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는 ‘You are what you buy’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상에서 우리가 제품을 선택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금중혁 컨트리뷰터는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자 25개국을 다녔지만, 결국 방구석에서 여전히 게임을 즐기는 중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얻게 되는 교훈도 좋지만 그는 게임을 통해 인생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기술과 문화의 총아인 게임 산업은 이제 단순히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갈취하는 분야가 아니라 최첨단 산업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게임을 불경(?)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금중혁의 렛츠플레이]에서 다루는 게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통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음침하고 한심한 사람이야”라는 말로 저의 친한 형님에게 게임을 허락하지 않는 형수님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언제까지 방구석에서 게임만 할 거니? 제발 나가서 운동도 좀 하고 그래라. 아니, 돈 줄게 PC방이라도 가!” 제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들었던 고함입니다. 분명 오늘도 수없이 많은 후배가 어디선가 저런 고함을 듣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선배들도 말이죠. 창백한 얼굴에 볼록 튀어나온 배 그리고 앙상한, 내지는 물렁물렁한 사지. 아마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게임 덕후의 이미지겠죠.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다. 게임을 플레이할수록 현실의 저와 멀어지곤 하니까요. 캐릭터는 미남, 미녀에 레벨업을 할수록 멋진 장비와 탄탄한 육체를 가지게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손가락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도 운동 효과를 기대할 수 없죠.
하지만 이것도 다 옛말입니다. 게임은 더는 운동 효과라고는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는 방구석 폐인들의 전유물이 아니죠. VR, AR의 등장과 함께 현실과 게임의 벽이 무너져 내리며 어설픈 스포츠보다 뛰어난 운동 효과와 건전함을 보장해주는 게임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즐거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무슨 게임이 이렇게 힘들어?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 보면, 제게 있어 최초의 모션 인식(?) 게임은 흔히 DDR로 부르는 <댄스댄스 레볼루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직접 플레이해본 기억은 적지만, 이웃집 형들이 가정용 접이식 패드를 펼쳐 놓고 기이한 몸부림을 쳤던 추억이 남아있거든요.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DDR은 혁신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양손이 아닌 신체 부위를 이용한다는 점은 다른 모든 게임에서 한 걸음 이상의 차별성을 두기에 충분했으니까요. 모션 인식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지만 어쩌면 이것이 효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에도 몸짓을 이용하는 게임의 역사는 쭉 이어졌습니다. 수없이 많은 제품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지만, 역시 백미는 유비소프트의 <저스트 댄스 시리즈>였죠. 올해도 최신작을 낸 자타공인 큰 성공을 거둔 모션 인식 장르의 거함입니다. 리듬을 타며 명곡을 느끼기 그만인 게임이죠. 어지간한 유산소 운동은 저리 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운동 효과는 덤이고요.

의외로 저의 기억에 강렬히 남은 건 닌텐도 위(Wii)의 <마리오와 소닉 베이징 올림픽>입니다. 육상, 체조, 양궁 등 올림픽의 메이저한 종목을 위모콘과 눈차크를 이용해 겨루는 게임인데요. 위 스포츠에서 시작된 종합 모션 인식 게임을 한 단계 발전시킨 걸작이었습니다. 혼자서 세계 기록과 겨루어도 즐거웠고, 백미는 친구와 함께 플레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즐거웠으나 떠올려보면 난이도 조절에는 실패한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속도를 겨루는 육상, 수영 종목 같은 경우 대부분의 동작이 눈차크와 위모콘을 양손에 들고 빠르게 휘젓는 방식이었는데, 문제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제 신체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야 AI든 친구든 누군가를 이길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재미를 위해 플레이했다기보다 눈을 감고 이를 꽉 깨문 채 끝날 때까지 그저 팔을 휘저었죠. 플레이를 마무리하면 땀이 흘렀고 다음 날은 근육통에 시달렸습니다. 네, 물론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래는 VR, 그리고 AR

형수님이 유일하게 허락했고, 또 즐기는 게임이 <비트 세이버>라 들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바로 앞으로는 게임 대부분이 <비트 세이버>와 비슷해질 거라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VR을 플랫폼으로 삼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VR의 핵심은 사용자의 동작이 필수라는 점인데요. 걷고, 휘두르고, 쥐고 앉았다 일어서는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가 버튼과 조이스틱을 대신합니다. VR에서 사용자 전신의 동작을 인식하는 기술인 ‘풀 트래킹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죠. 앞으로 점점 세세하고 고난도의 동작을 재현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리고 <비트 세이버>를 해보셨다면 아시겠죠. 체력이 부족한 사람은 20분도 못 버티고 나가떨어질 겁니다.

여기에 AR이 힘을 보탭니다. 가상현실을 뜻하는 VR과는 달리 증강현실이라는 뜻인데요. 대표적인 예로 얼마 전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한 <포켓몬 고>가 있습니다. 현실에 게임 세상을 덧칠한 것이죠. AR은 운동 효과는 물론 실내의 전유물이던 게임을 야외활동으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포켓몬 고> 때문에 실제로 많은 사람이 춘천에 모여들었던 적이 있죠. 운동 효과라고 하기에는 아직 미미하지만, AR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분야입니다. 이 역시 사용자의 동작이 필수적인 만큼 머지않아 VR과 비슷한 효과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현실과 잘 구분되지 않는 AR과 VR 덕분에 게임에 대한 장벽을 낮아지고 선입견도 줄었다고 봅니다. 앞선 두 게임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을 보면 말이죠. 아직은 의자에 앉아 화면을 들여다보며 게임 패드를 두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머지않아 판도는 바뀔 겁니다. 이 두 가지 신 기술 덕분에 게임은 그동안 서서히 추구해 오던 운동 효과는 물론 야외활동이라는 건전성까지 거머쥘 가능성을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달라 보일까요?

조만간 이라는 <비트 세이버>와 비슷한 VR 플랫폼의 게임이 출시됩니다. 다가오는 벽에 뚫린 구멍 모양대로 자세를 잡아야 하는 게임입니다.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아마 이것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싶네요. 형수님이 이러한 변화를 통해 게임 세계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면 저희 게이머들도 점점 방구석을 벗어나게 될 겁니다. 모션 인식은 넓은 공간, 때로는 전 세계를 무대로 하니까요.
무엇보다도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저와 수많은 사람이 즐기는 취미를 선입견을 품고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길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게임을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부정적 시선만 거두어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게임은 가까운 시일 내에 정말 스포츠로 분류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은 정말 정말 즐겁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