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이지만 실용적인 안경을 만드는 애쉬크로프트.
다양한 제품을 냉철하게 살펴보는 얼리어답터가 함께 기획, 제작한 안경.
애쉬크로프트 홀든 콜필드 얼리어답터 에디션
집에서 터치, 혹은 클릭 하나면 웬만한 물건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시대라지만, 아직도 보수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품목이 있다. 내 경우엔 몸에 걸치는 것.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 같은 게 그렇다. 혹여나 사더라도 오프라인에서 비슷한 옷을 걸쳐보거나 크기를 면밀히 살펴본 후 가격 혜택을 고려해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정도랄까?
이렇게 고지식한 내가 앞뒤 가리지 않고 보자마자 구매한 게 애쉬크로프트(Ashcroft)의 안경,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였다. 이게 벌써 2년 전의 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을 받았던 애쉬크로프트는 그렇게 나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애쉬크로프트의 새 안경. 홀든 콜필드 두 번째 버전을 손에 들었다.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어요.
사고 싶은 안경을 샀지만, 마냥 행복한 건 아니었다. 1년쯤 쓰다 보니 사소한 문제도 있었다. 생각보다 무거운 바디, 이에 따른 코 눌림. 안경이 앞으로 쏟아지는 현상. 그리고 코와 맞닿은 부분의 테두리 코팅이 벗겨지는 문제가 있었다. AS를 받아 부품을 교체하고 무게 중심을 두상에 맞게 잡아줘 해결했지만, 내심 ‘좀 더 완성도 높은’ 제품을 바란 것 또한 사실이다.
산 지 1년 정도 지나 AS를 받으면서 아쉬움을 전했고, 애쉬크로프트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었다. 실제 활용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얼리어답터와 애쉬크로프트가 함께 작업해 개선된 안경을 소개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른바 ‘애쉬크로프트 홀든 콜필드, 얼리어답터 에디션‘이 주인공이다.
애쉬크로프트 홀든 콜필드
애쉬크로프트는 2009년부터 시작된 하우스 안경 브랜드다. ‘고전적인 것들의 가치에 현대의 매력을 부여한 아이웨어‘를 만들며, ‘실험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제품을 고민한다.
홀든 콜필드 또한 ‘실험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제품이다. 고도 근시자는 필연적으로 두꺼운 렌즈를 쓸 수밖에 없다. 현재 굴절률을 조절해 4단계까지 ‘압축’할 수 있는데, 압축을 한다 해도 렌즈는 두꺼워지고, 어떤 테는 렌즈를 아예 넣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 한편으로 이렇게 튀어나온 부분은 시야에 거슬려 어지러움이 생기기도 하니 ‘고도 근시자의 슬픔’이라 할 만하다.
홀든 콜필드 안경은 그래서 두꺼운 테를 채택했다. 두꺼운 렌즈를 안정적으로 넣을 수 있고,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도록 잡아 산만한 인상을 잡았다.
이렇게 세상에 태어난 안경은 J.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른쪽 테두리 위에 ‘The Catcher in the Rye'(호밀밭의 파수꾼 원제)도 새겼다.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제목은 들어봤음직한 <호밀밭의 파수꾼>. 여기에 등장하는 홀든 콜필드는 가식과 위선 속 사회를 떠도는 청소년으로 등장한다.
성인의 세계를 위선의 세계로 단언하고 소년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홀든 콜필드. 디자이너는 이 안경에서 불안하고 유약하지만, 순수한 홀든 콜필드의 모습을 떠올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얼리어답터 에디션은 뭐가 달라졌는데요?
앞서 아쉬웠던 부분은 애쉬크로프트에서도 비슷하게 인지하던 불편사항이라고 한다. 개선된 제품을 내놓기 위해 생각보다 예전부터 대화를 진행했고, 완전히 새로운 색상,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 나왔다.
1) 두께와 무게의 변화
홀든 콜필드 에디션의 문제 중 하나는 무겁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무거운 안경이 뭐 어때서’라고 생각했지만, 2년 가까이 쓰면서 확실히 무거운 안경은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새로운 홀든 콜필드는 두께를 소폭 줄이고 무게를 덜었다.
이 과정에서 테두리 재질에도 변화가 있었다. 재질이 바뀌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합금의 밸런스를 잡아 테두리의 강도를 지키면서 렌즈를 단단히 잡아주고, 경량화를 이뤘다. 약 40% 무게를 덜어냈으며, 두 안경을 양손에 나눠 들면 무게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2) 코받침의 변화
기존 홀든 콜필드는 클래식한 스타일의 코받침을 그대로 활용했다. 안경을 안정적으로 지탱하기 위한 방책이었으나, 무거운 무게가 그대로 콧대에 전달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코받침을 조립하되, 실리콘을 씌워 코에 닿는 부담을 덜어냈다. 오래 썼을 때도 코에 자국이 남지 않고, 착용감이 좋다.
코받침 말고도 부속의 접점을 조금씩 수정해 전체적인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지 않도록 했고, 무게가 머리에 효율적으로 분산되도록 설계했다.
3) 안경다리 디자인의 변화
안경다리 디자인도 소폭 바뀌었다. 기존보다 소폭 길어지면서 안경다리 끝은 두꺼워졌다. 두상에 맞춰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넓혔으며, 앞으로 쏟아질 수 있는 안경의 무게를 잡아준다.
4) 어디에도 없는 색상
달라진 형태의 홀든 콜필드2에 이어, 홀든 콜필드 얼리어답터 에디션은 완전히 달라진 색상을 채택했다. 기본적으로 금속 본연의 느낌을 살린 아노다이징 처리 이후, 수작업으로 무늬를 새롭게 입혔다. 덕분에 홀든 콜필드 얼리어답터 에디션은 모든 제품의 무늬가 다르다.
얼리어답터 에디션을 준비하면서부터 기존에 없던 색상을 만들고자 오랜 협의를 거쳤다. 최종적으로 나온 이 색상은 코퍼 색상에 가까운 골드. 처음엔 ‘조금 튄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 착용해보니 사람의 피부톤과 어울려 실버나 블랙보다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나만의 홀든 콜필드를 찾아서
애쉬크로프트 홀든 콜필드 얼리어답터 에디션. 그리고 최근 성공적으로 펀딩을 마친 와디즈 에디션 두 제품을 쓰고 일상을 보냈다. 기존 홀든 콜필드를 2년 동안 써왔기에 그 차이를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첫인상부터. 안경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착용자의 인상이니까. 안경의 매력을 한껏 살리는 전문 모델의 모습이 아닌 직원의 착용 모습을 보면 안경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것 같다. 원형을 기본으로 하면서 끝이 약간 날렵한 테두리는 기존 홀든 콜필드의 느낌과 다르지 않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이며, 테두리와 테두리를 잇는 브릿지와 살짝살짝 보이는 날렵함이 마냥 순해 보이진 않는다. 부드러우면서도 언뜻언뜻 보이는 날카로움은 호밀밭에 파수꾼에 나오는 홀든 콜필드를 다시 한번 떠올려봄 직하다.
손으로 느껴지는 가벼움은 착용했을 때 배가 된다. 물론, 그렇다 해도 기존에 있는 다른 안경보다는 무게감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안경이 가볍기만 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안경이 중요한 법이다.
수줍게 고백하자면 처음엔 겉보기에 무난한 은색이 더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두 안경을 섞어 착용하고, 주변의 반응을 들어도 ‘얼리어답터 에디션’ 쪽의 반응이 좋았다. 피부와 비슷한 톤, 그리고 오묘한 무늬가 예쁘게 보인단다.
변하지 않기에 소중한 것이 있다. 애쉬크로프트는 다양한 실험적인 안경을 선보이나, 실험적인 오브제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쓸 수 있는 실용적인 안경을 만든다. 그리고 여기에 애쉬크로프트만의 철학을 녹여낸다.
애쉬크로프트 홀든 콜필드, 얼리어답터 에디션. 이 안경이 절대적으로 완벽한 안경은 아닐 것이다. 또 수 년 쓰다 보면 사소한 불편함이 생길 수도. 하지만 작업 과정을 함께 하면서 생각보다 세심하고, 견고하게 제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꽤 긴 시간 동안 제작 과정을 따라가며, 안경의 만듦새 이상으로 안경을 바라보는 애쉬크로프트만의 철학을 살펴봤다. 한정판 100개를 준비하며 실험적인 시도를 얼리어답터와 함께했고, 내겐 제품을 떠나 의미 있는 기억이 됐다. 어쩌면 어른의 가식을 벗어던지고 불안정하지만 순수한 홀든 콜필드의 여정을 잠시나마 함께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웨어가 개인의 취향을 많이 따르는 제품이니 별점은 생략. 하지만 새로워진 애쉬크로프트 홀든 콜필드 얼리어답터 에디션은 앞으로 계속 나보다 먼저 세계를 보고, 또렷한 세계를 내게 보여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단 100장만 있는 이번 한정판의 가치를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