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는 ‘You are what you buy’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상에서 우리가 제품을 선택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금중혁 컨트리뷰터는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자 25개국을 다녔지만, 결국 방구석에서 여전히 게임을 즐기는 중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얻게 되는 교훈도 좋지만 그는 게임을 통해 인생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기술과 문화의 총아인 게임 산업은 이제 단순히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갈취하는 분야가 아니라 최첨단 산업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게임을 불경(?)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금중혁의 렛츠플레이]에서 다루는 게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통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EDITOR IN CHIEF 신영웅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하드웨어에 이식된 게임이라는 비공식적인 이력을 가진 <테트리스>는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봤을 불후의 명작이다. 탄생부터 비범하지 않은데, 무려 냉전 시대의 소련인이 개발했으며 일본의 게임사를 통해 퍼져 나갔고, 미국인들을 열광시켰다. 소련이 미국인의 업무 능률을 낮추기 위해 개발한 전략 병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여기저기 복제된 탓에 유례없이 복잡한 저작권 싸움에 휘말린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다.
퍼즐, 그 이상의 테트리스

파란만장한 일대기와 달리 게임은 아무런 스토리가 없다. 차례로 떨어지는 ‘ㅗ, ㅁ, l ‘ 등의 블록을 잘 끼워 맞추면 가로줄이 완성될 때마다 사라진다. 화면이 블록으로 가득 차지 않게 버티는 시스템이다. 30년이 넘은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흠잡을 데 없는 기하학과 시원시원함의 결정체다. 비교적 최근 발매된 <뿌요뿌요>와 <테트리스>의 컬래버레이션 작품인 <뿌요뿌요 테트리스>가 80점 전후의 메타크리틱 점수를 받은 점을 보면 오늘날까지 건재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구매한 거의 모든 게임기로 최소한 한 번씩은 <테트리스>를 접해본 듯하다. 가장 최근에 즐긴 것은 군대에 있을 때다. <뿌요뿌요 테트리스>를 닌텐도 스위치로 구매했다. 2~4인 배틀 모드가 있어 부대원들과 치고받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배틀 모드의 규칙은 간단했다. 동시에 2줄 이상의 줄을 삭제하면 그에 비례해 상대방 블록 밑에 새로운 줄이 나타났다. 상대방보다 빠른 속도로 자신의 블록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밑에서부터 블록이 차올라 패배하게 되는 구조였다.
대부분은 어설픈 반사 신경에 의존해 단순히 상대보다 빨리 블록을 없애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전략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그런 단순한 게임에 전략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옆 소대에 스위치를 들고 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는 중국에서 유학하다 온 동기가 있었다. 전공이 경제학이었던 그의 특기는 <테트리스>였다.
그 친구는 의도적으로 한쪽 측면 두 칸을 비워두고 나머지를 빠르게 채운 뒤 어느 정도 때가 무르익으면 빈 두 칸에 나오는 블록을 순식간에 전부 때려 박는 전법을 구사했다. 그렇게 되면 지금껏 쌓아놓은 블록들은 자고 일어난 뒤의 비트코인처럼 증발하고 반대로 상대방 화면은 예수의 와인잔처럼 한순간에 가득 차는 기적이 일어났다. 실은 중국에서 기예단을 하다 온 게 아닌가 하는 수준의 움직임이었다.

그의 전술이 우리 소대로 유입된 뒤부터 <테트리스> 열풍은 거세졌다. 쉬는 날이면 우리는 온종일 <테트리스>를 하곤 했다. 한 번은 잠깐 게임기를 맡기고 일하고 왔는데, 후임이 무려 네 시간 연속해서 <테트리스>를 하고 있었다.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스위치가 없던 녀석들은 닌텐도 DS를 가져와 따로 <테트리스>를 즐겼다. 과장 조금 보태서 고작해야 가위바위보보다 약간 더 복잡한 수준의 게임임에도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한편, 내 동기의 비법은 단순한 전략에 그치지 않았다. <테트리스>는 블록 회전, 이동, 세이브(블록 하나를 쟁여두었다 필요시 꺼내 사용하는 것), 내리꽂기 정도밖에 그다지 할 수 있는 동작이 많지 않은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꼼수가 다양했다. 그가 몸소 시연한 T-spin(ㅗ 모양 블록을 회전시켜 본래라면 불가능한 부분에 끼워 넣는 기술, 버그를 이용한 스킬)에 우리는 전율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절차탁마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역하는 그 날까지 단 한 번도 우리 소대는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완벽한 기초가 결국 완벽한 재미

최근 발매되는 대작 게임을 보면 따지고 드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스토리, 그래픽, 물리 엔진, 캐릭터, 결말, DLC (Downloadable content, 게임 발매 후 유료나 무료로 구매하는 추가 콘텐츠) 등은 기본이고 거의 영화 수준의 퀄리티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재밌는 것은 <테트리스>뿐만 아니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을 돌이켜 보면 앞선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거다. 1억 장이 넘게 팔렸다고 하는 마인크래프트, 앱 게임계의 왕좌를 차지한 앵그리버드, 한국을 집어삼켰던 애니팡은 모두 스토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며, 나머지 요소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빈말로도 준수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아무리 뛰어난 쉐프와 고급스러운 식재료를 동원한다고 해도 결국 음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결국 가장 중요하고 기본인 기준은 재미의 유무다. 플레이어를 몇 시간 동안 화면 앞에 잡아둘 수 있는지의 승부다. 얼마나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았는지가 아니다. 일반적이라면 버그로 치부되었을 사건이 독자적인 스킬 명(T-spin)을 얻고 고급 기술 취급을 받은 건 제작진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 거다. 조금이라도 더 파고들 요소를 갈구하던 플레이어들이 발굴해낸 미지의 영역이다. 단순하고 기본에 가깝기에 오히려 탐구욕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맛이 있는 것 아닐까? 우수한 쉐프는 물에 소금을 타는 것으로도 감칠맛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하니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완벽한 기초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