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좋아한다. 장비에 미치진 않았지만, 적당한 장비 욕심도 있다. 좋은 장비가 항상 좋은 사진을 가져온다고 믿진 않는다. 하지만 장비가 좋으면, 사진을 조금 더 편하게 찍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사진과 사진 장비와 관련된 커뮤니티 사이트도 가볍게 둘러보고 있고, 신제품 동향과 최신 뉴스도 챙겨보고 있다.
하지만 유독 서울국제사진영상전(P&I)과는 인연이 없었다. 약 3년 전, 소니 a7 II 소식을 전후해 찾은 이후, 행사 자체에 대한 관심이 ‘짜게 식은’ 탓이다. 그저 그런 볼거리, 사다리를 이끌고 나선 출사족, 도떼기시장 같은 행사장 풍경은 금세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19일부터 코엑스에서 P&I가 열렸다. 최근 소니의 새로운 미러리스 카메라 a7 III의 출시와 함께 장비에 관한 관심이 후끈 달아올랐기에 무척 오랜만에 전시장을 찾았다. 반나절 정도 전시장 요모조모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기억에 남은 세 가지를 추렸다.
1. 여전히 많은 사람
카메라의 큰 손(?)이 참가하지 않음을 통보하면서 P&I의 명성도, 참여율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첫날 도착한 P&I의 현장은 그런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카메라 시장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컴팩트 카메라 시장에 국한된 이야기고 프리미엄 DSLR과 같은 고급 카메라의 수요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의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전시장 내부도 마찬가지. 그 수가 줄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업체가 새로운 카메라와 새로운 액세서리를 대거 선보였고, 이를 구경하러 온 사람 또한 많았다. 구매자, 출사자, 관람자, 바이어, 매체 관계자 등이 어우러져 여전히 정신을 쏙 빼놓았다.
첫날의 어수선함을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카메라를 찾는 사람은 많다. 평일이 지나고 주말에는 어떤 아수라장이 펼쳐질지 걱정이 앞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사다리 이용을 자제해달라는 안내 등이 있어 예전처럼 사다리 행렬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캐논에서 진행하는 ‘굿셔터 캠페인’과 같은 올바른 사진 문화를 위한 자정작용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기대한다.

2. 매력적인 신제품
a7 III 출시 때문에 P&I에 관한 흥미가 타오른 만큼, 다양한 신제품 또한 기억에 남는다. P&I에서 새로운 제품이 첫 선을 보이기도 했고, 아직 시장에 충분히 풀리지 않은 따끈따끈한 제품을현장에서 만져볼 수 있는 점도 기억에 남는다.
올 P&I의 가장 큰 수혜자는 소니가 아닐까? 지난 10일 정식 출시하자마자 품귀를 일으킨 a7 III는 P&I 현장 판매 예고 후, 예비 구매자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그 결과 P&I 시작 5분 만에 현장 판매분이 전부 판매됐다고 한다. 거의 오픈과 함께 소니 부스로 사람들이 달려갔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해봄 직하다.
매일 소량씩 제품을 들여올 예정이라고 하니, 아마 매일 이와 같은 구매 전쟁은 반복될 듯하다. 제품 가격은 한 푼의 에누리 없는 249만9천원. 비싸다고 해도 살 사람은 산다. 제품의 가치와 가격을 판단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른 법이니까.
과거와 비교하는 확실히 소니 마운트(E마운트) 관련 체험존이 눈에 띈다. 서드파티 회사인 탐론에서는 E마운트 표준 줌 렌즈인 28-75mm의 베타 버전을 선보였고, 세기에서는 공급하고 있는 E마운트 바티스 렌즈군을 진열해뒀다. 탐론 28-75mm는 연내 출시할 예정으로, 작고 가벼우면서 최소초점거리도 짧은 편이라 출시 후 많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웨스턴 디지털은 샌디스크 인수 후 처음으로 통합 부스를 P&I에서 선보였다. 지난주 선보인 웨스턴디지털의 마이 패스포트 와이어리스 SSD와 샌디스크 익스트림 프로 CFAST 2.0 메모리카드 512GB, 샌디스크 익스트림 프로 SD UHS-I 카드 512GB 제품을 새롭게 전시했다. 제품을 직접 시연해볼 수 있는 공간은 없었으나, 사진 데이터 관리가 숙명인 사진가들에게 매력적인 제품이 되리라 예상한다.
폴라로이드는 새롭게 설립한 후 기존 폴라로이드 규격을 충족하는 폴라로이드 원스텝2 제품을 작년에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 P&I에서 실제 작동하는 실기기와 필름을 볼 수 있었다. 기존 폴라로이드는 필름에 배터리가 포함된 구조였으나, 새롭게 등장한 폴라로이드는 배터리가 본체로 이동하면서 필름의 구조가 조금 단순화됐다.
기존 폴라로이드 애호가에겐 브랜드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소식. 다양한 종류의 필름도 준비돼 다시 폴라로이드 감성을 느껴볼 수 있게 됐다. 본체의 가격은 16만원. 필름팩의 가격은 조금씩 다르다.
DJI에서도 가장 ‘핫한’ 드론인 매빅 에어를 전시했다. 올 초 출시한 매빅 에어는 접이식 디자인으로 무게는 불과 430g이다. 매빅 프로와 스파크 사이를 잇는 모델로 강력한 기능과 휴대성을 두루 갖췄다. 조정 안정성과 편의성이 다른 드론 모델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DJI는 이번 매빅 에어로 드론 입문자에게 또 하나의 매력적인 선택지를 제시했다. DJI는 또한 다양한 촬영 기기용 짐벌을 선보였다. 스마트폰부터 무거운 DSLR까지 크기에 맞는 짐벌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공개된 신제품은 전시와 함께 현장 판매를 겸하고 있는 일이 많았고, 많은 사람이 아낌없이 주머니를 열었다. 전시회가 벼룩시장으로 전락한다는 생각은 들면서도, 이제는 현장 판매를 위해 찾는다는 관람객이 있을 정도니 결국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한 일일 듯하다.
3. 여전히 모델
P&I는 다른 전시회보다 모델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인물 사진을 촬영하는 카메라 이용자에게 적절한 예시를 제공해야 하기에, 공식적으로 다양한 모델을 섭외해 포토존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출사족이 유독 P&I에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모델 사진이 많으면 더 많은 사람이 읽게 되는 유인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겠다. 다양한 모델 사진을 촬영했으니 맘껏 즐기자.
또 식었다.
새로운 기기와 함께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으나 반나절쯤 돌아보곤 다시 관심이 식어버렸다. 신제품을 한꺼번에 만져볼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P&I라서 더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진과 사진 장비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결정적인 것도 없었다. 다양한 카달로그와 자료를 떠안고 왔지만,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쉽게 구할 자료가 대부분이라 결국 모두 폐지함으로 향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회사의 제품을 한 자리에서 만져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는 매력적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정물부터 인물 사진을 담아볼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
이번 서울국제사진영상전은 22일까지 코엑스 A관에서 열린다. 남은 주말, 새로운 제품 체험과 구매를 원한다면 인산인해를 뚫어야 할 예정이니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향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