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주로 활동한 리차드 사퍼(Richard Sapper)는 ‘알레시의 주전자’로 잘 알려진 디자이너지만 IT업계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다. 특히 IBM의 전설적인 노트북 씽크패드(ThinkPad) 시리즈의 디자인을 맡아서 현재의 씽크패드 명성을 만든 디자이너이다.
그가 강점을 보인 분야는 폴더 형식의 제품이다. 사물의 접히는 면과 구조에 대해 탁월한 감각을 보여줬으며 공간을 절약하고 실용성을 높이는 산업디자인에 있어 강점을 보였다.  리차드 사퍼는 아름다움으로 인해 기능적 불편을 강요하지 않았다. 조형적 아름다움을 가졌으면서도 사용자가 보기 편하게 적당한 기울기를 가진 실용적인 제품을 디자인했고, 또 아름다웠다. 기울어진 디자인이지만 안정적인 구조를 위해서는 기하학적 상식이 많이 필요로 했는데, 해부학과 공학까지 두루 섭렵한 그의 학술적인 이해도가 그의 디자인을 뒷받침했다.

via http://richardsapperdesi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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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천재성이 가장 멋지게 발휘된 분야는 노트북이다. 1980년대 후반 서서히 기지개를 편 노트북은 크램쉘(디스플레이가 덮개 역할을 하는) 디자인이 시도됐지만 폴더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해서 조립완성도가 떨어지고 고장도 잦았다. 그나마 정밀한 금형과 설계 노하우가 뛰어난 도시바 등의 일본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리차드 사퍼가 IT업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이 시기다. 리차드 사퍼는 1992년 IBM 노트북 설계를 맡았다. 그 당시 IBM은 노트북에 있어 아마추어였고, 신제품이 실패한다면 노트북 사업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폴더 디자인의 귀재인 리차드 사퍼와 일본 야마토 디자인 연구소의 카즈 야마사키(Kaz Yamasaki)가 머리를 맞대어 내놓은 작품이 바로 최초의 IBM 씽크패드 시리즈인 700C이다.
세계 최초의 검은색 노트북인 씽크패드 700C는 일본의 도시락인 쇼카도 도시락에서 영감을 받았고, 완벽하게 맞물리는 폴더 디자인 형태는 리차드 사퍼가 책임졌다. IBM의 씽크패드 시리즈는 20년간 명성을 이어오며 노트북 역사상 최장 브랜드로 사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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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리차드 사퍼는 디진(Dezeen)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스티브잡스가 자신을 스카웃 하려 했음을 최근 고백했다. 스티브 잡스는 1990년대 다시 애플로 복귀하면서 리차드 사퍼에게 의사를 타진했는데, 리차드 사퍼는 고향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가는 것이 싫었고, IBM과 독점 계약이 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 애플이 작은 컴퓨터 회사라서 크게 끌리지 않았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리차드 사퍼의 대안으로 조너선 아이브를 선택했고, 그는 아이팟과 아이맥을 디자인하며 오늘날의 애플 신화를 이뤄냈다. 만약 리차드 사퍼가 스티브잡스의 제안을 수락했다면 우리는 폴더형 아이팟과 아이폰을 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리차드 사퍼가 디자인했던 아름다운 제품들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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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사퍼가 디자인한 제품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83년 알레시(Alessi)에서 디자인한 주전자이다. 물이 끓는 정도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난다. 즉, 조금 끓으면 ‘미’, 많이 끓으면 ‘시’, 팔팔 끓기 시작하면 ‘도’음이 난다.
소리만 듣고도 물의 온도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매우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이다.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가격은 30만원대로 아직도 상당히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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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디자인한 세계 최초의 폴딩형 전화기. 지멘스(Siemens)에서 발매되었으며 완벽하게 폴딩되는 정밀함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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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기울기로 실용성이 뛰어났던 1960년도 로렌츠(Lorenz)에서 디자인한 탁상시계 스테틱(Static).
아직 판매중이다.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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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디자인한 브리온베가(Brionvega) TV세트.  황금콤파스 상을 수상했고, 뉴욕 현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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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디자인한 브리온베가(Brionvega) 폴더형 라디오. 여전히 판매중이다.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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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디자인한 텔레풍켄(Telefunken) 라디오. 역시 사용자 귀에 음이 잘 들리도록 기울여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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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디자인한 8인치 브리온베가(Brionvega) 알골(Algol) TV세트. 뉴욕 현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최근 다시 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가격이 1,000유로가 넘는다.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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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디자인한 탄탈루(Tantalo) 테이블 시계.  역시 기능적인 편리함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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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다 아는 티지오(Tizio) 아르테미데(Artemide) 데스크램프.(1972)
회사에서 독립한 후에 첫 작품인데 그 당시 거의 모든 디자인상을 휩쓸었고, 거의 모든 디자인 관련 박물관에 영구전시되고 있다. 360도 회전하는 받침대를 시작으로 수 십가지 형태로 변형이 가능하여 어떠한 상황, 각도에서도 완벽하게 쓸 수 있는 디자인이 강점이다. 이런 디자인한 가능한 것은 전원부와 램프를 연결하는 전선이 없기 때문이다.
티지오 램프는 고압의 전류를 변압기에서 12V의 낮은 전류로 바꿔서 막대 자체에 전기가 흐르게 했다. (사용자가 감전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디자인했다.)  따라서 자유로운 관절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구입하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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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IBM 씽크패드 시리즈인 700C (1992)
리차드 사퍼와 일본 야마토 디자인 연구소의 카즈 야마사키가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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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사퍼의 폴더 형태의 완벽한 이해는 씽크패드의 내구성과 조립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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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사퍼가 샘 루첸테(Sam Lucente)와 존 캐리디스(John Karidis) 등과 함께 디자인한 씽크패드 701은 일명 버터플라이 노트북으로 불리웠다.

10인치 화면사이즈에도 쾌적한 타이핑을 위해 리차드 사퍼는 화면은 그대로 두고 키보드를 폴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IBM의 혁신성을 보여준 아이콘으로 오래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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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면 저렇게 완벽한 키보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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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패드가 레노버로 인수된 뒤에도 리차드 사퍼는 디자인 고문을 맡고 있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 히트작인 씽크패드 X1 카본도 리차드 사퍼가 디자인을 담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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