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는 ‘You are what you buy’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상에서 우리가 제품을 선택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금중혁 컨트리뷰터는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자 25개국을 다녔지만, 결국 방구석에서 여전히 게임을 즐기는 중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얻게 되는 교훈도 좋지만 그는 게임을 통해 인생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기술과 문화의 총아인 게임 산업은 이제 단순히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갈취하는 분야가 아니라 최첨단 산업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게임을 불경(?)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금중혁의 렛츠플레이]에서 다루는 게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통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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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바지 체크 남방, 피규어, 코스프레 그리고 미연시에 심취한 남성. 오타쿠란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흔히 뒤따르는 단어들이다. 지금은 아니라고 반박할 순 있겠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오타쿠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오타쿠스러운 것은 기피의 대상이 됐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그러니까 미연시 역시 같은 이유로 기피되곤 했다. 알고 보면 미연시라는 장르는 소설의 상향 버전이나 진배없는데도 말이다. 미디어에 의해 ‘저급 문화’로 포장된 탓에 무궁무진할 가능성을 내포한 플랫폼이 저질 취급을 받으며 아직도 음지에 머물고 있으니 실로 개탄할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오해를 풀어보고자 한다.

미연시는 또 다른 이름의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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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유일한 소설은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작품 전체의 평이 갈린다. 연애소설은 특히 심하다. 결말을 아무리 잘 매듭짓는다 해도 팬들의 원성을 피할 수 없다. 주인공과 이어지지 않은 캐릭터의 팬들로부터 받는 원성이다. 여기서 미연시는 그 단점을 보완한다.

연애소설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캐릭터가 등장하고 플롯이 구성되며 엔딩’들’이 펼쳐진다. 그렇다. 엔딩’들’이다. 미연시가 소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게 있다면 엔딩이 여러 개 존재한다는 거다. 어느 엔딩으로 결말을 맺을지는 오로지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려 있다.

미연시는 대개 1인칭 시점을 취하며 한 명의 주인공과 복수의 히로인이 존재한다(여성향 게임은 그 반대). 그중 어느 히로인 루트를 선택할 것인지 고르는 것에서부터 미연시는 시작된다. 새침하고 부끄러움 많이 타는 소꿉친구부터 학교 선배, 그리고 이계에서 넘어온 여왕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하며, 대부분 한 번에 한 명의 캐릭터와 이어질 수 있다.

처음부터 꾸준히 여왕과 접점을 만들고 친밀도를 올리는 선택지를 고른다면 루트 분기점에서 여왕 루트로 들어서게 된다. 이러면 다른 캐릭터는 그 순간부터 조연이 된다. 그러나 그 루트가 어떤 결말일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해피엔딩이 있는가 하면 캐릭터와 이어지지 않거나 게임에 따라서는 주인공이 죽는 배드엔딩도 간혹 만날 수 있다.

오… 오해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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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연시는 어디까지나 비쥬얼 노벨(Visual Novel)이라는 장르의 하위분류일 뿐이다. 장편 소설에 장면마다 삽화를 더하고 중간중간 선택지를 추가한 것을 비쥬얼 노벨로 부른다. 여기에 연애 요소와 시뮬레이션 요소를 첨가한 것이 바로 미연시다.

미연시 중에는 흔히 H씬으로 부르는 성인 콘텐츠가 없는 게임도 많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물론 개중에는 H씬이 있는 게임도 있지만, 영화 같은 훌륭한 베드신 연출을 자랑하는 작품도 존재한다.

모두 미연시를 즐기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다 보니 여전히 ‘미연시’를 H씬에 환장한 변태들의 게임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분명 오해다. 애니메이션 자체에 대한 문화적 장벽이 낮아지고 있는 오늘날, 이런 편견에 따른 무조건적인 기피는 아쉬움을 자아낼 뿐이다.

국산 미연시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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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든 좋든 미연시는 더는 오타쿠끼리 시시덕대는 서브 컬쳐가 아니다. 국산 미연시 시장도 제법 규모가 커지고 있다. 많은 수의 개발사가 스마트폰을 플랫폼으로 꾸준히 작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무려 VR 미연시 <Focus on you>도 출시됐다. 그중 최소한 내가 플레이해 본 타이틀 중에 노골적인 풍기문란이나 비도덕성이 느껴지는 타이틀은 없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연애소설을 읽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최근 국산 미연시 시장은 트렌드에 맞추어 잘 나아가고 있는 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국산 미연시가 아니라 국산 비쥬얼 노벨로 불리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스토리와 작화에 조금만 더 깊이를 더하고 성숙해진다면, 그리고 장르의 폭을 넓힌다면 미연시를 넘어 비쥬얼 노벨로 더욱 많은 유저를 끌어들일 수 있을 거다.

개인적으로는 미연시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이제는 거두었으면 한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게임으로 제작된다고 생각하면 한결 삼키기 쉽게 느껴질까? 실제로 국내 인기 웹툰 <치즈 인 더 트랩> 또한 비쥬얼 노벨 제작에 들어간 바 있으며, 미연시를 원작으로 영화나 만화가 제작된 사례도 다수다. 무엇이든 사랑받아야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다양한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기존 틀을 탈피하고 나아갈 수 있다. 누가 알겠는가? 비쥬얼 노벨이 무너져가는 출판 시장을 대체할 새로운 혜성이 될지도 모르는 법이다.

성소수자, 오타쿠, 왼손잡이 등 사회 속에서 알게 모르게 차별당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들과 관련된 정보 중 상당수는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다. 그저 기분이 나쁘다, 몰라도 된다고 치부할수록 서로의 골은 깊어지고 거리는 멀어지는 법.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 어떤 부분에서는 사회 속에서 소수라는 것이다.

여전히 미연시를 비난하고 싶다면 최소한 한 번은 플레이를 해보고 난 뒤에 시도했으면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욕이 아닌 비판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찌 알겠는가? 의외로 빠져들게 될지도.

무조건 야한 게 아니다.
먹고 싶은 대로 자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