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82년. 애플은 위기에 빠졌고, 그 근간에는 디자인문제가 대두됐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에 광적으로 집착했지만 서로 다른 부서에서 만들어오는 디자인이 합치된 애플 III와 리사 등의 디자인은 부조화의 산물이었다.
맘에 들지 않았던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디자이너를 모집한다. 선택된 회사는 프로그(frog-개구리)라는 독일 회사였고, 프로그의 설립자는 독일의 하르트무트 에슬링거(Hartmut Esslinger)였다. 애플의 전설이 된 매킨토시 디자인의 시작이었다. 하르트무트 에슬링거는 독일출신 디자이너로 대학 졸업후 바로 프로그 디자인(frog design)이라는 회사를 차린다. 그들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베가(Wega)라는 독일의 가전회사였고, 고성능 스테레오 컴포넌트가 장착된 텔레비전 세트였다. TV의 성공은 프로그에게 곧바로 커다란 명성을 주었고, 그는 소니에 스카웃되어 소니와 디자인 작업을 계속한다. 독일의 베가 역시 소니와 합병을 하게 되고, 소니의 주력 TV라인업을 맞게 된다. 소니 베가시리즈는 2004년 브라비아 시리즈로 바통을 넘길 때까지 소니의 TV및 모니터 기술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애플과의 만남. 애플은 애플II로 인해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1982년에 첫 번째 위기를 맞이했다. 고심끝에 스티브잡스는 디자인 공모를 했고, ‘프로그 디자인’이 새로운 애플II의 디자인을 맞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소니의 디자인을 좋아했다. 그래서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에게 “만약 소니가 컴퓨터를 만든다는 가정하에 디자인해 달라.”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에슬링거는 스티브 잡스를 ‘거역’했다. 오히려 그는 미국적인 디자인을 제안했고, ‘레이먼드 로위’의 유선형 디자인을 제안한다. 에슬링거는 “스노우 화이트 (Snow White) 디자인 언어”를 창안해 냈다.
최소한의 표면 텍스쳐, 2mm 두께의 얕은 수평 및 수직 라인, 유선형의 모서리, 흰색과 올리브빛 회색 명암이 가미된 케이스 디자인. 더 깊이 들어가면 통풍구와 케이블의 색상, 포트와 슬롯의 규격까지 모두 제한하는 엄격한 언어였다. 이 개념은 1984년부터 1990년까지의 애플의 모든 제품에 적용되고, 그 당시 모든 컴퓨터의 디자인이 애플을 모방하여 비슷한 형태로 바뀌는 계기가 된다. 컴퓨터 디자인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에슬링거는 애플을 디자인하며 “형태는 감정을 따른다(Form Follows Emotion)”라는 철학을 정립했다. 독일식 디자인의 핵심 철학이자 현대 디자인을 규정했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철학에 완전히 배치되는 도전적인 발상이었다. 디터람스로 대표되는 독일식 기능과 이성주의 디자인의 시대가 지나고, 감성과 사용자 경험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디자인 시대가 올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에슬링거는 계속해서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남긴 최후의 걸작인 “매킨토시 SE”(1984)를 디자인한다. 그러나 이미 매킨토시의 실패로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입지가 줄어들고 있었고, 1985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결별한다. 그에 따라 프로그 디자인 역시 스티브 잡스를 따라 NEXT”로 옮기게 된다. 이후에도 프로그 디자인은 다양한 글로벌 회사들과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나, 그들의 가장 큰 업적은 현대 컴퓨터 디자인의 정의를 내렸고, 기능과 감성이 결합된 현대 디자인의 새로운 언어를 연 애플 디자인에 있을 것이다.
프로그가 디자인 했던 멋진 제품들의 디자인을 살펴 보자.
Wega 3020 (1971) – 고성능 스테레오 컴포넌트가 장착된 텔레비전 세트였다.
베가 TV를 디자인하면서 이미 매킨토시 디자인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Wega시절에 디자인한 오디오셋트 – 형태의 완전함과 규칙을 규정하는 디자인 언어가 엿보인다.
소니 트리니트론(Trinitron -1975) – 1968년부터 소니의 트리니트론 TV는 전세계 컬러 TV 시장을 휩쓸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 중심에는 프로그 디자인의 힘이 컸다. 그리고, 스티브잡스는 소니의 디자인을 흠모했다.
소니-베가 오디오 시스템 Concept 51K(1978) – 뉴욕 현대미술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하르트무트 에슬링거 이전의 애플 컴퓨터 디자인 (애플 II)
스노우 화이트 언어가 적용된 애플 컴퓨터 디자인 (애플 IIc) – 사용자의 감성과 경험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디자인의 시대가 열리는 신호탄이었다.
매킨토시 SE (1984) – 스티브 잡스와 에슬링거의 마지막 걸작이다.
에슬링거는 최근 “Design Forward”라는 책에서 애플 시절 진행했던 다양한 컨셉의 컴퓨터 디자인을 공개해 또 한번 화제를 낳았다. 다음은 프로그 디자인이 1982년에서 1985년까지 진행했던 애플 컴퓨터의 컨셉 디자인들이다.
“Snow White Concept “BabyMac” 1985 – 오늘날 출시해도 잘 팔릴만한 진보적 디자인이다.
Snow White Concept “Macphone” 1984 – 화면이 달린 전화기…아이폰?
Snow White Concept “Tablet Mac” 1982 – 믿기지 않지만 그들은 1982년도에 이미 태블릿을 제안했다.
Snow White Concept “Macbook” 1982 – 맥북은 1982년도에 이미 시도됐었다.
에슬링거가 말하는 디자이너에 대한 조언
1. 자신을 믿어라.
2. 형태는 감정을 따른다.
3. 렌더링이 아닌 실제 모델을 만들어라.
4. 스크린 밖에서 생각하라.
5.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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