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무선 이어폰의 원조가 누굴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정답은 ‘브라기(Bragi)’였다. 브라기는 독일의 기술 업체로, ‘완전 무선 이어폰’으로 볼 수 있는 최초의 제품을 세상에 선보였고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근래에는 우리나라에도 정식으로 유통을 시작한 한편, 지금도 한창 라인업을 세워나가는 중.
‘더 대시 프로(Bragi the Dash PRO)’는 그들의 기술력과 열정이 가장 잘 녹아있는 최신형 완전 무선 이어폰이다. 가격은 42만9천 원으로, 완전 무선 이어폰 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비싼 수준일 듯하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녀석이다. 브라기의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모두 결집되어 극상의 완전 무선 이어폰을 지향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는 이 물건을 이어폰이라기 보다는 듣는 웨어러블 컴퓨터, ‘히어러블(Hearable)’이라 칭하고 있을 정도. 그래 그럴 만도 하다.
패키지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녀석은 포장도 참 깔끔하고 멋지다. 작은 종이 상자들 만으로 이렇게 기분 좋게 만들 줄이야.
케이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알루미늄 슬라이드 커버의 생김새 때문에 샤오미 5000mAh 보조배터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무게가 상당한데, 휴대성이 중요한 완전 무선 이어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분명 아쉬운 부분이긴 하나 고급스러운 만듦새와 디자인이 충분히 상쇄해준다. 슬라이드를 쓰윽 밀어내면 빼꼼 모습을 드러내며 대리석 바닥처럼 반짝이는 이어버드의 자태가 나타난다. 부드럽게 점등되는 LED까지, 왠지 감동적이다. 자석으로 붙어있는 녀석을 떼어낼 때의 스무스한 힘이 기분 좋다.
귀에 꽂는 순간 자동으로 켜져서 편리하다. 이어버드의 크기는 작지 않은 편이나, 부담스럽게 큼직하지도 않아 적당하다. 귀와 닿는 면적에서 팽창감과 압력이 좀 느껴지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다. 착용감은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견고하게 느껴지는 편.
이어버드에는 자체 메모리를 내장했기 때문에, 충전 케이스에 꽂은 상태로 컴퓨터와 연결해서 음악 파일을 담을 수 있다. 스토리지 용량은 4GB. 다만 전송 속도가 매우 느렸다. 1MB/s도 채 나오지 않는 덕분에 많은 인내심을 기를 수 있었다.
어쨌든 굳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블루투스 연결을 하지 않아도 그냥 켜서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그 자체의 메리트는 대단하다. 귀에 꽂는 작은 MP3 플레이어인 셈이니까. 스마트폰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이어버드를 켜서 재생시키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운동할 때도 굳이 페어링을 할 필요가 없으니 편하다. 조깅이나 수영 등을 편하게 할 수 있다. 제조사에 따르면 수영을 하면서도 이어폰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수심 1m에서도 버티는 IPX7 등급의 방수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기도 하며 완전 무선 이어폰 중에서 가장 강력한 성능이다. 단, 사람 앞 일은 모르는 거니까 동봉되어 있는 실리콘 피트 슬리브를 잘 결합해서 이어버드를 잘 보호하자.
브라기 더 대쉬 프로에는 좀 더 안정적인 연결을 위한 기술이 들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어버드끼리의 연결이 불안정한 이유는 블루투스로 통신하기 때문인데, 보청기에 쓰이는 NFMI(Near Field Magnetic Induction)라는 근거리 자기 유도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훨씬 안정적이다. 잦은 연결 끊김과 튐 현상으로 완전 무선 이어폰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면 확실히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사무실 내에서나 집 안, 버스, 지하철 등에서 끊김 현상을 아예 느낄 수 없었다. 다만 그래도 100% 안정성을 보장하진 못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으로 가득찬 퇴근길 강남역 열차 내에서는 어쩔 수 없었는지 한 두 번 정도 음이 튀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유동 인구가 많은 역 주변 길거리에 서있을 때도 동일한 현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났다(소프트웨어 버전 3.1.0 기준).
음색은 저음이 살짝만 강조된 평이한 인상을 준다. 어느 음역대 하나 모나거나 튀지 않고 부드럽게 표현된다. 다소 메마른 톤으로 느껴지며, 다이내믹하고 실감나는 울림이나 V자형의 이퀄라이저를 좋아한다면 밋밋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따로 탑재되진 않았지만 차음성이 충분히 훌륭해 음악 몰입감을 높여준다. 이어팁의 종류도 다양하다. 폼팁과 실리콘팁을 사이즈 별로 제공하기 때문에 중저음을 좀 더 보강하고 싶다면 폼팁을 끼우는 게 유리하다.
전화 통화 시에 마스터 유닛인 오른쪽 이어버드 한 쪽에서만 소리가 출력된다는 점은 의외였다. 그래도 통화 품질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비록 상대방이 내 목소리 외에 다른 잡소리를 지적하긴 했지만, 목소리 음질이 깨끗한 편이었다.
참고로, 오른쪽 이어버드만 꺼내서 두 번 탭하면 독립 모드가 활성화되면서 한 쪽만 사용할 수 있다. 왼쪽 이어버드는 지원하지 않지만.
브라기 더 대쉬 프로는 컨트롤 UX에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을 보여준다. 우선 각 이어버드에는 터치 패널이 탑재되어 있어서 톡톡 두드리거나 살짝 스와이프해서 모든 조작이 가능하다. 귀를 압박하지 않아서 좋지만, 터치 입력은 손가락 끝의 넓은 면적으로 확실하게 인식시켜야 하기 때문에 처음 몇 번은 적응이 필요하다.
왼쪽 이어버드를 앞쪽으로 스와이프하면 투명도 모드(Transparency)가 켜진다. 투명도 모드는 마이크가 켜지면서 주위 소리를 담아 들려준다. 이어버드를 빼지 않고 주위 사람과 대화할 때 유용하다. 마이크 감도가 꽤 우수해서 작은 소리까지 잘 증폭해주며, 소리에 인위적인 느낌이 덜해서 자연스럽다. 이어폰을 귀에 끼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수준이다.
한 번 더 스와이프하면 윈드실드(WindShield)가 작동한다.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들을 때는 투명도 모드와 큰 차이점이 없을 정도로 주위 소리를 담아 전달해주는데, 실은 그 와중에 쌩쌩 부는 바람 소리만 막아주는 기능이다. 예를 들면 15~30km/h 속도로 자전거를 탈 때 무지막지하게 음악을 가려버리는 바람 소리만 골라서 막아주는 것이다.
투명도 모드를 끌 때는 반대 방향으로 스와이프하면 된다. 터치 인식률도 우수한 편이고 사용하기 편리했다.
터치도 편하지만 아예 손을 대지 않고 조작할 수도 있다. 바로 ‘가상 4D 메뉴’를 켜는 것이다. 전용 앱을 통해서 설정을 해주면 고개만 아래에서 위로 까딱이는 정도로 조작 메뉴를 불러주며, 왼쪽과 오른쪽으로 찬찬히 고개를 돌리면 마치 마우스로 메뉴를 고를 때 팝업이 뜨는 것처럼 각 항목을 친절히 읽어준다. 원하는 메뉴에서 고개를 끄덕이면 선택 완료. 가속도계와 자이로스코프 센서 등을 탑재한 덕분에 가능한 제스처 컨트롤이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방법이 다소 어색하게 다가오지만, 마치 증강 현실 게임을 살짝 맛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재미있다. 인식률도 뛰어나다.
피트니스 파트너로써도 브라기 더 대쉬 프로는 훌륭하다. 운동을 자주 한다면 얼마나 활동량 측정이 정확한지, 데이터 관리가 용이한지, 격렬하게 움직여도 이어버드가 잘 빠지지 않는지를 걱정할 것이다. 다행히도 이 녀석에겐 별로 걱정할 거리가 없다. 오히려 앱으로 운동 시작을 일일이 체크해줄 필요도 없어서 매우 편리하다. 자동으로 활동량을 트래킹하고 분석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메뉴 동작 설명을 비롯해 운동 중이라면 중간 중간 브리핑을 해주기도 하는데, 한국말 번역이 2% 모자란 느낌 때문에 어색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인상이었다.
배터리 타임은 스펙 상으로 이어버드 5시간 음악 재생. 그리고 케이스를 통해 이어버드를 5번 정도 더 완충할 수 있다. 제스쳐 인식이나 운동 기능들을 사용하면서 음악을 들어도, 체감적으로 배터리 소모가 빠르게 느껴지진 않았다. 충분히 든든한 수준이다. 케이스도 생각보다 충전 가능한 용량이 빵빵하다.
‘고작 무선 이어폰인데 이런 것까지 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기능과 똑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브라기 더 대쉬 프로. 완전 무선 이어폰인줄 알았는데 작은 컴퓨터, 아니 작은 생활 비서였다. 그럼에도 왠지 겸손한 인상을 준다. 굳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이것저것 무심한 듯 시크하게 권유한다.
이어버드에 탑재된 프로세서와 운영체제, 심박 센서, 내장 스토리지, 방수 기능의 조화가 아름답다. 음악을 들려주는 완전 무선 이어폰, 그 이상의 생활 비서를 귀에 꽂은 느낌이 든다. 전체적인 사용성에 밸런스가 잘 맞춰진 최고의 완전 무선 이어폰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제품을 꼭 검토하길 바란다.
장점
– 완전 무선 이어폰 원조의 위엄을 여한 없이 보여주는 전체 성능
– 모나지 않고 고루 담백한 음색을 들려준다.
– 양쪽 이어버드 간의 연결이 상당히 안정적이다.
– 전용 앱 내에서 컨트롤 설정을 다양하게 커스텀 할 수 있어서 편하다.
– 고개를 움직여 컨트롤하는 가상 4D 메뉴가 신기하고 매끄럽다.
– 충전 케이스가 고급스럽고 만듦새가 좋다.
– 방수 성능과 배터리 타임이 든든하다.
단점
– 케이스 재질 특성상 꽤 무겁다.
– 가격이 부담스럽다.
디자인 |
음질 |
연결 안정성 |
신박한 컨트롤 |
배터리 |
가격 |
7.6 |
이제 히어러블의 시대가 온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