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세그웨이를 기억하는가?
모든 탑승자를 평등하게 집나간 청소년처럼 보이게 만들던 세그웨이. 그러나 이 제품이 출시된 당시에는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기존에 없었던 이 새로운 탈것은 전기와 모터의 힘으로 움직이며, 속도의 조정과 방향전환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놀라운 혁신성은 많은 미디어와 테크 전문가들에 찬사를 끌어냈다. 하지만 세그웨이가 자동차 만큼 보급되어 미래의 교통수단이 될 것이란 기사를 쏟아내던 미디어의 예상과 달리, 이제 산업적인 용도(큰 공장, 공항에서의 이동 등)와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로 남았다. 국내서도 판매중이지만 무려 자동차 한 대 가격인 1,500만원 이나 되는 엄청난 가격으로 비현실적인 제품이 됐다. 이런 세그웨이와 비슷한 제품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등장한 싱클레어(Sinclair) C5다. 전기로 움직였고, 마니아의 물건으로 남았다는 점, 그리고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는 운송수단 이었다는 점도 비슷했다.
자동차? 어쩌면 자전거?
싱클레어 C5는 1985년 처음 선을 보였다. 세그웨이처럼 세상에 등장하기 전부터 영국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당시 영국의 런던은 심각한 교통체증을 겪고 있었고, 싱클레어 C5는 작은 크기와 저렴한 가격으로 누구나 탈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든다는 포부로 기획된 제품이었다. 지금 보면 그저그런 디자인 일수도 있지만, 싱클레어 C5는 1980년대 자동차들 사이에 유행했던 직선을 기반으로 한 부드러운 곡선으로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담아냈다. 또한 이 디자인은 그 당시 코너링 머신이지 초경량 자동차 제작사인 ‘로터스’가 담당했다. 자세히 보면 그들이 만들었던 자동차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전기와 모터를 이용해 움직이는 것은 세그웨이와 같지만, 가파른 언덕에서는 불행하게도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아 등판 능력에 힘을 보태야 하는 구조였다. 전기 모터의 출력이 250w 였지만 아무래도 자전거보다 무거운 차체 때문이었겠다. 물론 현재처럼 페달과 모터가 유기적으로 조합되어 연동되는 구조는 아니었다. 만약 현재 기술로 C5를 다시 만든다면 완전히 전기로만 움직이는 전기자동차로도 만들 수 있겠다. 아. 생각해 보니 저런 형태로 현재의 자동차 안전 기준을 통과하기에는 대단히 힘들어 보이긴 한다.
그렇다면 성능은?
전기자동차라면 당연히 성능이 궁금할 것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시속 24km/h를 넘지 않는 운송 도구는 운전면허 없이도 탈 수 있었기 때문에 싱클레어 C5의 최고 속도는 여기에 맞춰져 있다. 주행거리는 대략 20마일(약 32km) 정도였고, 무게는 30kg이었다. 또한 탑승자 뒤쪽의 트렁크 용량은 약 28리터 정도였다. 여기에 배터리를 얹은 최종 무게는 45kg. 이 정도면 거의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 요즘에는 간단한 구조의 전기자전거도 이 정도 속도와 주행거리 정도는 훌쩍 넘기며 훨씬 가벼운 제품이 많으니 조금 우스울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으로 부터 30년전 상황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 당시에는 최근 전기자동차에 쓰이는 리튬 베이스의 가볍고 높은 효율의 배터리가 아닌 납을 기반으로 하는 무거운 배터리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속도를 높이면서 주행 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배터리를 탑재할 수 밖에 없고, 그러면 무게와 크기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던 딜레마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전거 페달이 더해진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겠다. 실제 32km의 주행거리는 사실상 16~18km 정도가 일반적인 주행 거리 였다고.
타는 것이 좀 이상해 보인다?
운전석에 앉은 상태에서 발은 자연스럽게 페달에 닿게 되고, 구부러진 다리 아래쪽에 핸들이 놓인다. 속도는 요즘의 스쿠터처럼 손잡이를 감아주면 올라가고 풀어주면 내려간다. 레버를 양손으로 쥐면 앞과 뒤의 브레이크가 걸린다. 또한 출력에 따라 2단의 기어가 적용되어 있었고, 전면의 LED가 변속 시점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물론 차체가 너무 작은데다 운전자의 신장에 따라 좌석의 위치를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키가 큰 사람은 페달을 밟는 것이 힘들었다. 또한 속도를 올리다가 기어 변속 시점에서 5초 정도만 시간이 지나도 모터가 과열되거나 급기야 타버리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도 했으니 지금처럼 타기 쉬운 물건은 아니었다. 어쨌든 아무리 봐도 올라탄 사람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세그웨이와 비슷하다.
자동차긴 하지만
말은 자동차지만, 비를 맞으며 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비가 많이 오는 영국의 날씨와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또한 주행풍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에는 너무 작은 전면 캐노피도 문제였다. 차체가 너무 작고 낮은 탓에 도로를 달리는 다른 자동차의 사각지대에 들어가기 쉽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어린 운전자들이었나 보다. 면허 없이 탈 수 있었고 440파운드의 가격 또한 큰 부담이 없었기에 어린 운전자도 많았다. 이들은 신호 없이 갑자기 차선을 바꿔 사고로 이어지는 등의 문제가 많았다.
물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향 지시등과 함께 브레이크 등과 위쪽으로 길게 뻗은 보조 브레이크등을 붙일 수 있게 만들어졌지만 이것들은 모두 옵션 품목이었다. 그러니 안전 문제는 더 크게 대두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측면들이 일반 사람들의 인식을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그래서 싱클레어 C5는 공식적으로 14,000대만 만들어졌다.
역사적 사실
싱클레어 C5는 1985년 1월 출시되었지만 같은 해 8월 회사의 어려움 때문에 생산이 전면 중단되었다. 그런데 출시 한 달 동안의 판매량만 총 5,000대나 된다. 그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는 의미다. 출시와 동시에 영국의 윌리엄과 해리 왕자가 한대씩 구매했고 엘튼 존은 무려 2대를 구매했다는 기록도 있다. 수많은 SF 소설을 썼으며 수 많은 발명과 함께 미래학의 대부인 아서 클라크도 당연히(?) 2대를 구매했다. 만들어진 14,000대가 모두 팔리긴 했지만 당시 기준으로 개발을 위해 쏟아부은 약 700만 파운드를 회수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제품이 팔린 것은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싱클레어 C5 마니아들은 이 혁신적인 탈 것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이런 개조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더 높은 출력을 뽑아낼 수 있는 전기모터와 함께 후면에 제트엔진을 붙여 무려 시속 240km로 주행할 수 있는 튜닝카(?)도 있었다. 여전히 이베이에서 본체는 물론 관련 부품들이 거래되고 있다. 싱클레어 C5는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실패한 제품이다. 하지만 새로운 탈 것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성공적인 실패라 불러도 될 것 같다. 세그웨이 역시 철학적으로는 싱클레어 C5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또 이런게 중요하지 않나. 싱클레어를 만든 Clive Sinclair는 C5를 연간 10만대 정도 판매해 자금을 마련한 후 4명이 타고 80마일(약 128km)로 달릴 수 있는 전기자동차를 개발할 계획까지 세웠다. 만약 이 C5가 그만큼 팔렸다면… 전기자동차의 시대는 훨씬 빨리 시작되지 않았을까?
제조 : Sinclair Vehicles
출시 : 1985년
출시가 : £440 (약 74만원)
크기 : 1,744 x 744 x 795mm
무게 : 30kg(배터리 포함 45kg)
최고속도 : 24km/h
주행거리 : 32km
현재가격
이베이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은 상태에 따라 £500~750 정도로 우리돈 약 83만~125만원 정도다. 이밖에 머그컵이나 배지, 시계 등의 다양한 기념품은 물론, 출시 당시의 보도자료가 담긴 프레스킷까지 판매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마니아 아이템이 아니라면 보기 힘든 현상이다.
주의할점
언제나 그렇지만 배터리로 구동되는 제품들은 배터리의 충전은 물론 제 성능을 발휘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출시된지 30년이 지난 제품이니 더 그렇겠다. 차체는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 졌으니 녹이 슬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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