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에서 즐기는 영화, 100인치 스크린으로 즐기는 게임, 영화관을 통째로 구현한 홈씨어터… 생각해 보면 남자들이 꿈꾸는 로망, 그 중심에는 늘 프로젝터가 있는 듯하다. 사실 캠핑장에서 프로젝터를 즐기는 남자도, 즐기려는 남자도 별로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100인치 스크린보다 TV나 모니터로 게임 하는 이들이 더 많기도 하다. 이게 어떻게 로망이 된 줄은 모르겠으나 그냥 그렇단다. 프로젝터=남자의 로망? 왠지 마케팅에 속는 듯한 느낌이고…

어쨌거나 남자들이 꿈꾼다는 그것을 직접 체험해볼 기회가 생겼다. 100인치 프로젝터 화면으로 즐기는 화끈한 게임 한 판, 옵토마 HD29H 프로젝터와 함께 해봤다.

옵토마는 말 이름이 아니라고

국내 프로젝터 시장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브랜드를 꼽으라면 단연 LG전자와 벤큐다. 한 뼘 거리에서 120인치 화면을 쭉쭉 뽑아내는 LG 시네빔 레이저 4K를 보라. 어마 무시한 물건이다. “프로젝터는 LG”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프로젝터 시장에서 열일 하는 벤큐도 흔히 떠올리는 브랜드다. 반면 옵토마는 다소 생소하다. 옵토마라니 무슨 장수의 애마 이름 같기도 하고. 사실 내게도 낯선 브랜드이긴 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소위 잔챙이 브랜드는 아니다.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세계로 시야를 넓히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꽤나 잘나가는 프로젝터 브랜드라는 걸 알 수 있다. 지난해 기준 4K 프로젝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더라. 프로젝터 산다고 정보 좀 뒤져본 사람이라면 옵토마라는 브랜드는 한 번쯤 다 들어본다고. 가성비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HD29H는 그런 옵토마가 국내 시장에 야심 차게 내놓은 제품이다. 120㎐ 주사율, 8.4㎧ 반응 속도를 보여주는 프로젝터로, 주용도는 게이밍이다.

게이밍이란 단어에 또 혹하는 이 마음. 시각에 예민한 게 남자라는 동물이라 했던가. 콘솔 삼매경에 한창 빠졌는데, 사실 32인치 모니터로도 아쉬운 요즘이었다. 큰 거, 더 크고 화려한 게 필요했다. 100인치로 즐기는 게임은 어떤 느낌일까. PS4 슬림 모델 사양의 한계(최대 60Hz 지원)로 고주사율까진 체험하지 못하지만, 대형 스크린으로 즐기는 그 쾌감은 맛볼 수 있겠지. 부리나케 PS4 전원을 켜봤다.

누가 봐도 그냥 프로젝터

아차차, 우선 디자인부터 짚고 가자. 사실 요모조모 뜯어볼 정도의 디자인은 아니다. 누가 봐도 프로젝터, 그냥 프로젝터다. 앞면에 큼지막한 렌즈가 붙었고, 상판에 줌(Zoom) 링과 조작부가 있다.

전원, 설정, 수직 키스톤 등을 사용하는 버튼이 모여 있다. 측면에는 발열 조절을 위한 배출구가 있고, 후면에는 인풋, 아웃풋 단자가 배치됐다.

입력 소스가 다채로운 편은 아니다. 4K 소스에 대응하고, 60㎐ 주사율, HDCP 2.2를 지원하는 HDMI 2.0 단자가 1개. 4K 소스에 대응하고, 30㎐ 주사율, HDCP 2.2, MHL을 지원하는 HDMI 1.4 단자가 1개씩 붙었다. MHL 케이블을 사용해 스마트폰 화면을 미러링할 수 있는데, 케이블은 별도 구매해야 한다. USB 3.0을 지원하는 타입 A 단자도 하나 있는데, 이건 출력 용도다. 그러니까 USB 단자를 통한 영상 입력 같은 건 못 한다. 이외에 3D 콘텐츠를 위한 3D 싱크 단자 1개, 3.5㎜ 오디오 아웃 단자가 1개씩 있다. 끝. 참 간소하다.

입력 소스가 적은 게 아쉽지만, 쓸데없는 거 주렁주렁 달고 있지 않아 깔끔해 보여 좋다. 딱 보면 알 수 있듯 HD29H는 HDMI 단자를 주 입력 소스로 활용한다. 무선 스크린 미러링을 지원하는 스마트 프로젝터 같은 건 아니다. HDMI 단자를 통해 정직하게 고주사율, 빠른 반응 속도를 뽑아내는 제품으로 볼 수 있겠다.

크기는 가로 316㎜, 세로 247㎜, 높이 98㎜에 무게 2.7㎏이다. 여기저기 들고 다닐 정도는 아니다. 한곳에 진득하니 놓고 쓰는 데에 더 알맞은 제품이다. 램프 수명은 고광도 모드에서 3,000시간이라고 한다. 에코+모드 사용 시 15,000시간까지 늘어난다고 하니 참고하자.

아직은 충분한 FHD

HD29H는 1,920 x 1,080 Full HD급 해상도에 최적화된 프로젝터다. 4K를 지원한다고는 하나 입력 신호에 대응하는 것뿐이지 네이티브 4K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4K라는 단어가 하도 보급화(?)되다 보니 4K 지원 제품이 아니면 왠지 모르게 손해 보는 거 같은 느낌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FHD급 해상도만으로도 게임이나 영상을 즐기는 데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 더욱이 이 녀석은 HDR까지 지원한다. 콘텐츠 소비용으로 충분하다.

우선 최대 FHD 해상도를 지원하는 PS4 슬림 모델을 연결한 다음 80~90인치 크기로 화면을 출력해 봤다. 줌은 1.1배까지 가능했다. 90인치 화면을 내보내는 데 필요한 투사 거리는 2.5미터 정도였다. 참고로 3.3m에서 100인치 화면을, 4m에서 120인치 화면을 구현할 수 있다. 10m 거리에서 최대 300인치 정도의 화면을 출력할 수 있다는데, 뭐 이렇게 쓸 수 있는 가정이 있기나 할까 싶다. 키스톤은 오직 수직 보정만 가능하다. 살짝 측면으로 틀어서 출력한다든지, 그런 건 불가능하다. 화면은 스트레이트로 쭉 쏘아줘야 한다.

게임, 게임을 해보자

게이밍 프로젝터라고 하니 게임부터 즐겨보는 게 인지상정. 감상부터 말하자면, ‘압도적인 느낌’이다. 쨍한 게임 화면이 거대하게 펼쳐지니 “어우야” 감탄사밖에 안 나왔다. 화면은 매우 밝고 선명했다. 3,400안시루멘의 힘이 느껴졌다. 휴대용 프로젝터의 밝기가 보통 1,000안시루멘 미만이다. 회의실 등에서 쓰는 중형 프로젝터는 1,000~2,000안시루멘 사이다. 3,000안시루멘 이상은 엔터테인먼트용 제품에 사용되는 높은 밝기의 제품이다.

3,400안시루멘의 막강함을 자랑하는 HD29H는 어두운 환경, 야간에 극강의 몰입감을 선사했다. 밝기가 모자라 안 보이는 부분이 없기에 맵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주간에서도 나쁘지 않은 화면을 보여줬다.

하지만 되도록 어두운 환경에서 즐기기를 추천한다. 주간에 불을 끄고도 충분히 쓸 만하지만, 형광등 불을 켜고 밝은 방 안에서 즐길 정도는 아니다. 눈 버린다.

높은 명암비도 게임의 몰입감을 높여주는 요소다. 프로젝터는 LCD(Liquid Crystal Display)와 DLP(Digital Light Processing) 방식으로 크게 나뉜다. DLP는 높은 명암비를 구현하는 장점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DLP 방식의 HD29H는 무려 50,000:1 명암비로 영상의 깊이감을 풍성하게 표현했다.

HDTV 색 표준인 Rec.709 색 영역을 100%를 만족하고, HDR까지 지원하기에 게임 속 다채로운 색감을 생생하게 뽑아내는 모습이었다. 32인치 4K HDR 모니터와 비교했을 때 부족하지 않은 품질을 보여줬다. 프로젝터가 무슨 로망이냐 싶었는데, 이렇게 점점 빠져들게 되고…

액션, 액션을 즐겨보자

HD29H의 꽃은 120Hz 고주사율과 8.4㎧ 빠른 반응속도 아니겠는가. PS4 슬림의 성능 한계로 온전히 느껴보진 못했지만, 60㎐와 16㎧의 일반 모드로도 빠르고 부드러우며 쾌적한 느낌을 받았다. 보통 10~15㎧ 수준이면 1인칭 슈팅 게임을 즐기기에 크게 모자라지 않는 것으로 말한다. 실제로 액션이 크고 화면 전환이 급격한 액션 어드벤처 게임에서도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집에서 즐기면 이런 모습이다.

반응 속도가 느린 프로젝터를 콘솔에 물려 사용했던 적이 있다. 인풋렉이 심각해 리모트 플레이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HD29H는 마치 일반 모니터에 꽂아 즐기는 듯한 기분을 줬다. 그것도 널찍하고 시원시원한 화면 크기로. 아, 이렇게 점점 더 빠져드는데…

설정에서 ‘향상된 게임’ 옵션을 켜면 120㎐, 8.4㎧ 환경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지금도 이렇게 매끄러운데, 8.4㎧는 어떤 기분일까. 인풋렉이 크게 줄어든다면 레이싱 게임을 즐겨도 짜릿한 속도감을 충분히 맛볼 수 있을 듯하다. 회사에 게이밍 컴퓨터가 없어서 느껴보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

영화, 영화에 빠져보자

3,400안시루멘, FHD, HDR, Rec.709 100% 등의 특징은 게이밍만으로 썩히기엔 아깝다. HD29H는 게이밍 성능이 강화된 홈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로 보는 게 좋겠다. 당연히 영화도 재생해 봤다. 역시나 색감, 명암, 선명함에서 흠잡을 데 없는 영상을 안겨줬다.

설정에서 디스플레이 모드를 바꿀 수도 있었다. 영화 모드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색감으로 화면을 출력했다. 게임 모드로 설정하고 영화를 보면 조금 더 밝고 화사한 색감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취향에 따라 디스플레이 모드를 바꿀 수 있는 건 큰 장점이다. 나는 밝은 화면을 선호해 디스플레이 모드를 대부분 게임으로 켜놓고 사용했다.

집에서 사용한 모습. 우리 집으로 영화 보러 올래?

굳이 화이트 스크린을 설치하지 않고, 흰 벽에다 쏘아도 콘텐츠 즐기는 데 이질감이 없었다. 3m 거리에서 100인치 화면으로 뽑아냈는데, 보이는 것처럼 방 하나가 통째로 영화관이 된 듯한 판타스틱한 공간이 연출됐다. 짱짱한 스테레오 스피커를 물리니 이건 진짜 영화관이 따로 없다. 아, 이래서 ‘로망, 로망’ 하는 구나.

편리와 불편 사이

대부분의 조작은 리모컨으로 간편하게 할 수 있다. 입력 소스 전환, 밝기, 대비, 디스플레이 모드, 음량, 키스톤 등 리모컨에서 변경 가능하다. 프로젝터 조작부를 일일이 누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설정을 바꿀 수 있어 편했다. 리모컨에는 유저 버튼으로 몇몇 설정을 곧바로 불러오는 기능도 있다. 설정을 고정해 놓고 쓰는 편이라 굳이 쓸 일은 없었는데 때에 따라서 요긴하게 사용할 사람도 있겠다.

HD29H는 소음이 적기로도 유명하다. 에코 모드로 사용하면 26데시벨 정도, 속삭이는 수준의 소음을 보인다고. 일반 모드로 사용해도 38~40데시벨 안팎의 수준이었다. 전원을 켜고 부팅이 시작될 때 이후론 거의 소음이 없다고 보면 된다. 게임을 즐기거나 영화에 몰입하는 데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이외에 소소한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먼저 기본 스피커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음량은 쩌렁쩌렁한데 디테일이 무너졌다. 솔직히 저가형 블루투스 스피커보다 못한 느낌이다. 음질은 필요 없고 ‘소리’라는 게 들리기만 해도 좋다면 추천한다. 이 정도 음질이라면 사운드가 게임이나 영화의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겠다. 참고로 HD29H를 사용하며 기본 스피커로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다음으로 프로젝터 대부분이 그렇듯 이 모델도 발열이 상당했다. 발열구로 뜨끈뜨끈한 바람이 쉼없이 나오는데, 겨울철 손난로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 발열이 제법 있으니 다른 전자제품과 거리를 두고 배치하는 게 좋겠다.

로망은 로랑이더라

색 표현 보소…

그동안 ‘프로젝터’와 ‘로망’이 한 짝으로 엮이는 건 모두 마케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마케터들이 그럴싸하게 엮어서 잘 포장한 트렌드라고나 할까. HD29H로 게임을 해보니 마냥 마케팅 때문은 아니구나 싶더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로망 맞다.

뭐든 크고 화려하게 보고 싶어하는 게 남자들의 마음 아닌가. 그 마음에 불을 지피는 게 바로 프로젝터이고, 그럼 로망이 맞지. 특히 내 방이 통째로 영화관으로 바뀐 느낌을 받을 때, 그때의 감동이란! “우리 집으로 영화 보러 갈래?”를 시전할 썸이 있었으면 금상첨화였으련만, 그것만이 안타까울 뿐.

FOR YOU
– 쾌적한 게이밍 환경을 선사하는 프로젝터를 찾는다면
– 영화, 게임에 두루두루 즐길 홈엔터테인먼트용 기기를 원한다면

NOT FOR YOU
– 4K 해상도의 크고 선명한 화질을 원한다면
– 다양한 입력 소스가 있는 프로젝터를 찾는다면
– 여기저기 들고 다니기 편한 프로젝터를 원한다면

총점
남자의 로망 인정.
도전하는 사람들과 도전적인 아이템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