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진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번거로운 건 싫어합니다. 그래서 변변한 카메라 하나 없고, 사진을 찍을 때는 그냥 스마트폰으로 슥슥 찍고 다닙니다. 커피잔이나 디저트를 찍기에는 스마트폰만 한 게 없죠.
그런 저에게도 디지털 카메라의 새로운 성역이 열리게 되는 걸까요? 코엑스에서 서울국제사진영상기자재전(P&I)이 시작됐습니다. 이름 그대로 사진이나 영상과 관련된 장비들이 가득한 전시회죠. 이번이 벌써 24번째라고 하네요. 폰카쟁이인 제가 감히 전시회 참관을 위해 코엑스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1. 사람이 많은 곳은 이유가 있다! 큰 부스부터 공략하기.
참가한 업체는 150개나 된다고 합니다. 규모가 커서 자랑하는 건 좋지만, 저에겐 너무 많은데요. 그래서 일단 유명하고 중요한 부스를 골라봤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삼성이 참가를 안 했네요. 갤럭시 S6가 중요하긴 하지만 너무 스마트폰에만 힘을 싣고 있는 것 아닐까요? 파란 옷을 입은 예쁜 모델도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습니다. 참가한 카메라 업체들 중에서 굵직한 곳이라면 캐논, 니콘, 소니의 부스가 있습니다.
풀 프레임(Full Frame)
다들 뛰어난 기술로 만든 카메라들을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캐논은 EOS 5Ds로 열심히 제품 자랑을 하죠. 인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 카메라 한 번 만지려면 줄을 길게 서야 할 정도였죠. 얼마나 좋길래 그럴까요. 5,060만 화소의 35mm 풀프레임 이미지 센서의 엄청난 해상력이 특징이라고 하네요. 궁금하지만,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 줄은 서지 않았습니다. 보급형 DSLR이지만 성능은 뛰어난 EOS 750D로 만족했죠. 한편에는 목소리 큰 여자 모델이 퀴즈쇼도 진행하는데요. 퀴즈마다 주위의 남자들이 너무 소리를 크게 질러대서 조금 무서웠습니다.
니콘도 풀프레임 DSLR인 D810, D750을 선두에 내세웠습니다. 카메라를 단면으로 잘라서 안쪽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진작가와 교수 등 전문가를 불러 사진 강의도 합니다. 렌즈를 다양하게 끼워서 경험해 볼 수 있는 공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종류가 많아서 오히려 머리가 아픕니다.
소니의 풀프레임 카메라는 미러리스 a7II가 있습니다. DSLR을 추월하는 미러리스 카메라라고 강조하는데요. 조금 발칙하기도 하지만 소니의 자신감이 엿보입니다. 5축 손떨림 보정 기술이 들어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한 편에서는 하이엔드 RX 시리즈를 체험할 수 있는 코너와 사진작가의 강의도 진행됩니다. 당장이라도 제품을 사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들 것 같아서 재빨리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셀피(Selfie)
셀카는 아직도 뜨거운 관심사이고 유행입니다. 저는 좀 부끄러워서 셀카를 자주 찍는 편은 아니지만, 셀카가 잘 나온다고 하는 카메라를 이렇게들 내놓고 있으니 솔깃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캐논의 파워샷 N2와 같은 셀피 특화 카메라는 피규어와 바비 인형이 잔뜩 있는 곳에 전시해놔서 어쩐지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직원 분이 설명을 친절하게 해줬지만 어쩐지 부끄러웠습니다. 셀피용 포토 프린터로 즉석 인화까지 해주는 서비스는 좋았습니다. 집안 곳곳에 자신의 자신을 걸어놓는 배우 이태곤 씨처럼 자기애가 아주 강한 사람들에게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
캐논의 새로운 미러리스 카메라 EOS M3도 처음 공개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역시 셀피에 알맞은 카메라라고 홍보하는데요. 오토포커스가 아주 빠른 CMOS AF III 시스템이 들어갔습니다. 입문용 DSLR인 750D와 같죠. 빠르게 잘 찍힙니다. 셀피를 위해 액정이 위, 아래로 움직이는 건 당연하고요. 앵글을 다양하게 찍을 수 있습니다. 그립부도 전작과 다르게 조금 더 편하게 쥘 수 있도록 굴곡이 생겼죠.
니콘은 귀엽고 아늑한 방을 하나 만들어 놨습니다. 그 안에는 새로운 미러리스 카메라 니콘 1 J5와, 쿨픽스 시리즈가 잔뜩 전시되어 있습니다. 니콘 1 J5는 이번 전시회에서 몇 안되는 신제품 중 하나입니다. 대놓고 여성을 타겟으로 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역시 액정을 젖힐 수 있고, 뷰티 모드는 디지털 성형 수술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보정 기능입니다.
소니의 알파 a5000, a5100같은 미러리스 카메라도 온갖 분장 소품과 연예인 대기실에 쓰일 법한 거울이 달려있는 곳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역시나 다른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저로서는 가발까지 쓰기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 조금만 만져보는 선에서 만족했습니다.
액션캠(Action cam)
소니는 방송업계와 영상쪽에도 전문가인 만큼, 각종 전문 캠코더와 4K 액션캠도 전시해놨습니다. 자전거에 달아놓기도 하고요. 스포티한 컨셉의 옷차림을 한 모델이 설명도 해줍니다.
먼발치에 고프로 부스도 있는데, 어쩐지 거리는 멀지만 묘한 신경전을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전거와 마네킹도 모자라 강아지 인형 목에도 고프로를 걸어놨죠. 하지만 모델은 없었습니다.
유니크(Unique)
리코는 귀여운 미러리스 카메라 Q-S1을 눈에 띄게 여기저기 놔두었습니다. 크기도 아담하고 색상도 40가지라 괜히 모으고 싶게 생겼습니다. 그 외에도 아예 물에 담궈 놓은 방수 카메라 WG-5도 인상적인데요. 험하게 굴리는 카메라라서 디자인은 투박하지만, 여성취향인 Q-S1과 대비되는 맛이 신선합니다.
시그마의 DP2 콰트로 입니다. 똑딱이 카메라인데 화질은 엄청나지만 휴대성은 애매한 희한한 녀석이죠. 그래도 매력적이긴 하지만요. 시그마 부스에 수많은 렌즈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업체 말에 따르면 신제품인 DP3 콰트로는 사정상 갖다 놓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했던 바로 그 카메라. 라이트로 일룸입니다. 먼저 찍고 난 다음 포커스를 조절할 수 있는 카메라였죠. 얼리어답터에서도 소식을 전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전시회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삐딱한 각도와 시크한 디자인이 눈길을 잡아 끄네요.
셔터 옆에 있는 라이트로 버튼을 누르면 심도가 실시간으로 화면에 표시됩니다. 열감지 카메라처럼요. 정말 신기한데요. 그리고 사진을 찍고 나서 원하는 대로 초점을 조절하면 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마음껏 개성을 발휘하게 될 카메라가 될 것 같습니다.
갤러리(Gallery)&소품(Accessory)
캐논, 니콘, 소니 부스엔 엄청난 화질을 느낄 수 있는 사진 전시들도 되어있는데요. 이게 꽤 재밌습니다. 사진 화질이 이렇게나 발전했다니 감탄하며 놀라는 가운데, 나만 뒤처져 있는 건 아닌지 정말 뜬금없게도 자아성찰을 하게 만듭니다.
스냅스는 인화 포토북을 강조합니다. 확실히 파일을 클릭해서 보는 것보다 앨범을 넘기며 사진을 보는 게 더 감성적이긴 하죠.
그 밖에 아동 모델용 옷을 선보인 곳도 있었는데요.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2. 모델 구경하기
전시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모델이죠. 사진과 관련된 전시회라 그런지 관람객의 촬영을 물심양면 도와주기 위해 많은 모델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진 커뮤니티를 즐겨 찾는 분들이라면 반가워 할 모델들도 많았습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모델을 많이 알고 있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사진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이유는 전문가가 찍은 인물 사진을 공부하기 위한 것이죠.
소니 부스의 중앙에 있는 모델입니다. 모델 주위에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카메라들로 마음껏 촬영을 할 수 있죠.
그 외에도 소니 부스 곳곳에는 모델이 많습니다. 얼핏 보면 캐논과 니콘에는 직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소니는 직원보다 모델이 더 많이 보입니다. 지난 서울모터쇼에서 이슈가 되었던 벤츠 인포데스크 모델처럼, 소니의 인포데스크 앞에도 문의를 하는 사람보다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니콘의 한 코너에 있는 모델입니다. 캐논이나 니콘은 겉으로 드러나기 보다, 이렇게 스튜디오처럼 꾸며놓은 곳에 모델이 많이 있습니다. 부스를 좀 더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겠죠.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시그마, 탐론, 샌디스크, 리코의 모델입니다. 탐론 쪽에 특히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데요. 벚꽃과 벤치 소재가 있어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리코 부스는 왠지 조금 더운가 봅니다.
그 외에 입구 근처에도 모델이 자주 나타납니다. 조명 아이템을 판매하는 업체와 카메라 케이스 업체를 유심히 살펴보면 좋습니다.
3. 사람 구경하기
신제품이 적어서 실망했다면, 사람 구경도 재밌습니다.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고, 대부분 카메라와 함께 큼지막한 무언가를 몸에 두르고 다닙니다. 어떤 장비를 지니고 다니는지 관찰하는 것도 좋습니다. 등에 2개의 반사판을 마치 날개처럼 달고 다니는 분도 있죠. 좋은 사진을 위해서 사람들은 어떤 장비들을 쓰고 있는지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번외. 사진사에게 지름신을 영접시킨 제품
전시회에 동행했던 얼리어답터 사진사 분은 전시에 크게 만족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제품은 그 분의 마음을 충분히 흔들어 놓았죠. 잠깐 소개해볼까 합니다.
• 휴대용 소프트박스 – 빛의 부드러운 확산을 위한 귀여운 모양의 소프트박스입니다. 발견에서 결제까지 몇 분 걸리지 않았죠. 휴대할 땐 접어도 되고, 사진 찍을 땐 외장 플래시에 간단히 붙일 수 있는 편리함도 갖췄습니다. 돌아와서도 한참이나 사진을 찍으며 흐뭇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가격은 3만 원대.
• 렌즈베이비 벨벳 56 렌즈 – 카메라의 얕은 심도로 찍은 사진보다 더욱 감성적인 사진을 만들어 주는 렌즈입니다. 사람을 찍으면 그 감성 효과가 배가되는데요. 아쉽게도 30만 원대라는 가격에 지름신을 힘겹게 보내드리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습니다.
• 드론 – 크고 작은 드론들이 많이 날아다니며 사람들의 시선을 뺏습니다. 날개가 엄청나게 달린 거대한 녀석부터, 잠자리를 연상시키는 놈도 있죠. 이벤트 존도 있어서 괜한 소유욕을 발동시킵니다. 어느 조그마한 녀석은 너무 사람들 사이를 밀착해서 휘젓고 다니더군요. 결국 어느 여성분의 짧고 굵은 비명 소리가 들린 후, 사진사 분은 지름신을 보내드렸습니다.
폰카쟁이인 저는 다행히도, 전시회를 보며 크게 마음이 동요하진 않았습니다. 화제가 될 만한 제품들이 많이 없기 때문이었을까요. 하지만 볼거리는 많습니다. 카메라를 경험해보는 것도 재밌고요. 4월 19일 일요일까지 개최하는데요. 만약 그 사이에 저와 친한 지인이 밥을 사줄 테니 같이 가자고 하면 한 번 더 같이 가보고 싶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