도로 관념적인 비판이 늘어나는 반면, 삼성 제품에게는 ‘진부하다.’, ‘평범하다.’, ‘경쟁력이 없다.’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 출시된 갤럭시S5는 그나마 나았지만 다른 갤럭시 시리즈나 갤럭시 기어2, 기어 핏 등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갤럭시탭S는 조금 나은 편이지만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갤럭시탭과 갤럭시탭s 뒤에 붙은 ‘s’를 발견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반대로 같은 기간 애플은 신제품이 단 하나도 없었음에도 매출과 순익이 모두 증가했다. 이건 삼성에게 불길하다. 애플은 9월에 2개 화면 사이즈의 새로운 아이폰과 10월에는 아이워치(또는 아이타임)라는 웨어러블 기기 출시가 예정되어 있다. 특히 새로운 아이폰은 4인치 사이즈를 넘어서는 대형 디스플레이를 가질 확률이 높다. 만약 애플이 루머대로 제품을 내놓는다면, 4.7인치, 5.5인치 두 제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고, 기존 5S와 함께 4인치, 4.7인치, 5.5인치의 강력한 라인업을 갖추게 된다. 삼성의 텃밭인 대형 사이즈로 정면승부를 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애플은 팀쿡이 갑자기 쓰러져 경영권 승계를 할 일이 생겨도 의도된 실적 악화를 할 필요도 없다. 삼성의 실적 쇼크가 3분기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레드오션의 강자들이 모이고 있다.
삼성은 의심할 바 없이, 레드오션의 강자였다. 모든 기업이 집결된 곳에 뛰어 들어 승리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레드오션의 강자는 삼성뿐이 아니다. 우선 중국 기업들이다. 하이얼은 냉장고를 비롯해서 가전 부분에서 세계 1위 분야를 야금야금 늘리고 있다. 레노버는 PC 부분 1위고, 스마트폰들은 화웨이, ZTE, 레노버라는 삼각 편대에 샤오미, 쿨패드, 원플러스원 등이 중국 시장을 넘어 아시아와 미국 공략을 시작했다. 사실 삼성은 스마트 시대에 ‘반애플 진영’이라는 어부지리로 손쉽게 자리를 차지했다. 모토로라와 노키아가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며 따라가지 못할 때, 삼성은 구글과 손잡고 쉽게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제 반애플 진영은 업데이트되야 한다. 레노버를 등에 업은 모토로라, 저가형 윈도폰으로 도전하는 노키아(MS), 초저가형 안드로이드 샤오미, 넥서스폰으로 갈고 닦은 LG 등은 모두 반애플의 아이콘이 될 만한 잠재력을 가진 업체들이다. 여기에 또 다른 레드오션 강자인 MS가 드디어 일을 하기 시작했다. 10만원 대 노트북과 10만원대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자기가 못 먹을 시장을 망쳐버릴 시도까지 하고 있다.
삼성은 애플에게 달렸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창조적 경영 능력이 부족하고, 소프트웨어적인 노하우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몰락만 남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쉘, 월마트, 엑손모빌, 시노펙 그룹, 중국석유공사(위 5개는 2013년 매출 1위~5위 그룹)이 소프트웨어 노하우가 있는가? 창조적 경영 능력도 엄청난가? 기업에 따라 그런 거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삼성은 원래 비창조적으로, 소프트웨어 능력이 없이도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체로 올라섰다.
또, 제조업의 패러다임이 소프트웨어로 이동하는 시기이기에 삼성의 진짜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삼성이 위기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삼성은 항상 위기경영이다. 위기속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빨리 경쟁사를 벤치마킹해서 그 분야를 장악하는 레드오션의 달인이 삼성이 그 동안 버텨온 원동력이다. 애플이나 구글, 테슬라 등은 혁신을 계속할 테고, 시장이 열리면 삼성은 또 다시 성장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의 가장 큰 위기는 삼성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벤치마킹 대상이 허접한 것에 있다. 애플이 없이 만들었던 갤럭시 기어나 옴니아, 아티브 탭 등을 보라!
애플이 만약 하반기에 좋은 아이폰과 아이와치를 내놓는다면 삼성의 신제품들은 매력적으로 변할 것이다. 반대로 애플이 실패한다면 삼성 역시 위험해 질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지만 애플은 삼성의 적이지만 가장 큰 응원군이 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