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자전거를 탄다. 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달리다 보면 고단한 직장 생활 스트레스도 씻은 듯 날아간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걱정이 하나 생겼다. 무서운 속도로 해가 짧아졌다는 거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자전거 도로와 강변을 달리는 나는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전거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자태.

자전거 타는 데 부담을 느낄 무렵, 때마침 디스로드(DISROD) 스카치점퍼가 도착했다. 지난가을, “이건 내 거다!” 싶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던 제품이다. 빛 반사 기능을 가진 이 점퍼는 달리는 자동차로부터 내 몸을 보호해 준다. 어둠 속에서도 내 존재가 드러나도록 빛을 내준다.

펀딩 제품이 도착하자마자 요리조리 뜯어보고, 기능도 살폈다. 기대만큼 탁월했다. 이번 펀딩은 성공적이라 생각했다.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다시 접속해 보기 전까지는…

탁월한 만듦새

만듦새에 놀랐다. 중소 브랜드 제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품질을 보였다. 가장 놀란 부분은 ‘마감’이다. 지퍼와 소매, 겨드랑이 등 사소한 곳까지 섬세하게 신경 쓴 티가 났다.

디테일 보소.

지퍼는 방수 소재로 만들어졌다. 물이 침투하지 않도록 한 건데, 기능성이 높으면서 보기에도 깔끔했다. 소매와 허리춤에는 활동성을 높여주는 밴드가 붙었다. 이 옷은 신축성이 아예 없는 소재로 제작됐다. 이런 소재는 자칫 착용감을 떨어뜨릴 수 있는데, 밴드가 있어서 입고, 벗고, 움직이기 편했다. 회색 옷에 들어간 검은색 밴드는 디자인 포인트 역할도 톡톡히 했다.

겨드랑이에 땀이 차면 안 되니까…

뻣뻣하고 공기가 잘 안 통하는 소재로 만들어진 대신 겨드랑이에는 메시 소재가 덧대어졌다. 통풍성을 높이기 위한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디스로드 스카치점퍼에 사용된 원단은 방수, 방풍, 빠른 건조, 빛 반사 기능을 가진 기능성 신소재다. 기능도 이렇게 많은데 가볍기까지 했다. 보온성도 좋았다. 한파 수준의 날씨가 아니라면 디스로드 스카치점퍼 한 장만 걸치고 나가도 충분할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모든 걸 갖추고도 최소 펀딩 가격이 5만9천원이었다는 사실.

뛰어난 빛 반사

디스로드 스카치점퍼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빛 반사다. 펀딩률 1,380% 달성의 일등공신도 아마 이 빛 반사 기능이지 않을까 싶다. 굳이 어떤 기능인지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다. 나이키 운동화나 트레이닝복에서 익히 봐왔던 그것이니까. 조명을 비추면 그 빛을 반사해 더욱 환하게 빛나는 그것. 그런데 포인트 요소로 몇 군데 들어간 게 아니다. 옷 전체가 빛 반사 소재로 만들어졌다. 뿜어내는 광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건데,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봤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

굉장한 존재감이다. 멀찍이서 봐도 사람의 존재를 확실히 알아챌 수 있을 만큼 강한 빛을 뿜어냈다. 그렇다고 착용자에게 소위 ‘눈뽕’을 일으키진 않았다. 보는 이에게만 내 존재를 확실하게 알려줬다. 빛 반사 기능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디스로드 스카치점퍼를 입고 자전거를 타니 심리적으로도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이번 펀딩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재밌는 건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으면 옷이 밝게 빛나면서 주변부 노출이 모두 죽어버린다는 거였다. 옷만 밝게 빛나고, 얼굴을 포함한 모든 곳이 어둡게 변했다. 이런저런 재미있는 사진을 연출하는 데 쓰기도 참 좋았다.

도대체 어느 스타트업이 이렇게 좋은 걸 만들었나 싶었다. 알아보니 스카치점퍼는 나름대로 인지도 있는 제품이었다. ‘멀티 쉴드 점퍼’란 이름으로 수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 점퍼였다. 원단 밀도를 기존보다 높이고 보호 코팅을 추가한 게 와디즈 펀딩 제품이었다.

나는 성공했지만

성공적인 펀딩이라고 생각했다.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마실을 나갈 때 두루두루 활용했다. ‘기능성 캐주얼웨어’라는 제조사 설명도 딱 들어맞았다. 깔끔한 디자인이어서 어디에 매치해도 어울렸다. 몇 주간 체험 후 리뷰를 작성하고자 펀딩이 진행됐던 와디즈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런데 웬걸. 그곳은 이미 진흙탕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사은품 미배송 문의, 사이즈 이슈로 펀딩 참여자들의 불만이 쇄도했다. 메이커(제조사)의 응답은 리워드 발송 공지를 기점으로 멈춰 있었다. 이마저도 ‘제품과 교환 사항을 메모해 보내달라’는 문구가 복사 + 붙여넣기 되어 있을 뿐이니 소통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평소엔 미디엄 사이즈를 입는다. 그러나 디스로드 스카치점퍼는 라지 사이즈임에도 여유 공간이 없다.

사실 디스로드 스카치점퍼는 사이즈 문제가 심각했다. 가까스로 딱 맞게 입긴 했지만,이 점퍼가 통상적인 사이즈를 따랐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평소 미디엄 사이즈를 착용하는데, 디스로드 스카치점퍼는 라지 사이즈가 딱 맞았다. 그것도 여유 공간이 없는 수준. 이 정도면 한 치수 이상을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옷이 이렇다 보니 교환 문의가 쇄도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더욱이 펀딩 페이지 내에선 사이즈 관련 안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이즈를 가늠할 수 있는 차트가 있다고는 하나 많은 사람이 사이즈 차트까지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옷을 고르지는 않았을 거다. 

서포터의 메시지를 받고 싶다는 메이커의 말이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통상적인 사이즈보다 작은 옷이었다면 모든 펀딩 참여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눈에 띄는 문구 정도는 달아 놓았어야 했다. 펀딩 참여자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부분이다. 배려가 부족했다면, 대응이라도 정성을 들였어야 했다. 사후 관리까지 끝내야 그것이 완전한 펀딩이다. 리워드만 발송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제조사는 일정 시점을 기점으로 소통을 멈췄다. 펀딩 참여자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대답 없는 그들을 향해 외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과 쇼핑몰 사이에서

‘펀딩하기는 쇼핑하기가 아닙니다!’ 와디즈 사이트 내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구매하는 상품’이 아닌 ‘투자하는 제품’이며, 투자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속뜻을 가진 말이다. 맞는 말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쇼핑이 아니다. 우리가 받는 제품은 돈을 주고 사는 개념이 아니다. 투자에 대한 리워드(보상)다. 투자에 위험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리워드 발송이 지연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며, 때에 따라선 아예 받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크라우드 펀딩을 쇼핑 개념으로 생각한다. 이를 바로 잡고자 와디즈에선 펀딩과 쇼핑의 차이를 꾸준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참여자뿐만 아니라 메이커 역시 크라우드 펀딩을 쇼핑몰 정도로 여기는 사례가 종종 있다. 크라우드 펀딩을 단순히 ‘판매 루트’ 정도로 여기는 기업이 있다는 거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메이커가 모이는 곳이다. 이들이 대중의 투자를 받고 소통하면서 제품을 완성하는 공간이다. 이런 순수한 창작의 공간이 일부 메이커 때문에 변질되는 상황이 참 안타깝다. 이번 펀딩을 보며, 크라우드 펀딩의 어두운 그림자가 떠올랐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포털사이트 오픈마켓에는 큼직한 사이즈 안내 문구가 있다.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제품은 종종 펀딩 종료 후 일정 기간이 지나고 시장에 나온다. 가격은 펀딩가보다 조금 비싸게 책정된다. 우리가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이유는 품질 좋은 아이디어 제품을 조금 싸게, 조금 일찍 접해볼 수 있는 이점 때문이다.

디스로드 스카치점퍼는 크라우드 펀딩 리워드 발송일과 유사한 시점에 포털사이트 오픈마켓에서도 판매됐다. 가격도 똑같은 5만9천원. 상품 설명에는 ‘활동성을 고려한다면 한 치수 이상 크게 입으라’는 큼지막한 문구도 있다. 생각해 보자. 이렇게 편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왜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펀딩에 ‘투자’한 걸까?

펀딩은 쇼핑몰이 아닙니다.
도전하는 사람들과 도전적인 아이템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