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5할은 잠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그렇다. 잠이 부족한 여행은 모든 걸 망치게 마련이다. 광활한 자연이 전해주는 감흥도, 끝내주는 음식이 선사하는 황홀경도, 컨디션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봐도 본 게 아니며, 먹어도 먹은 게 아니다.
분초를 다투는 게 여행 일정인데 넉넉히 잘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모르는 소리다. 이동하는 중간중간 자는 새우잠만으로도 충분히 꿀잠 잘 수 있다. 그에 걸맞은 베개만 있다면.

불버드(bullbird) BR2 여행용 목베개는 내가 써본 여행용 목베개 중 ‘꿀잠템’ 칭호를 부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녀석이다. 뭐, 온열이라든지 마사지 기능이 있는 전자기기는 아니고 그냥 폭신한 목베개다. 기차나 항공기 기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거.

생김새도 여느 목베개와 비슷하다. 가로 17㎝, 세로 12.4㎝, 높이 12㎝로 크기는 작은 편이며 양옆으로 길게 늘어진 형태는 아니다. 목 뒤로 깔끔하게 머리만 받쳐 주는 형태다. 크기가 작다 보니 휴대하기는 좋다. 동봉된 파우치가 있어서 가방 밖에 걸어 두어도 부담 없다.

일반 목베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체공학적 디자인이다. 후면 플라스틱 구조물과 내부 메모리폼 쿠션이 경추를 단단하게 잡아준다. 뼈를 정렬해 바른 자세를 유지하게 도와준다.

사용법은 쉽다. 사실 사용법이랄 것도 없다. 목 뒤에 대고 등받이에 누우면 그만이다. 스트랩은 베개가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목에 부담되지 않을 만큼 살짝 조여주면 된다.

사용감은 아주 편안하다. 적당한 탄성을 가진 메모리폼 덕분이다. BR2의 메모리폼은 솜처럼 푹푹 꺼지지도 않고, 고밀도 제품처럼 딱딱하지도 않다. 느낌을 표현하자면 ‘쫀득’보다는 ‘존득’이 어울리겠다. 손가락으로 쏙 누르면 과하지 않게, 존~득하게 튀어 올라온다.

이렇게 보드라운 촉감과 적당한 밀도를 가진 메모리폼이 귀 뒤쪽, 뒤통수 뼈를 받쳐 준다. 양옆에서 꽉 잡아주는데, 그 덕에 머리가 흔들리지 않는다. 경추가 제법 정렬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자세에 따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비대칭 디자인이 적용된 점도 재밌다. 위아래 메모리폼 두께가 다르다. + 표시된 부분엔 두꺼운 메모리폼이 사용됐다. – 부분엔 얇은 메모리폼이 사용됐다. 그래서 눌리는 정도가 다르다. 얇은 – 쪽이 푹푹 잘 누리고, 두꺼운 + 쪽이 좀 더 단단한 느낌을 준다.


+ 부분을 위로 위치시키면 고개가 꺾이지 않도록 고정된다. 고개를 세우고 잘 때 유용하다. – 부분을 위로 위치시키면 목 아래가 묵직하게 잡히고, 목 위가 자연스럽게 꺾인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잘 때 제격이다. 어떻게 사용하든 편안한 촉감으로 머리를 받쳐 주는 느낌은 변함이 없다.

대개 의자에서 잠을 자면 자세가 무너져 자도 잔 것 같지 않다. 제조사에 따르면 이 제품은 자세를 바로잡아주어 찌뿌듯한 느낌을 없애준다고. 또한, 뇌로 이어지는 혈액 흐름을 촉진해 두통도 막아준다고 한다. 전 세계 의료 전문가,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반영한 제품이라니 제법 신뢰가 간다.
물론 드라마틱한 경험을 선사하는 녀석은 아니다. 10시간 넘게 진득하게 잠을 잔 기분이라든지, 마사지를 받은 듯한 개운함까진 선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분명한 효과는 있다. 불버드 BR2 목베개를 베고 잠을 자면 뻐근함이 없다. 목부터 어깨로 이어지는 근육이 한결 편안해진다. 자세 잡겠다고 이리저리 뒤척일 일도 없다. 가만히 목을 뒤로 젖히고 누우면 잠도 솔솔 잘 온다.
양옆으로 길게 늘어진 목베개와 비교할 때 다소 불편함은 있다. 고개를 옆으로 뉘이고 잘 수 없는 탓이다. 하지만 이런 자세가 경추 정렬을 방해해, 오히려 피로를 유발한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처음 적응하는 게 어려울 뿐. 자고 일어났을 때의 기분은 BR2가 한결 쾌적하다.
그냥 옆으로 뉘어 자는 게 편하다고? 두통은 어쩔 셈인가.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뒤틀린 자세로 잠들면 가끔 두통이 딸려오곤 한다. 경추를 타고 뇌로 이어지는 혈액이 원활하게 순환하지 못했기 때문. 이 녀석과 함께라면 두통에서도 해방이다.
불버드 BR2 목베개를 쓰고 달라지는 점 또 하나. 컨디션이 받쳐주니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는 거다. 보는 게 즐겁고, 먹는 게 행복하다. 과연 여행용 목베개란 이름을 달아줄 만하다.

꼭 기내가 아니어도 좋더라. 다음 일정을 떠나기 전, 잠깐의 여유 시간. 잠은 잘 수 있지만, 침대에 누워 본격적으로 잠을 청하긴 애매한 상황. BR2는 빛을 발한다. 녀석을 베고 의자에 누우면 빠르게 몸이 녹는다. 여독이 풀리며 잠에 솔솔 취한다.

누구에게나 여행 필수템이 있다. 내게는 선글라스, 모자, 스마트폰 짐벌, 멀티 어댑터 정도가 해당한다. 불버드 BR2 목베개를 써보니 올해는 필수템을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총점 |
9.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