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Her, 2014)’에서 사만다와 함께 웃는 테오도르를 볼 때까지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에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 시대가 다가왔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약 3년이 지난 지금, 다양한 제조사에서는 ‘사만다’와 같지는 않지만, 음성인식 인터페이스 기반의 인공지능 관련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과거 얼리어답터에게나 주목받던 아마존 에코에 이어 국내에선 이동통신사의 공격적인 제품 출시와 함께 일반 소비자의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SKT의 누구(NUGU)나 KT의 기가지니(GiGA Genie)에 이어 국내 양대 포털도 가세했다. 네이버의 클로바, 그리고 카카오의 ‘카카오 I’를 담은 인공지능 스피커가 속속 출시했다. 이제 소비자들은 이제 인공지능 스피커가 무엇인지 분명히 인지하기 시작했다.
최근 사전 예약 사태를 겪으며, ‘나도 하나 사볼까?’를 낳은 인공지능 스피커 3종을 비교했다.
단단한 기본기를 갖춘 네이버 웨이브(WAVE)
양사 포털 중 가장 먼저 선보인 네이버 웨이브. 네이버 웨이브는 기본적인 성능이 가장 뛰어난 모델이다. 원통형 모양으로 방향에 상관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무지향성 스피커로, 우퍼와 함께 2개의 트위터를 갖췄고, 최대 출력은 20W다.
한쪽에는 전원을 연결할 수 있는 전원 단자와 전원 버튼, 음소거 버튼이 있고, 상단에 재생, 음량 조절 버튼과 기능을 지정할 수 있는 커스텀 키 3개가 있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 혹은 앱 스토어에서 네이버 클로바(Clova) 앱을 받은 후 설정을 마치면 웨이브를 활용할 수 있다. 설정된 호출명령어(기본 명령어는 클로바)를 부르면 초록불이 들어오며 음성을 인식하는 모드로 들어간다.
별도의 앱이 없으면 기본적인 사용조차 어려운 건 네이버 웨이브, 프렌즈, 카카오 미니 모두의 아쉬운 점이다. 특히 네이버 웨이브는 5GHz Wifi를 잡지 못해 2.4GHz 대역만 연결해야 해 아쉬움을 더했다. 카카오 I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연결과정이 직관적이진 않다.
스피커 자체의 기능이 가장 강력하다는 점은 네이버 웨이브의 장점이다. 앞서 말한 대로 20W에 이르는 출력은 다른 스피커와 비교했을 때 ‘스피커를 듣는 맛’이 났고, 4개의 마이크를 탑재해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호출 명령어를 민감하게 인식했다.
다만 이 민감도는 조절기능을 지원했으면 한다. 일례로 네이버 클로바의 유희 기능 중 하나인 ‘가을 노래 불러줘’를 요청하면 랜덤으로 노래를 부른다. 여기서 성시경의 ‘두 사람’을 부를 때가 있는데, 1절 말미에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쉴 곳이 되어주리”라는 부분에서 ‘서로의’를 ‘샐리야'(네이버 클로바 호출명령 중 하나)로 인식해 노래를 부르다 말고 음성 인식모드로 전환하는 혼선을 빚기도 한다.
다른 IoT 기기와 연결도 지원한다. TV나 스마트 전구와 연결하면 음성으로 이를 조작할 수 있다. ‘클로바 TV 켜줘’ 같은 명령어를 인식하고 가전을 조작한다. LG전자에서 클로바를 탑재한 음성인식 스피커를 내놓을 예정이고,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점을 미뤄보면 앞으로 더 많은 기기와 연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축 버튼 3가지도 생각보다 유용하다. 1번은 ‘호출명령어’를 말로 부르지 않아도 음성 인식을 준비하는 모드로 단순 명령어를 반복해야 할 때 일일이 ‘클로바’ 혹은 ‘샐리야’를 부르지 않아도 돼서 편리하다. 2번과 3번은 특정 장르나 차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 버튼이 네이버 뮤직 메뉴에 국한돼 있는 점은 아쉬우나 입조차 떼기 싫을 때, 버튼 하나만으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점은 매력적이다.
1kg이 조금 넘는 무게(1,030g)는 살짝 부담스럽지만, 집 안에 거치해 쓰는 용도고 가끔 자리를 옮기는 정도로만 쓰기엔 나쁘지 않다. 최대 5시간을 쓸 수 있는 배터리(5,000mAh)를 탑재해 전원 코드 길이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장점이다. 막상 이렇게 크고 무거운 스피커에 배터리가 필요할까 싶었지만, 집 안에서 조금씩 위치를 옮길 때 이런 편의성은 반갑다.
네이버 웨이브의 정가는 15만원. 네이버 뮤직 무제한 듣기 정기결제 이용권 1년과 함께 결제하면 13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네이버 뮤직을 지원할 때 의미가 있는 제품이니만큼 1년단위 결제 프로모션을 이용하는 게 좋다.
귀엽고 뛰어난 만듦새, 네이버 프렌즈
네이버 프렌즈(Naver Friends)는 웨이브와 마찬가지로 네이버 클로바를 탑재했다. 휴대성을 강화해 무게는 378g으로 줄이면서 배터리 사용 시간은 웨이브와 같이 최대 5시간을 맞췄다. 충전 단자도 USB 타입C를 채택해 범용 충전기로도 스피커를 충전할 수 있다.
크기가 줄면서 출력은 10W로 반토막이 났으나, 마찬가지로 무지향성 스피커고, 크기에 비하면 제법 괜찮은 출력이다.
웨이브와 달리 5GHz Wifi를 지원하는 점도 특징이다. 어떤 장소든지 Wifi를 연결할 수 있는 범위는 늘었으나 막상 휴대용으로 쓸 때 인터넷을 늘 보장할 수 없기에 밖으로 들고 나가면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해 단순 블루투스 스피커로 쓰는 일이 잦다.
그게 아니라면 LTE 에그같은 휴대용 인터넷 라우터를 소지하거나 매번 스마트폰의 핫스팟 태더링 기능을 활성화해 스피커를 연결해줘야 한다.
샐리와 브라운 2종으로 출시한 네이버 프렌즈는 재생 버튼이 있어 노래를 일시 정지할 수 있다. 브라운이라면 코를, 샐리는 부리를 누르면 된다. 뒷면에도 볼륨 조절 말고도 음소거, 블루투스 버튼을 넣어 손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네이버 웨이브와 네이버 프렌즈 모두 네이버 서비스를 음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네이버 캘린더, 네이버 메모 등을 활용하고 있다면 이를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어 활용도가 커진다. 카카오가 메신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데 비해 네이버는 자사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과 연동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밖에도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데 아직 부족함이 엿보인다. 업데이트로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대답의 질도 아직은 아쉽다. 좀 더 풍부한 설명을 기대한 것과 달리 표제어의 기본적인 설명에서 답변이 그친다.
다만 외국어 관련 서비스는 인상적이었는데, ‘고맙습니다를 일본어로 번역하면?’과 같은 질문을 매끈하게 답변했다. 또한, 영어로 대화하자는 주문에 영어로 답변을 이어가 영어를 연습하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음악은 네이버 뮤직 서비스와 연계한다. 네이버 뮤직의 가격은 저렴한 편이지만, 음원 데이터베이스 측면에선 다른 서비스보다 네이버 뮤직이 한 발 뒤쳐진다는 평이 있다. 그러나 국내 음원을 주로 듣는다면 유의미한 차이를 느끼진 않았다. 음악 하나를 재생해달라고 요청해보니 다음 곡은 해당 곡에 맞춘 추천곡을 선정해 재생한다. 추천곡의 개인적인 만족도는 평범한 편이다.
음원사이트에 음원이 새로 공개된 후에 해당 음원을 재생해달라고 하자 곡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업데이트 주기는 짧았지만, 정확히 발음하지 않은 것 같아 두번세번 반복하는 일은 번거롭고 언짢은 일이었다. 다행히 네이버 클로바 앱에서는 어떤 명령어를 이용자가 말했고, 클로바가 어떻게 인식했는지 알려주는 부분이 있어 시행착오는 두세 번에서 그쳤다.
해외 음원을 자주 듣는다면 네이버 뮤직이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네이버 뮤직이 아닌 다른 서비스와 연결하지 못하는 답답한 스마트 스피커는 가끔 고통스럽다. 그럴 땐 스마트폰에 연결해 음원을 들을 수밖에, ‘샐리야 블루투스 페어링’이라고 불러본다.
네이버 프렌즈의 정가는 12만9천원이다. 네이버 웨이브와 마찬가지로 네이버 뮤직 무제한 듣기 정기결제 이용권과 함께 결제하면 9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귀여움과 상호작용이 매력적인 카카오 미니
카카오에서 내놓은 카카오미니는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를 포인트로 삼았다. 고를 수 있는 캐릭터는 라이언과 어피치. 캐릭터 피규어는 자석 형태로 자유롭게 떼고 붙일 수 있다. 캐릭터 피규어를 별도로 판매하게 된다면 다른 캐릭터로 쉽게 교체할 수 있을 듯하다.
스피커 자체의 기능은 평범한 편이다. 최대 7W 출력을 갖췄으며, 무게는 390g으로 가볍다. 패브릭 재질을 덮어 부드러운 느낌을 줬다. 내부엔 4개의 마이크를 넣어 호출 명령어를 빠르게 알아듣는다.
상단에는 LED와 함께 자주 쓰는 아날로그 버튼이 있다. 네이버 웨이브가 정전식 터치 버튼이었다면, 카카오 미니는 물리적으로 눌리는 버튼을 채용했다. 음소거, 호출, 음량 조절로 활용할 수 있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 혹은 앱 스토어에서 ‘헤이 카카오’ 앱을 설치한 후 카카오 미니를 설정할 수 있다. UI가 좀 더 직관적이라 스피커 설정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카카오 미니 쪽이 좀 더 직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현재 아이폰X, 아이폰8/8+와는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하니 참고하자.
기본 호출 명령어는 ‘헤이 카카오’다. 2어절로 부르는 게 번거로운 편이라 ‘카카오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음성 인식률은 뛰어난 편이고 돌아오는 답변도 원래 목적에 맞는 일이 많았다. 특히 대화형 알고리즘을 채택해 답변과 함께 대화를 끝내지 않고,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방식은 더 자연스러운 대화를 했다는 느낌을 느끼게 했다.
인터렉티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소한 기능도 카카오 미니 쪽이 뛰어났다. ‘동전 던져줘’라고 요청하자 동전을 던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앞면(혹은 뒷면)입니다’라고 알려줬다. 동물을 생각하고 대답하는 스무고개 같은 기능은 ‘응’ 혹은 ‘아니’라고 답변하는 과정이 좀 귀찮았지만, 제법 정확하게 답변을 몰고 가는 느낌을 받았다.
카카오의 핵심 서비스인 카카오톡과 연동할 수 있는 기능도 장점이다. ‘~라고 카카오톡 보내줘’라고 요청하면 사전에 연동한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을 보낸다. 간단한 메모를 할 때, 내게 보내는 카카오톡을 즐겨 활용했다. 내게 보내는 카카오톡 말고도 친구에게 카카오톡을 보낼 수도 있고, 지금 재생 중인 노래를 보낼 수도 있다. 이때는 멜론 링크로 발송된다.
카카오 미니는 멜론을 이용한다. 다른 음원 유통 서비스보다 압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는 멜론인 만큼 전체적인 음원 추천이 뛰어나다. 특정 곡 재생을 요청하면 해당 곡을 반복 재생하는 점이 특이하다.
하지만 스피커의 기본기는 좀 아쉽다. 7W의 출력은 시중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보다 뛰어난 편이지만, 음질이 좋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대신 AUX 단자를 이용해 외부 스피커로 연결하거나 블루투스를 이용해 다른 리시버와 연결할 수 있다.
고급 리시버가 있다면 이렇게 들을 수 있는 점은 장점이다. 그러나 외부 스피커와 연결했을 때, 해당 스피커의 출력이 세면 위치에 따라 음성 인식률이 현저히 떨어져 버리고 만다.
집 안에서 활용하는 게 목적이므로 별도의 배터리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게 카카오의 설명이지만, 전원 플러그가 빠지면 그 즉시 움직임을 정지하는 카카오 미니는 야속하다. 모바일 기기에 범용적인 단자가 아닌 DC단자를 채택한 점도 아쉬운 부분. 케이블이 그다지 길지 않아 설치 장소에 제약이 있는 게 아쉽다.
카카오 미니의 정가는 11만9천원. 현재 멜론 가입과 연계한 상품을 판매한다. 멜론 정기 결제자에겐 4만9천원에, 멜론 신규 가입자에겐 멜론 6개월 할인 쿠폰과 함께 8만9천원에 판매 중이다.
인공지능 스피커의 한계
3종의 스피커, 그리고 2종의 인공지능을 접하면서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음성 인식에 놀라고, 아직 부족한 답변에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한국어 음성 인식은 제법 놀라운 정도다. 체감으론 90% 이상 정확히 음성을 인식했다. 간혹 에/의 같은 조사나 일부 단어를 잘못 알아듣긴 했지만, 전체적인 인식률은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주변 인공지능 스피커 이용자에게 음성 인식률을 물어보면 반응이 무척 나쁜 편이다. 짐작건대 인공지능이 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말하는 게 다른 일보다 부정적인 경험으로 남고, 이 기억만 선명히 남아서 그런 듯하다.
몇몇 참신한 기능을 체험해봤지만, 실제로 실생활에 유용하게 쓸 만한 기능이 아직 많진 않았다. 환율을 검색해보거나, 아침에 나가기 전 날씨 정도가 고작이었다. 결국, 음악을 트는 스피커로 활용하게 됐다.
카카오는 자사의 카카오 택시와 연계해 택시를 부르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기능을 추가해 O2O(Online to Offline) 기능을 강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네이버 또한 배달 음식 주문, 쇼핑, 예약 등 기능을 강화하고, 디스플레이 기능을 담은 제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동통신사의 인공지능 스피커도 조만간 새 제품을 선보일 예정인 가운데, 어떤 스피커가 더 매력적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한편으론 아직 멍청한(?) 인공지능 덕분에 역설적으로 내가 인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래서 결국 에디터는 괜찮은 스피커, 그리고 단축 번호를 눌러 바로 음악을 틀 수 있는 네이버 웨이브를 방에 들여놨다.
네이버 웨이브를 추천합니다.
– 국내 음원을 주로 듣는다면
– 집에 놓고 스피커를 옮기지 않는다면
– 제법 괜찮은 스피커를 들이고 싶다면
– 네이버 뮤직을 이용 중이라면
– 집에 IoT 기기를 이미 설치했다면
네이버 프렌즈를 추천합니다.
– 국내 음원을 주로 듣는다면
– LTE 에그, 포켓 와이파이를 휴대한다면
– 네이버 뮤직을 이용 중이라면
– 라인 캐릭터의 열렬한 팬이라면
카카오 미니를 추천합니다.
– 집에 괜찮은 스피커를 이미 갖고 있다면
– 카카오 프렌즈의 열렬한 팬이라면
– 멜론을 이용 중이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