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할 책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다. 신기한 것은 그 명성에 비해 이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써먹을 만한 문구가 얼마나 많은데 이 책을 읽지 않다니.
전체적인 내용은 복잡하지 않다. 완벽하게 생겨먹은 도리언 그레이(부럽다)가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가 본인 대신 나이를 먹고 인상마저 추해진다. 무려 18년(하필 18년이다)이나 나이를 먹지 않는 도리언 그레이의 평판은 점점 나빠지지만, 얼마나 잘 생겼는지 사람들은 그 앞에서 험담하는 일은 없다. 후일 도리언은 추레해진 초상화와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칼로 그림을 찢어버리는데, 도리어 제 가슴이 찢겨 죽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이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라면, “‘인생’이라는 퇴폐적 예술에 대한 19세기적 보고서”라 하고 싶다. 오스카 와일드의 생생한(한편 다분히 지루하기도 한) 장면묘사와 유려한 문장력이 돋보이며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 특유의 냉소가 번득인다. 그러나 어지간한 인내심이 아니고서는 그의 지루한 장면묘사를 견뎌주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읽어볼 요량이라면 중간의 묘사 부분은 건너뛰어도 내용 파악에 문제가 없음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지나치게 미와 쾌락을 추구하듯 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문체는 당대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오죽하면 ‘유미주의’란 꼬리표까지 달렸겠는가. 게다가 지금도 이 작품에 대해 비슷한 평가를 내리는 이들이 간혹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작품은 도덕적 색채를 띠고 있기도 하다. 도를 넘은 쾌락이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한다는 것이다. 작품 내에서 자기 삶의 퇴폐에 끊임없이 회의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도리언 그레이가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는 장면은 그러한 위험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완벽한 외모’라는 설정 또한 ‘순수한 쾌락’을 의미하는 메타포로 볼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 만연했던 믿음 중 하나는 “외모와 영혼은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여성의 외모와 남성의 호감도가 대개 비례하는 오늘날에 비추어 보면, 그때의 이 믿음을 어리석다고 비웃을 일은 아니다.
이런 해석이 물론 무리한 것일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나는 쌍수 들어 그 견해를 경청할 용의가 있다. 비판은 더욱 환영이다. 소설은 (당연하게도) 이론과 다르기에,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지 않은 채 작품으로 넌지시 던져주기만 한다. 그러니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은 독자 나름의 판단에 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써먹을 만한 문구는 도리언 그레이가 제멋대로 사는 걸 주저할 때마다 부추기는 헨리 워튼 경의 입에서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지면 관계상 내가 가장 잘 우려먹는 세 가지만 소개한다.
“변덕과 인생의 열정 사이에는 딱 한 가지 차이밖에 없어. 그건 바로 변덕이 좀 더 오래 지속된다는 거라네.”
“사랑을 할 때 사람들은 자신을 기만하며 사랑을 시작하고, 상대방을 기만하며 사랑을 끝내지.”
“과거가 풍기는 한 가지 매력은, 그것이 과거라는 사실이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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