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MDR-1000X를 판매한 직후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술이 이렇게 중독성이 강한 기술일 줄이야. 대중교통에서 느꼈던 안온함이 꿈결처럼 지나가버렸다. 다시 이런저런 통화 소리, 소음에 시달리며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MDR-1000X를 판매할 때 신제품이 나오리라는 소식을 알았고, 오래지 않아 신제품은 현실이 됐다. 무려 3가지 제품으로 등장한 것이다. 완전 무선 이어폰, 넥밴드 이어폰, 그리고 무선 헤드폰을 바라보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결국, 손에 들린 것은 헤드폰. WH-1000XM2였다.
헤드폰과의 어색한 만남
MDR-1000X를 쓰면서 헤드폰이 생활 패턴과 잘 안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눌리는 게 탐탁지 않았고, 큰 부피의 헤드폰을 착용하고 다니는 데서 오는 시선 또한 쉽게 익숙해지진 않았다. 나는 섬세하니까. 그래서 다른 형태의 제품, 특히 WF-1000X에 관심을 뒀었다.
실제로 제품을 주문하기까진 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품 품귀 사태로 제품이 들어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맞춰 새롭게 출시한 1000X 시리즈 3종을 모두 써볼 기회가 있었다. 기기의 자세한 후기는 얼리어답터에 올라온 리뷰를 참고하도록 하자.
참고 리뷰
– 기대가 큰 만큼 아쉬움도 진했다 – 소니 WF-1000X 리뷰
– 아이유처럼 목에 걸고 들을 거야 – Sony WI-1000X 리뷰
1000X 시리즈, 특히 앞서 살펴본 WF-1000X와 WI-1000X를 써보면서 구매전 제품을 써본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알았다. 이 경험을 전달하는 에디터의 역할을 다시 한번 돌아볼 정도로. 그만큼 제품을 처음 만져봤을 때와 나중의 평가가 엇갈린 게 이 두 제품이다.
가볍고, 편리하고, 머리도 눌리지 않아 만족스러웠던 첫인상의 WF-1000X는 쓰면서 잦은 연결 문제, 그리고 가격 대비 아쉬운 음질에 입맛을 다셔야 했고, ‘아재 같다’는 WI-1000X는 기대 이상의 음질과 노이즈 캔슬링 성능에 ‘합리적이다’는 생각을 했다.
연결 문제야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지만, 음악을 ‘듣는 경험’을 생각한다면 한없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기에 섣불리 추천할 수도, 그리고 덤벼볼 수도 없는 일. WF-1000X의 리뷰를 마치고 구매 취소 버튼을 조용히 눌렀다.
그리고 결국 WH-1000XM2를 다시 선택했다. 첫인상과 써본 경험이 한결같고, 여전히 강력한 기능을 갖추고 있었던 덕분이다.
여전히 헤드폰은 살짝 부담스럽다. 남들이 신경 쓰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케이스를 꺼낼 땐 살짝 위축된다. 그래도 전체적인 디자인이 아주 살짝 날렵해진 느낌도 든다. 물론 새로 주문 후엔 ‘팔았다는 그 헤드폰, 다시 샀어요?’와 같은 반응을 들었지만 말이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대부분의 설정을 헤드폰 커넥트 앱을 통해 조절할 수 있게 됐으나, WH-1000XM2는 앱 없이도 핵심적인 기능은 모두 조절할 수 있다. 디자인이 크게 바뀌지 않아 헤드폰을 만져보고 원래 쓰던 헤드폰인 듯, 바로 쓸 수 있었다.
앰비언트 사운드 버튼과 노이즈 캔슬링 버튼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버튼의 위치가 살짝 바뀌었다.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이내 손가락이 제자리를 찾았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작동하기 수월해진 느낌이다.
외부 캡이 MDR-1000X는 가죽이었으나, WH-1000XM2에서는 가죽 질감의 플라스틱 캡으로 바뀐 것도 차이점이다. 근데 이 질감이 감쪽같아서 이 사실을 듣고 놀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듣는다.
푹신한 소재, 크기를 넉넉하게 조절할 수 있는 밴드, 회전 각도가 넓은 유닛은 WH-1000XM2의 착용감을 높이는 부분이다. 전작과 같은 오버이어 방식으로 착용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음질, 그리고 노이즈 캔슬링 성능은 어떨까?
이번 1000X 시리즈에서 WH-1000XM2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시들한 편이다. MDR-1000X가 워낙 잘 나오기도 했거니와, 두 번째 버전인 WH-1000XM2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실제로 체감하기에도 그렇다. MDR-1000X가 워낙 뛰어나 더 나아졌다지만, 얼마나 나아졌는지 체감하기가 어렵다.
음색은 MDR-1000X에서 느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MDR-1000X가 인기가 좋았기에 이 흐름을 그대로 이어간 게 아닐까 싶다. 고음이 조금 화사해지고 저음의 무게감이 조금 강조됐다. 노이즈 캔슬링 성능도 마찬가지.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소음 억제 기능이 강화되진 않았다.
개인별 최적화 말고도 세부적으로 주변 대기압을 측정해 소음을 조절한다고 하니, 비행기를 타는 도중이라면 두 제품의 차이를 조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동안 비행기를 탈 일이 없으니 이 비교는 나중을 기약해봐야겠다.
aptX HD™과 LDAC 코덱을 모두 지원하는 점은 반갑다. 아직 aptX HD™을 지원하는 기기가 많진 않지만, 앞으로를 생각한다면 코덱의 범용성이 높은 편이 좋다.
WH-1000XM2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헤드폰 커넥트 앱을 통해 세부적인 설정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주변 환경을 인식해 노이즈 캔슬링 정도를 제어하는 ‘적응형 사운드’ 기능을 WH-1000XM2에서는 기꺼이 켜놔도 된다. 걸어 다닐 때, 앉을 때, 차량으로 이동할 때를 적절히 체크해 그때그때 어울리는 노이즈 캔슬링 모드로 조절한다.
여차하면 MDR-1000X부터 내려온 전매특허. 퀵 어텐션(Quick Attention) 기능을 활용하면 된다. 손바닥을 오른쪽 이어캡 위에 살짝 덮으면 주변 소리를 말끔하게 들을 수 있다. 대화가 어렵지 않을 정도다. 물론 헤드폰을 쓰다가 손바닥으로 한쪽을 가리고 대화한다는 게 정서상 어려운 일이겠지만, 주변 상황을 파악할 때 유용한 기능임은 사실이다.
그리고 배터리도 대폭 향상됐다. 무게는 275g으로 전작과 같으나 배터리 시간은 무려 10시간이 늘어난 30시간이다. 그야말로 온종일 노이즈 캔슬링과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출퇴근 시간,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할 때 듣는 정도로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충전하면 된다.
음악을 사랑해서, 난 소음을 껐어
사진을 찍으러 갈 겸, 겸사겸사 도움을 받아 WH-1000XM2의 노이즈 캔슬링 성능을 다시 체험해봤다. 길거리(실외)에서, 카페(실내)에서, 지하철(대중교통)에서의 노이즈 캔슬링이 얼마나 강력한지 비교해봤다.
스톱, 스톱, 스톱!
먼저 실외. 거듭 말하지만 실외에서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다녀선 안 된다. 어떤 사고로 이어질지 모른다. 새삼 무서움을 느꼈던 게, 뒤에서 말을 걸었는데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음악은 재생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오버이어 방식의 패시브 노이즈 캔슬링 수준부터 상당하고, 여기에 노이즈 캔슬링, 다시 한번 음악까지 재생하면 외부 소음을 정말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다.
‘뭐라고 하는 것 같긴 한데…’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옆자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려고 했다. 먼 자리에서 사람이 웅성거리는 소리는 거의 차단하나, 바로 옆자리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규칙적인 소리가 아니라 노이즈 캔슬링을 켜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결과는 실패.
음악을 끈 상태에서는 미세하게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으나 음악을 틀면 역시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테스트를 마치고 헤드폰을 벗자 쏟아지는 웅성거리는 소음에 깜짝 놀랐다. 여기, 이렇게 시끄러운 곳이었나?
지금 어느 역이라고 하셨죠?
지하철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래도 차량이 완만한 곡선 구간에서 내는 레일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안내 방송도 주의를 집중하면 ‘지금 방송이 나오고 있구나’하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나오는 소음은 종종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왔다.
하지만 정확히 지금 어디에 도착했는지 알 수 없어 외국인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려야만 했다. 헤드폰을 벗었을 때, 소리가 너무 커서 금방 다시 써야만 했다.
기자간담회에 다녀와서 1000X 시리즈를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그리고 이 영업 아닌 영업에 넘어가 주변에 WH-1000XM2를 산 사람만 다섯 명에 이른다. 그리고 전부 만족스러운 반응을 얻었다. 가격은 조금 부담스럽다고는 하지만.
WH-1000XM2는 MDR-1000X보다 소폭 기능이 향상됐으나, 출시가격은 MDR-1000X와 같은 54만9천원이다. 플래그십 제품이고 확실히 가격은 부담스러우나 만족도를 놓고 보자면 제값은 한다.
어찌보면 신제품 출시와 함께 전작인 MDR-1000X의 가격이 낮아져 MDR-1000X를 고르는 게 경제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 신제품 호기심 대문에 어떻게 해서든 써보겠다는 공언 아닌 공언을 지켰고, 한동안 이만한 만족감의 제품을 만나보진 못하리라 생각하기에 WH-1000XM2는 가끔 부끄럽지만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리뷰에 들어간 에디터의 지출
549,000원(WH-1000X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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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코드 :WH100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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