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서 무려 14년 동안 타던 자동차는 40대의 나를 닮아 언젠가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고민끝에 폭스바겐의 7세대 골프 2.0 TDI를 구입했다. 이 차를 사는 동안 많은 고민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푼돈일지도 모르는 3,370만원의 가격이지만 내겐 큰 결단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글은 자랑도 아니고, ‘현기차’까기 글도 아니다. 그냥 나처럼 평범한 40대 직장인이 수입차를 고려하고 있다면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다.
수입차는 허세다?
지인들에게 차를 바꾸겠다고 이야기 하면 “뭐 사게?”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폭스바겐 골프라는 답변에 간혹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 사람이 있었다.
“20~30대도 아니고, 40대에 뭔 골프야? 그냥 수입차 오너가 되고 싶은거야? 허세지. 차라리 그 돈이면 그랜저가 우리한테는 맞지.”
사실 골프가 수입차라고 유세 떨만한 가격이나 용도의 차가 아니다. 나는 그냥 내게 잘 맞는 차로 골프를 골랐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또래 동료들은 아직도 그랜저 정도에서 적당한 타협을 강요한다. 과거 그랜저의 광고 카피,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그랜저로 답했습니다”를 혐오하면서도 그 지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니까. 그랜저는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사람이 타는 차’란 이미지를 내세워 마케팅을 해왔다. 이제 제네시스가 있긴 하지만 그랜저는 그냥 40대에 적당히 성공했으면 사는 차로 자리매김됐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크기보다 필요의 시대다.
그랜저가 오히려 허세다.
그랜저는 사이즈가 너무 크다. 직장이나 집이나 주차할 공간이 넓지 않기에 4.9m가 넘는 길이는 좀 부담스럽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무조건 큰 차를 사는 게 오히려 더 과시이고 허세가 아닐까 한다. 게다가 그랜저는 스티어링의 답력, 서스펜션의 세팅, 가속력 등 모든 측면이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설정이다. 이런 과거 미국차다운 세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그랜저는 처음부터 후보에 올리지도 않았다. 혹시 하는 마음에서 덧붙이면 그랜저라는 차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편안하고 조용한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랜저는 좋은 차다. 내 취향이나, 필요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게다가 나는 성공하지도 못한 직장인이니까)니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란다. 분명 현대기아차가 맞춤 양복처럼 딱 맞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5천만 명의 취향이 모두 같을 수 없고 그렇기에 그것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내게는 크고, 편안하고, 배기량이 높은 그랜저가 오히려 허세다.
그래도 수입차는 뭔가 꺼려진다?
사실 우리 40대의 어린 시절은 국산품 장려의 시대였다. 미제(이제 이 표현 정겹다) 학용품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친구들은 물론 담임교사까지 한마디씩 하던 시절이다. 한국의 산업을 살리기 위해 국산차를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놀랍지만 우리 세대에도 아직까지 많다. 그러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우리는 OECD 가입국이 되었고, GDP를 기준으로 전세계 14등이다. 전세계에는 크고 작은 나라가 160개 가까이 되는데 그 중에 14위, 즉 상위 10%다. 이 정도면 더 이상 우리가 굳이 희생(?) 할 필요가 있을까?
더 넓게 보자. 어느 나라 자동차를 구입하느냐 보다는 오히려 연비가 좋은 차를 타는 게 결국에는 애국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체 사용 에너지에 96%를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부터 ‘저탄소 협력금’ 제도가 시행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량이나 연비가 떨어지는 차는 구매시 부담금을 물리고, 이 비용을 연비가 좋은 경,소형차 구매자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결국 대형차 구매 부담은 커지고, 반대로 경,소형차의 가격 부담은 줄어든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저탄소 협력금 제도 도입에 반발한다. 이유는 국내 시장의 경우, 중대형차에서 이익이 나는 구조기 때문이다. 결국 환경부는 최대 700만원 수준으로 정한 부담금에서 더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전히 많은 기름과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차를 팔기를 원하는 국산차를 탈 것인가? 아니면 배기량을 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다운사이징 경향의 수입차를 탈 것인가? 우리의 후세와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수입차를 사는 것이 오히려 애국이다.
수입차 카푸어의 공포
언론들은 어느 순간부터 20대에 수입차를 사서 카푸어가 된 젊은이들을 얘기한다. 정말 흔하게 이야기되는 것처럼 수입차를 사면 유지비 때문에 어느 순간 카푸어가 된다는 공포다. 맞는 말도 있고, 틀린 말도 있다.
유지비를 구성하는 것은 크게 기름값과 정비비, 보험료 정도일 것이다. 일단 기름값은 연비가 좋은 차를 타면 자연스레 해결된다. 폭스바겐의 골프는 자타공인 연비 좋기로 유명하니 우선 30만원 나오던 유류비는 20만원 선까지 줄어든다.
다음은 정비비. 거의 모든 수입차(이건 국산차도 마찬가지지만)가 3년 동안은 정비비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많은 수입차는 특정 기간 동안 엔진오일, 벨트, 브레이크 패드, 에어컨 필터 등의 소모품을 무상으로 교체 해준다. 이 제도에는 크게 쿠폰방식과 BSI가 있는데, 전자는 종이 형태의 쿠폰으로 기간에 상관없이 무료 정비 및 교환을 받을 수 있으며 이 쿠폰을 다 쓰면 종료된다. 반면 BSI는 특정 기간 동안 회수에 상관없이 소모품을 무상으로 교체해준다. 큰 고장이 나면 모를까 일반적으로 3년 동안은 정비비용이 오히려 덜 든다. 또한 프로모션에 따라 이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차를 타는 동안은 계속 엔진오일을 무상으로 교체해주기도 한다 (내 구입조건이 그랬다) 젊은이들이 무작정 수입차를 사서 카푸어가 된다는 것은, 오히려 분수에 맞지 않게 무리한 모델을 샀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지 차량의 국적 문제는 아닐 것이다.
3년 후에는 지옥이 시작된다?
자. 그럼 3년 뒤에는? 실제로 수입차는 3년만 타고 중고 시장에 내놓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부담을 줄일 방법은 있다. 우선 정식센터를 이용할 것이냐, 아니면 사설 정비 업체를 이용할까를 선택해야 한다. 아무래도 정식센터가 더 좋을 듯한 느낌이긴 하지만 이쪽은 비용이 높다. 사설 정비 업체의 경우 같은 항목이라면 국산차 정비 비용 대비 넉넉히 2~30% 정도 더 들어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고급 수입차는 더 들고, 브랜드에 따라 차이가 크다. 그러나 어차피 그런 차는 내가 살 수 없는 고급차다.) 미션이나 실린더 헤드 등 비용이 많이 드는 큰 수리가 아니라면 몇 만원 정도 더 들어가는 수준이겠다.
엔진오일도 서비스 기간이 끝난 후에는 비싸지 않냐고? 맞다. 국산차는 5만원이면 뒤집어 쓰는데 수입차는 15만원이 넘는다. 대신 주기가 차이가 있다. 국산차 제조사와 정비소에서 권장하는 엔진오일 교환 주기는 5,000km. 그런데 수입차들의 엔진오일은 보통 15,000~20,000km 정도로 교환 주기가 길다. 독일은 외계인을 고문해 엔진을 만들기에 오일을 자주 갈아주지 않아도 되는걸까? 당연히 그건 아니다. 이 비용 차이는 광물유(국산차)와 합성유(수입차)의 차이다. 광물유보다 합성유가 비싸지만 교환 주기가 훨씬 길기 때문인데, 이렇게 따지면 비용 차이는 없거나 크지 않다. 수입차가 엔진오일 한 번 교체할때 국산차는 3번을 해야 하니 비용은 거기서 거기다. 일시불이냐 분납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왜 미디어와 블로거들이 이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 폭스바겐의 TDI 차량에는 롱라이프 엔진오일이 들어있다. 또한 자동차 스스로 엔진오일 상태를 체크하며 교환주기는 운행조건에 따라 달라지며, 계기판에 교환 표시가 나왔을 때 교체해주면 된다. 아직 교환시기까지 2만 8천km 넘게 남았다. 물론 쿠폰이 있으니 그 전에 교환할 수도 있다.
보험료는 불만이다.
사실 수입차가 국산차와 가장 큰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은 보험료다. 지난 6월 말 기존 차 보험을 새차로 갱신하면서 기존 52만원 대에서 무려 130만원 대로 크게 올라갔다. 지난 차가 차량가액이 200만원 밖에(14년 된 고물차다.) 안됐기 때문에 크게 올라간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3000cc급 그랜저가 보통 70만원대인 것에 비하면 2000cc의 비슷한 가격인 골프 보험료는 너무 비싸다. 특히 작년을 기점으로 수입차들 보험료가 일제히 올랐다. 대신 국산차는 동결되거나 대부분 내렸다. 여기에 일종의 정치적 입김이 적용했을지도 모른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경쟁력을 잃어가자 마지막 남은 보험료의 차이를 크게 두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좋다. 음모론은 그만두자. 대신 세금은 2000cc급이므로 50만원 정도다. 3000cc급 그랜저에 비해 25만원 정도 저렴하다. 보험료, 세금을 모두 포함하면 약 30만원 정도 골프가 더 든다. 1년에 30만원 차이는 연비에서 뽑아줄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수입차 유지비의 공포는 상당부분 과장된 것이 틀림없다.
두 곡의 My Way
차를 바꾸고 가장 큰 변화는 역시 한국차와는 다른 세팅이다. 좀 더 단단하고 야무지며, 운전자의 의도대로 민첩하게 움직인다. 연비 덕분에 운전이 좀 더 즐거워졌다. 차가 없는 한적한 시간대라면, 오른발에 힘 좀 주며 달릴 수 있다. 스트레스가 쌓인 날은 일부러 이런 시간대를 골라 늦게 퇴근하기도 한다. 이렇게 달려도 공인연비인 16.7km 정도는 훌쩍 넘긴다. 실내 공간도 그럭저럭 넓고, 해치백 스타일이라서 큰 짐도 쉽게 실을 수 있다. 사실 수입차를 타는 것은 요즘 세상에 흔한 일이다. 그냥 평범하게 자동차를 고르는 행위다. 이걸 자랑하려고 쓴 글도 아니다. 그저 수입차를 처음 도전하는 나같은 40대의 평범한 직장인에게 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다. 그냥 아이폰을 사느냐, 갤럭시를 사느냐의 수준 정도다. 고급차라면 모르겠지만 2000cc급이라면 유지비도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니 주저말고 지르기를 바란다.
차를 인수하고 제일 처음 튼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였다. 유치하지만 오랫동안 사고 싶은 차를 산 기쁨에서다. 그 다음 곡은 섹스피스톨즈의 리메이크 버전 My Way. 남들과는 조금 다른 차를 샀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수입차를 꺼렸던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남의 시선 때문에 작은 수입차보다는 덩치만 큰 국산차를 생각했다면. 이제 생각을 바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