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는 지난해까지는 크게 두각되지 못했지만 2015년에 부각될 브랜드, 서비스, 제품 등을 소개하는 '넥스트 브랜드'를 연재합니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는지 얼리어답터와 함께 재조명하는 특집이 될 것입니다.
1편 : MB&F 인디펜던트 워치메이커
MB&F는 스위스의 인디펜던트 워치메이커다. 이름을 풀어 쓰면 ‘막시밀리언 부저와 친구들(Maximilian Busser & Friends).’ 어쩐지 환갑쯤 된 록 스타가 후배들과 함께 낸 듀엣 음반 같은 이름이지만, MB&F는 현재 기계식 시계 업계에서 가장 젊고 혁신적인 브랜드다. 애플워치를 비롯해 스마트 시계가 전통적인 시계 산업의 위기를 말하고 있을 때, 자신들이 만드는 것은 시계가 아니라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시계는 시계를 기계산업에서 예술로 승화시킬 혁신 브랜드다.
인디펜던트 워치메이커
인디펜던트 워치메이커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시계를 만드는 인물 또는 그가 만든 메이커를 말한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시계를 만드는 이들은 점차 그 빛을 잃어가던 전통적인 수공예로서 기계식 시계의 아름다움을 계승, 발전시켜왔다. 최근엔 새로운 유형의 인디펜던트 워치메이커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전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전에 없던 메커니즘을 가진 독특한 시계를 만들거나 스위스, 독일, 일본이 아닌 시계 산업의 변방에서 독자적인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경우다. MB&F는 전자를 대표하는 브랜드. 브랜드 설립자인 막시밀리언 부저는 이런 새로운 흐름을 기획한 장본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인물이다.
막시밀리언 부저
막시밀리언 부저는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유명 워치메이커와 협업, 그들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한정판 복잡 시계를 발표해온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의 ‘오푸스(Opus)’ 컬렉션을 주도적으로 기획한 인물이다. 부저는 독창적이고 정교한 오푸스 컬렉션을 성공시키며, ‘다이아몬드의 왕’으로 불리는 주얼리 명가였지만 시계 브랜드로서의 역사는 일천했던 해리 윈스턴을 고급 시계 업계에 빠르게 안착시켰다. 그리고 그간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했던 독립 시계 제작자들과 정교하고 독창적인 그들의 시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실제로 많은 인디펜던트 워치메이커가 오푸스 시리즈를 발표한 후 대대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스위스 시계 업계에서 가장 촉망 받는 젊은 기획자였던 부저는 2005년, 홀연히 해리 윈스턴을 떠나 자신의 이름 뒤에 ‘친구들’이라는 단어를 붙인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
친구들
막시밀리언 부저가 자신의 시계를 만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다시 한 번 ‘협업’이었다. 한정판 시계를 소량 생산하고, 브랜드 내에 시계 제작 인력과 시설을 두는 대신 시계를 만들 때마다 새로운 팀을 구성하는 방식. ‘친구’란 이렇게 구성된 팀에서 시계에 필요한 부품을 만드는 모든 인물을 일컫는 말이다. MB&F는 시계가 하나 완성될 때마다 거기 참여한 모든 ‘친구’의 프로필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고, 막시밀리언 부저는 자신의 성공이 모두 이 ‘친구’들의 덕분이라고 말한다. ‘갑질’이 주요 트렌드인 우리 사정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 연간 생산량이 30~50개에 불과했던 초기에 최상급의 부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하기 위해선 부품제작자 하나하나와 일반적인 파트너십 이상의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야 했다. 그렇게 구성된 팀은 막시밀리언 부저의 머리 속 공상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를 완전히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현실화시킨다. 시계보다는 자동차의 엔진이나 우주 비행선, 심지어 툭 튀어나온 개구리 눈깔을 닮은 MB&F의 시계는 그렇게 탄생한다.
시각을 표시하는 건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막시밀리언 부저는 <더갤러리아>와의 인터뷰에서 MB&F를 이렇게 소개했다. “1972년 쿼츠 무브먼트가 탄생한 이래, 더 이상 기계식 시계를 만들고 팔아야 할 실용적인 이유는 없어졌다.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기계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지금 나오는 기계식 시계의 99%는 쿼츠 시대 이전의 것과 똑같을까? MB&F는 가장 높은 수준의 전통적인 시계 제작 기술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기계 예술품을 만든다.” SF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MB&F의 한정판 시계들은 대개 한화 1억 원 이상의 고가에 판매되지만 거의 전량 매진되며 기존의 시계에 지루해하던 골수 마니아의 열광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들은 애플의 신제품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MB&F의 새로운 한정판 에디션 소식을 기다린다. 막시밀리언 부저는 MB&F가 2013년에 이미 연간 생산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성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작은 규모를 유지해야 변화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창조적인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HM6 스페이스 파이럿(Space Pirate)
MB&F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한정판 시계. 이 희한하게 생긴 시계의 케이스 위엔 모두 다섯 개의 투명한 반구가 있다. 아래쪽 두 개가 각각 시와 분을 표시하고 가운데 반구 안에선 중력의 영향을 상쇄하는 플라잉 투르비용이 1분에 1바퀴 회전한다. 위쪽 두 개는 마치 비행기 제트 엔진의 터빈처럼 생겼는데, 시계를 좌우로 움직이면 ‘쌩’하는 소리와 함께 돌아간다. ‘우주 해적’이라는 시계의 컨셉트를 표현하기 위한 재미있는 장치. 크라운도 양 옆으로 두 개가 달려 있는데 오른쪽은 일반적인 시계의 크라운처럼 시와 분을 조정하고 태엽을 감는 역할. 왼쪽 크라운을 돌리면 가운데 투르비용 반구가 마치 돔처럼 닫히는데, 외눈박이 거대 괴물이 천천히 눈을 감는 것 같은 작동 방식이 정말 끝내준다. 순수하게 재미를 위한 시계. 50개 한정 판매되며 가격은 23만 달러(한화 약 2억4천8백만원).
문 머신(Moon Machine)
핀란드 워치메이커 스테판 사르파네바(Stepan Sarpaneva)와 협업해 만든 시계. 개구리 눈알을 닮아서 ‘HM3 프로그(Frog)’로 불리던 시계에 스테판 사르파네바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의 달을 더했다. ‘보름달이 뜬 밤, 개구리와 키스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는 서양 속담을 실물로 만들어 놓은 듯한 시계. 18개 한정 판매, 가격은 9만 8천 달러(한화 약 1억 5백만원).
LM101 레거시머신(Legacy Machine)
이름처럼 이제껏 MB&F에서 만든 가장 전통적인 시계. 시계 무브먼트의 심장 역할을 하는 밸련스 휠을 아예 다이얼 위로 올린 아이디어로 주목 받았다. ‘내가 1967년이 아닌, 1867년에 태어났으면 어떤 시계를 만들었을까?’라는 부저의 공상으로 시작된 시계. 막시밀리언 부저가‘HM3 메가와인드’와 함께 MB&F의 시계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자주 착용한다고 밝힌 시계이자 발매 직후 매진된 ‘LM1’의 후속 모델. 33개 한정 생산, 가격은 9만 2천 달러(한화 약 9천9백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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