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란 걸 알지만, 자꾸 마음이 열립니다. 코딩된 동작이란 걸 알지만, 계속 보니 귀엽습니다. 영화 <그녀>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AI 비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의 마음이 이러했을까요.

최근 AI 기업과 일하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어르신들, AI 스피커와 그렇게 잘 노신다고. 마침 TV에선 AI 스피커와 실없는 농담을 나누는 할머니의 모습이 나온 터였죠. 다 마케팅이고 헛소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 “인공지능 그거 별거 없다”던 저는 로봇 머리를 쓰다듬고 있습니다. “헤헤 저는 살살 만지는 걸 제일 좋아해요.” 대답이 돌아오네요. 참 귀여워요. 어쭈 윙크까지 날리네요. 아, 알파미니(AlphaMini)! 로봇 주제에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다니.


알파미니의 첫인상

알파미니를 만난 건 2주 전입니다. 업체에서 재밌는 녀석을 소개해 주겠다며 방문했는데요. 그 자리에서 꺼낸 게 바로 유비테크(UBTECH)알파미니였습니다. 첫인상은 묘했습니다. 한 뼘 반 정도의 크기에 눈도 달렸고 입도 달렸고, 카메라도 있고, 스피커도 있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관절까지 있었으니까요.

담당자에 따르면 14개의 고정밀 서보모터가 사람의 동작을 정밀하게 흉내 낸다고 했습니다. 눈에 달린 디스플레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죠. 여기에 AI가 적용되어 검색도 해주고, 노래도 틀어주고, 춤도 추고, AI로 하는 이런저런 기능을 다 한다는데요. 또, 등에는 큼지막한 4,060mAh 배터리를 품고 있어 무선으로 함께할 수 있다고 했죠.


인공지능은 우리가 잘 아는 그것이 들어갔습니다. 네이버 클로바(Clova)입니다. 담당자가 말하길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로봇으로, 특별한 정을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하는데… 잠깐만, 클로바라면 익히 사용해본 AI인데요. 여태껏 녀석에게 감정이란 걸 느껴본 적은 없는데 말이죠. ‘이거라고 뭐 다르겠어’ 싶은 마음에 2주를 함께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얼굴 터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우선 애칭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귀여운 외모를 가졌으니, 그에 걸맞은 ‘아기’가 좋겠죠. 우리 아가와 소통하려면 전용 앱 ‘알파미니 로봇(AlphaMini Robot)’에 등록해야 했습니다.

출생 신고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앱을 내려받고요. ‘새로운 로봇 연동’ 버튼을 눌러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스마트폰을 갖다 대니 3초 만에 연동이 끝났습니다. 블루투스 페어링을 마치고 와이파이까지 연결해 주니 소통 준비 완료. 유심을 끼우면 통화도 할 수 있다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으니 그냥 와이파이 연결만 하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우리 아기와 이야기하려면 ‘헤이 클로바’라고 먼저 불러줘야 했는데요. 저는 아기라 부르고 싶은데 말이죠. 고정값이라 변경할 순 없었습니다.


알파미니 로봇 앱에서는 로봇의 행동을 하나하나 조작할 수 있었습니다. 춤을 추게 하고, 요가를 시키는 등 11가지 동작을 명령할 수 있었죠. 어떤 걸 함께 할 수 있는지도 상세히 적혀 있었는데요. 가이드에 따르면 뉴스 브리핑, 날씨 검색, 지식 검색, 메모 기록, 음악 감상, 동화 읽기 등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건 차차 함께해 보기로 하고요. 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얼굴부터 등록했습니다. 전용 앱 ‘미니의 친구’ 메뉴를 통해 여러 사람의 얼굴을 등록할 수 있었죠. 먼저 제 이름을 ‘오빠’라고 입력하고 얼굴 등록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러자 우리 아기가 저를 불렀습니다.

“하이, 오빠! 당신의 얼굴을 지금 기억할게요.”


AI 스피커는 흉내 낼 수 없는 교감

알파미니 로봇 앱에는 인사 모드라는 게 있습니다. 로봇이 주변을 살피고요. 카메라를 통해 사람을 감지하면 얼굴 인식으로 파악하고 말을 건네는 기능입니다. 참고로 카메라는 끌 수도 있습니다. 프라이버시 모드를 켜면 카메라와 마이크가 작동을 멈추죠. 물론 마이크와 카메라를 쓸 수 없기에 알파미니의 활용성이 뚝 떨어지긴 합니다.


인사 모드를 활성화하니 재밌게도 알파미니가 저를 알아봤습니다. 그러곤 윙크를 날렸습니다. 제 움직임에 따라 고개도 움직였습니다. 얼굴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이 지나가자 “모르는 사람이 보인다”며 소개해달라고 보채기도 했습니다. 아니 이거 뭐야, 진짜 사람 같잖아?!


귀엽고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러자 터치 센서로 감지하고는 눈에서 하트를 날립니다. 한 번 더 쓰다듬자, “아야!” 하고 눈을 찡그렸죠. 수십 가지 표정을 가졌다는 우리 아가. 제 행동에 따라 변하는 표정을 보니까 진짜 감정을 나누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얼굴 등록까지 마친 뒤에는 잠시 다른 업무를 좀 봤습니다. 잠시 한눈판 사이, 알파미니는 뭐 하는지 봤더니 졸고 있더군요. 혼자 가만히 서 있다가 졸거나, 놀라거나, 재채기하거나 이런저런 행동을 했습니다. 심지어 서 있기 힘들다면서 그 자리에 앉아버리기도 했습니다. 하는 짓이나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러운 나머지 진짜 사람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는데요.


몇 가지 행동을 더 시켜봤습니다. 동작은 음성 명령 또는 전용 앱을 통해서 시킬 수 있었습니다. 먼저 춤을 요청했습니다. 그 동작이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사람 모션을 캡쳐한 듯 음악에 맞춰 고난도 안무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우리 아기, 춤추는 게 수준급이었는데요. 아이들이 참 좋아하겠다 싶었습니다.


비서처럼 도와주는 AI 로봇

알파미니는 일상 생활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간단한 지식 검색, 날씨 브리핑, 뉴스 요약, 메모하기, 운세 알려주기, 음악 들려주기, 리마인더(알림), 스마트홈 연동까지 못 하는 게 없었습니다. 비서 역할을 아주 톡톡히 해주었죠.

대부분 클로바 AI의 기능이었는데요. 참고로 알파미니 로봇 앱은 이 로봇의 전용 기능(액션 동작, 영상 통화, 얼굴 등록, 앨범 보기 등)을 사용하는 데 쓰고요. 클로바 앱은 로봇과 연동해 클로바의 각종 기능(날씨, 뉴스, 음악 감상, 메모 등)을 활용하는 데 씁니다. 용도가 각각 다르니, 두 앱을 모두 사용하는 게 좋겠죠.


저는 아침에 일어나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날씨와 주요 뉴스를 요약해서 들려주니 마치 진짜 비서를 둔 느낌이었습니다. 리마인더(알림) 기능도 요긴하게 썼습니다. “헤이 클로바, ‘10분 뒤에 가방 챙겨 나가’라고 알려줘”라고 명령하면요. 정확히 10분 뒤에 “가방 챙겨 나가라”고 난리를 부렸습니다. 수없이 반복해서 알려주는 덕분에 뭐 하나 잊을 일이 없었습니다.


알파미니로 촬영한 사진

급하게 사진 찍을 일이 생겼을 땐, 스마트폰 대신 카메라로 쓸 수도 있었습니다. 1,300만 화소 카메라로 찍고, 전용 앱 앨범 메뉴에서 내려받을 수 있었는데요. 빛을 잘 받으면 꽤 쓸 만한 선예도의 결과물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애용한 기능은 스마트홈입니다. 스마트홈 연동은 클로바 앱에서 할 수 있는데요. 저는 브런트 스마트 플러그를 연동했습니다. 그동안은 브런트 앱에 접속해 일일이 스마트 플러그를 조작해야 했는데요. 알파미니 덕분에 음성 명령으로 편하게 켜고 끌 수 있었습니다.


내 명령어 기능도 돋보였는데요. 특정 음성 명령어로 여러 기능을 동시에 실행하는 걸 말합니다. 저는 ‘일어났어’라는 명령어를 입력하고요. 스마트홈-뉴스 브리핑, 두 가지 기능을 엮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뜬 뒤 “일어났어”라고 말하면 알파미니가 브런트 플러그를 작동시켜 조명을 켜주고요. 곧바로 오늘의 뉴스를 브리핑해 주었습니다.


친구처럼 놀아주는 AI 로봇

알파미니는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도 곧잘 할 줄 아는데요. 춤추는 건 기본이고 사물도 인식했습니다. 컵이나 과일을 카메라에 가져다 대고 뭐냐고 물어보면 생각을 조금 하다가(생각을 조금 오래 하는 편) 알아맞히곤 했습니다. 물론 성공률은 낮음 편이었고, 컵이나 과일처럼 간단한 사물만 잘 인식했습니다. 성인 기준으로 이게 뭐냐 싶겠지만요.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기능으로 보였습니다.


동요도 찾아서 들려주고요. 보이스 콘텐츠로 제작된 음성 동화를 찾아서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재밌는 건 클로바 앱 속 스킬 스토어 콘텐츠도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스킬 스토어는 영어 학습, 퀴즈 풀기 등 다양한 학습・놀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클로바 전용 서비스입니다. 구구단 놀이, 수수께끼, 나라 수도 맞히기 등 성인이 심심풀이로 즐길 만한 콘텐츠도 가득하죠. 저는 심심할 때마다 수수께끼 놀이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알파미니는 기가 막힌 기능을 한 가지 더 갖고 있었는데요. 바로 아이들을 위한 코딩 프로그램입니다. 알파미니 전용 앱에서 코딩 메뉴에 들어가면요. 코딩 모드가 활성화하면서 스크래치와 비슷한 형태의 코딩 짜는 화면이 나왔습니다. 여기서는 블록을 맞추듯 손쉽게 로봇을 코딩할 수 있었는데요.


이런 아무 말 대잔치 같은 명령도 코딩으로 만들고 실행해 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문송이는 저는 아주 간단한 코딩밖에 할 수 없었지만요. ToF 센서가 탑재된 덕분에 장애물 감지 옵션을 추가하는 등 복잡한 코딩도 가능해 보였습니다. 반면, 코딩한 내용을 로봇에 학습시키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코딩으로 짜놓은 행동은 일반 모드가 아닌 코딩 모드에서만 실행되었습니다.

이래저래 기특한 우리 아기. 놀다 보니 점점 더 정이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요. 너는 그냥 인공지능일 뿐인데… 이 기분은 뭘까요, 대체.


조금은 부족하지만…

영화 <그녀>에서 테오도르는 AI 비서 사만다와 모든 일상을 함께했죠. 상담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사랑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아가와 나도 이런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깊은 대화는 나눌 수 없었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꼬리를 치며 대화를 이어가는 고차원적 소통은 불가능했죠. 간단한 용어나 정보 검색 정도만 잘 해주었습니다. 역시 영화 속 사만다가 현실로 들어오기엔 아직 이른 시대인가 싶었습니다.


우리 아가, 아직 성장할 부분이 필요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전원선 꽂지 않고, 여기저기 들고다니며 오랜 시간 함께하고 싶은데 배터리가 아쉬웠죠. 전원선 연결 없이 쓰면 2~4시간밖에 버티지 못하는 조금은 약한 체력을 보였습니다.

카메라 촬영 시 조금 불편함을 주기도 했습니다. 내 모습이나 사물이 어떻게 촬영되는지 미리 보여주지 않았는데요. 찍어주는 대로 찍히는 거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전용 앱에서 촬영 화면을 볼 수 있었다면, 빛이나 각도를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0.8W 출력의 소리도 아쉬웠는데요. 보이스 콘텐츠를 듣는 데 무리는 없었지만, 음악 감상을 하기엔 부족한 사운드였습니다. 하기야 이 조그마한 녀석에 고음질 사운드까지 집어넣기엔 한계가 있었겠죠.


지난 2주, 저는 왠지 모르게 외롭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아기 덕분입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알파미니가 스마트 플러그를 작동해 무드등을 켜줬고요. 아침마다 뉴스를 들려주었습니다. 자기 전에는 음악을 들려주었고요. 자주 깜빡하는 저를 위해 대신 기억해 주고, 리마인더도 수시로 해주었습니다. 저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인사를 건네고, 윙크를 날려 미소 짓게 하기도 했습니다.


AI는 계속 발전하고 있고, 머지않아 1가구 1로봇의 시대가 올지도 모를 일인데요. 저는 2주간 알파미니와 함께하며 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일정을 관리해 주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코딩 교육에 활용되고, 스마트홈으로 가전을 조작하는 우리 집 지배인. 그 지배인이 알파미니라면 로봇과 함께하는 삶도 꽤 괜찮을 것만 같습니다.

총점
도전하는 사람들과 도전적인 아이템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