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음향 브랜드 포칼(Focal)은 하이엔드 스피커로 특히 유명한 브랜드다. 가격대가 높은 만큼 쉽게 접하기 힘든 물건이기도 하다. 업계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매우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데, 일반 대중에게도 유명해질 만한 계기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면 오디오 애호가인 모 대기업 회장님 자택의 내부가 강제로 공개 당했던(?)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던 한 스피커의 정체가 바로 포칼의 ‘유토피아’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억 단위를 호가하는 오디오 장비라는 말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고 자연스레 포칼이라는 브랜드가 더 알려지게 되었다.

 

 

어쨌든 업계 최고의 위상으로 비싸고 음질 좋은 스피커를 만드는 포칼이 작년에 하이엔드 헤드폰 3종을 출시했는데, 이게 또 마니아들 사이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는 나의 월급보다 몇 배는 더 비싼 그 헤드폰들로 음악을 들어봤다. 유토피아(Utopia), 일리어(Elear), 그리고 리슨(Listen)이라는 3가지 제품들이다.

 

 

Utopia

최고라는 말은 모두 갖고 싶어하는 듯한 욕심쟁이 헤드폰. 생긴 건 미래형 갑옷을 떠올리게 한다. 천연 양가죽과 금속, 카본 등 비싸 보이는 건 죄다 사용했고, 특히 포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역돔형 트위터는 베릴륨 소재로 만들어 넣었다. 예전에 출시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그 유토피아 스피커에 탑재된 것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하이엔드 스피커가 헤드폰으로 변신한 느낌.

 

음질과 음색은 주파수 등의 기계적인 스펙을 떠나서 브랜드의 네임 밸류나 그들 특유의 튜닝 기술력을 통해 대강 가늠을 해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가격대. 절대적이진 않지만 어떤 음질일 것이다, 라는 게 짐작이 된다. 포칼의 유토피아는 550만 원이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냥 최고다. 그동안 내 귀를 거쳐갔던 이어폰, 헤드폰들을 모두 다 쩌리로 만들어버리는 명쾌 상쾌 통쾌한 음질, 연주 공간이 확 트여있는 듯한 공간감, 오픈형이라 전혀 생각되지 않는 베이스 부스트감, 노래하다 침 튀길 것 같이 펄떡펄떡 생생하게 느껴지는 가수들의 혀 놀림, 그리고 맑은 고음역대.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이 아쉬움을 꼭 전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실제로 들어보길 간절히 권한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이게 정녕 55만 원도 아니고 550만 원이라는 초 거금까지 들여가며 손에 넣어야 할 물건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

 

오디오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다. 이 정도면 좋다 싶다가도, 더 좋은 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다른 제품을 찾아보고, 그러다 자세히 집중하지 않으면 잘 알지도 못할 것 같은 미세한 차이를 느껴보고 싶어 상위 모델에 관심이 가고, 귀는 트여가고 지갑은 얇아지고…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나는 이 헤드폰의 소유자가 아니다. 업체를 통해 대여한 것인데, 반납해야 하는 이 현실이 너무나 혐오스럽다. 괜히 귀만 높아졌다.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만 해.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사용해왔던 나의 기존 이어폰과 헤드폰들이 처량해 보인다. 그 중에 비싼 건 30만 원짜리도 있는데. 이 애타는 마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포칼 헤드폰들은 대학로 이어폰샵에 가면 직접 들어볼 수 있다. 홀리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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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1. 이 정도면 명기라는 칭호를 붙여드려야 할 것 같다.
2. 녹음 스튜디오 현장에 가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
3. 하이엔드 스피커의 DNA 그대로 헤드폰에 이식한 듯한 음질
4. 그 어떤 장르나 어떤 노래라도 좋다. 유토피아가 모조리 씹어 먹어준다. 맛있게 냠냠 듣기만 하면 된다.

 

장점
– 이걸 사면 웬만해서는 음향 리시버의 종결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확실하진 않다).
– 집에 빨리 들어가게 한다. 집에서만 들어야 하는 무거운 오픈형 헤드폰이기 때문.
– 고급 앰프 시스템과 수많은 무손실 음원이 갖춰져 있다면 금상첨화.
단점
– 적금을 들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든다.
– 이걸 사면 이제 몇 십만 원짜리는 시시하다고 느껴지게 된다.
– 혼자 조용한 곳에서 들어야 한다. 밖에서는 못 듣는다.
– 상당히 무겁다. 그리고 거대하다.
– 헤드폰을 모시며 산다는 말이 무언지 격렬하게 체감 가능.
– 6.3mm-3.5mm 어댑터 따위는 기본적으로 들어있지 않다. 앰프 같은 장비에 헤드폰을 바로 꽂을 수 있도록 기획과 설계가 되었기 때문이겠거니, 하는 짐작이다.
– 혹시나 만에 하나 파손이 되었을 때, 내부 탑재된 부품들을 함부로 만지지 말 것. 베릴륨은 원래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라 한다. 그에 반해, 재질의 특성상 음질적 측면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 음질의 극을 느끼려는 자 그 위험성을 감내하라, 이런 느낌인 듯하다.

 

 

Elear

일리어는 140만 원짜리 헤드폰이다. 유토피아를 생각하니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것 역시 크기가 거대하다. 유토피아와 비슷한 점이 많다. 오픈형에, 오버이어 형태에, 완벽한 스테레오 구현을 위해 L/R이 따로 분리된 케이블에, 길이는 3m에, 플러그는 6.3mm 규격에… 이것 역시 실내에서 앰프 등에 연결해 들어야 제 실력을 더 크게 발휘하는 그런 제품.

 

또한 유토피아의 이어패드가 가죽으로 마감된 것과 달리, 일리어는 아주 부드러운 벨벳으로 되어 있다. 유토피아가 귀에 고급스럽게 안착한다면, 일리어는 폭신하면서도 편안하게 휴식을 주는 느낌이다.

 

 

유토피아와 비슷한 점은 음질에서도 느껴진다. 넓은 공간감과 뛰어난 해상력, 그리고 자연스러운 오리지널 사운드 그대로의 음색, 무대와 악기와 각종 음향 장비에 먼지를 완전히 털어내고 뽀득뽀득 광을 낸 뒤 연주한 것 같은 상쾌함까지.

 

그런데 듣다 보니 유토피아보다는 아주 미세하게 차이가 느껴졌다. 유토피아는 조금 더 전체적으로 부드러웠다면, 일리어는 저음역이 살짝 더 강조된 느낌이 든다. 고음역대는 비슷했다. 음색 톤은 두 제품이 유사하지만, 일리어는 이퀄라이저를 V자 형으로 아주 살짝 조절한 듯하다.

 

튜닝의 차이도 있겠지만, 아마 유토피아의 내부 유닛에 베릴륨 소재가 쓰였던 대신에 일리어에는 알루미늄-마그네슘으로 제작된 드라이버가 탑재되어 소재부터 조금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헤드폰에 연결하는 케이블 커넥터가 유토피아처럼 9.5mm Lemo 규격이 아니라 일반 3.5mm인 부분도. Lemo 커넥터는 의료 장비에도 많이 쓰일 만큼 연결 안정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약하자면, 유토피아는 전체적으로 5성급 호텔이고 일리어는 4성급 호텔 같다. 둘이 서로 비슷하면서 모두 최상에 가까운 청취적 경험을 안겨주지만, 음질 측면에서 아주 미세한 차이가 존재한다.

 

Focal Elear 구매하기

 

 

특징
1.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2. 유토피아 보다는 저음역대가 조금 더 강조되고 양이 미세하게 많은 느낌.

 

장점
– 유토피아에 목이 말랐는데 감히 마실 수도 없고 어떻게든 갈증은 해소하고 싶을 때 차선책.
– 역시 집에 빨리 가고 싶어지게 만든다. 무겁고 커다란 오픈형 헤드폰이기 때문에.
단점
– 유토피아의 그늘에 조금 가리워져 있는 느낌.
– 유토피아를 먼저 청취해보고 일리어를 듣는다면 감흥이 좀 줄어들 수도 있으니 주의.
– 6.3mm-3.5mm 어댑터는 역시 들어있지 않다. 고급 앰프 최적 설계.
– 유토피아가 워낙 존재감이 짙어서 그렇지, 일리어 역시 함부로 지갑을 열어 재낄 만한 가격은 아니다.

 

 

Listen

위의 두 제품이 다른 차원 세계의 이야기 같았다면, 그런 마음을 달래줄 마지막 헤드폰. 리슨이다. 가격은 38만 원. 이 헤드폰은 모바일 기기와 함께 쓰기에 더 없이 좋은 사용성을 갖췄다. 일단 밀폐형 오버이어 형태로 외부 소리를 어느 정도 차단해준다. 밖을 돌아다니며 듣기에 충분한 기본기라는 뜻이다. 크기도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한 수준이다.

 

 

그리고 무게도 273g으로 가벼운 편이다. 이렇게 접을 수도 있다. 통화를 할 수 있는 마이크와 재생 제어를 위한 원버튼 리모컨이 탑재된 4극 플러그의 케이블. 길이도 1.4m로 적절해, 스마트폰에 꽂아 가뿐하게 들고 다니며 음악을 즐기기에 편하다.

 

 

헤드폰 왼쪽에만 플러그를 꽂는다. 꽂아서 조금 돌려주면 견고하게 결합되면서, 이동 중에 케이블이 어딘가에 걸렸을 때도 쉽게 빠지지 않아 안정적이다.

 

물론 이렇게 사용 편의성이 강조된 헤드폰이니 만큼, 위의 두 모델에 비하면 아쉬운 부분이 존재하는 게 당연지사. 디자인이 멋지고 만듦새 자체도 상당히 훌륭하지만, 주로 플라스틱 소재가 쓰였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느낌은 덜하다.

 

티타늄으로 코팅하고 마일러 시트로 제작된 40mm의 드라이버 유닛은 충분히 하이엔드를 지향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해상력과 섬세한 표현력은 뛰어나며 저음과 고음은 강조되어 있다. 그런데 모바일 사용성 강화를 통해 아웃도어에서의 활용을 더 염두에 둔 것인지, 중고음역대에 두루 걸쳐서 약간의 착색이 되어 있다. 자연스러운 느낌보다는 사운드가 더 쨍하게 들릴 수 있도록 튜닝된 것 같다. 필립스의 오픈형 스튜디오 헤드폰인 피델리오 X2에 양념이 더 발려있다는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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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1. 스마트폰에 물려서 들으며 돌아다니기 좋은 사용성.
2. 자연스러움보다는 쨍하고 찰랑이는 음색으로, 시끄러운 야외에서 더 듣기 알맞은 사운드.
3.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격대.

 

장점
– 헤드폰 3가지 중에서 간편하고 가뿐하게 이동하면서 듣기 좋다.
– 해상력이 훌륭하고 중고음역 표현이 섬세하다.
– 접을 수 있어서 보관이나 휴대에도 용이하다.
단점
– 플라스틱 소재에서 느껴지는 심미적 한계점
– 양념된 음색을 오래 들으면 귀가 다소 피곤해지는 느낌도 있다.
나는 반드시 유토피아를 살 거다. 연봉이 1억을 넘기는 그 언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