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에디터는 출근할 때마다 짐승이 된다. 대상의 본질을 모르는 무지한 존재로 짐승이 아니라, 사람에 치이며 고통받는 존재로서의 짐승이다. 매번 ‘이 고생을 하느니 자동차를 사자!’ 싶으면서도, 유지비와 주차난을 생각하며 마음을 접는다.

 

사람에 부딪히는 것도 일이지만,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리다. 차량에서 나는 소리, 그리고 사람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생각보다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8월 초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지만, 나를 위한 선물로 헤드폰을 샀다. 오랫동안 눈여겨보던, 소니 MDR-1000X가 그 주인공이다. 헤드폰을 거치할 멋진 거치대도 함께 질렀다.

 

 

MDR-1000X

MDR-1000X는 소니가 작년에 선보인 플래그십 블루투스 헤드폰이다. 가장 큰 특징은 센스 엔진(Sense Engine)을 적용한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 주변의 소리를 효과적으로 차단해주는 기능인 노이즈 캔슬링이 강조된 헤드폰이다.

 

MDR-1000X는 제품을 이미 체험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뛰어난 노이즈 캔슬링 능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플래그십다운 음질에 또 한번 놀랐다.

 

전통적으로 노이즈 캔슬링은 BOSE 제품이 유명하다. 특유의 ‘껌통’이 달린 QC20, 블루투스 이어폰인 QC30, 헤드폰 형태인 QC35까지 종류도 많고 강력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지원한다. 여기서 헤드폰인 QC35는 소니 MDR-1000X와 누가 더 낫나에 관해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한다.

 

 

어떤 헤드폰이 더 좋은지 종종 질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더 나쁜지 쉽게 결정내릴 순 없다. 음질도 착용감도 객관화시킬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화할 수 있는 지표가 하나 있다. 가격.

 

처음 출시했을 때 50만원대 중반이었던 MDR-1000X가 몇 개의 할인 이벤트를 만나더니 30만원대 중반으로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어차피 망설임은 배송을 늦출 뿐이다.

 

 

비닐을 벗기고 패키지 상자를 열면 전용 케이스와 액세서리가 들어있다. 액세서리는 딱 필요한 만큼 담겼다. AUX에 연결해 유선으로 들을 수 있는 케이블, 기내용 젠더 등이 포함됐다. 여기서 주의할 점. 비닐에 붙어있는 정품 스티커는 꼭 떼어서 보관하자.

 

영수증에 정품 스티커를 붙여야만 정상적인 AS를 받을 수 있다. 선물을 받았다 한들 영수증까지 받지 못했다면 AS를 받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유의하자. 영수증을 신주단지 모시듯 보관해야 하는 건 여러모로 번거로운 일이다.

 

 

헤드폰은 제법 크다. 귀를 완전히 덮는 오버이어 방식으로 푹신한 재질이 귀를 감싸 편안한 착용감을 갖췄다. 헤드는 자유롭게 돌아가고, 밴드 부분의 크기 조절도 지원해 두상에 알맞게 착용할 수 있다. 안경을 끼고 있지만 오래 들어도 불편하다는 느낌이 덜했다.

 

 

왼쪽 헤드에는 전원, 앰비언트 사운드, 노이즈 캔슬링 조작 버튼이 있다. 헤드에는 NFC 태그도 있어 NFC를 지원하는 기기라면 별도의 페어링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연결할 수 있다.

 

오른쪽 헤드에는 마이크로 5핀 충전단자를 빼면 아무 것도 없는데, 대신 헤드에 터치 센서가 있어 터치를 이용해 기기를 조작할 수 있다. 가운데를 누르면 재생/일시정지, 위아래로 쓸면 음량 조절, 좌우로 쓸면 곡선택과 같은 방식이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헤드를 감싸면 퀵 어텐션(Quick Attention)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잠시 중단하고 외부 소리를 듣는 기능이다. 외부 상황을 확인해야 할 때, 헤드폰을 벗지 않고도 들을 수 있다.

 

 

시끄러운 일상의 스위치를 내리다.

MDR-1000X를 쓰고 전원을 켰다. 단박에 주변이 잠잠해졌다. 여기에 음악까지 틀면 주변 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다. 원래 오버헤드 헤드폰의 차음력에 노이즈 캔슬링을 더하니 주변의 소리를 끈 듯 고요하다.

 

안경을 끼고 있어 헤드폰과 외부와 틈이 생기긴 했지만, 노이즈 캔슬링 버튼을 길게 눌러 개인에게 맞게 노이즈 캔슬링을 조절하면 이마저도 해결할 수 있다.

 

 

음악을 듣는 도중 앰비언트 사운드(Ambient Sound) 버튼을 누르면 노이즈 캔슬링 모드를 조절할 수 있다. 주변 소리를 모두 들려주는 노멀 모드, 주변 소리는 줄이면서도 사람 목소리는 들을 수 있는 보이스 모드 두가지가 준비돼 있다.

 

전자는 주변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으나 마이크를 통해 헤드폰으로 주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드다 보니 음색이 약간 왜곡된다. 하지만, 주변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점은 장점이다. 후자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안내 방송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사람의 보조를 받아 MDR-1000X를 켠 채로 길을 걷고 대중 교통을 이용해봤다. 노이즈 캔슬링을 켠 채로 길을 걷는 것은 사고 위험이 있으니 절대로 따라하지 말자. 어느 정도의 소음을 차단할 수 있는지 실험 차원에서 도움을 받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우선 길거리에서는 차 소리마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간혹 들리는 오토바이같은 고주파 소리는 들렸지만, 이마저도 음악을 틀면 소리의 흔적만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약간 뭉게진 느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음의 여성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는 편.

 

 

버스와 지하철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커브 구간에서 차가 움직이는 소리 정도만 들을 수 있고 다른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가끔씩 궁금한 마음에 헤드폰을 살짝 들면 주변의 소리가 무섭게 귀롤 쏟아져 들어왔다. 주변의 소리가 공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는 타지 못했지만, 단순한 패턴의 소음을 효과적으로 잡아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행기 엔진음은 효과적으로 차단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비행기를 타다 보면 소음 때문에 귀마개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럴 때 MDR-1000X는 효과적일 듯 싶다. 괜히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 여행의 동반자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닐 테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에디터가 MDR-1000X의 소리를 평가할 정도로 귀가 트이지 않았음을. 하지만 이 못난 귀로도 MDR-1000X의 음질은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이라는 사실 또한 알았다. 그리고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능을 담았기에, 음질에 무게를 둔 이전 세대 제품인 MDR-1ABT과 비교하면 MDR-1000X가 아주 살짝 못 미치는 점 또한 알았다.

 

만약 MDR-1000X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음질이라면, 단순히 음악 감상용으로 제작된 헤드폰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사실은 알고 있었다. MDR-1000X의 거대한 유닛이, 착용자를 요다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8월, 여름의 끝자락. 지하철에서 헤드폰을 쓸 때마다 주변에서 에디터를 수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는 사실을. 그리고 부드러운 밴드는 조금은 덜하지만, 역시 머리 스타일을 무지막지하게 눌러버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차피 부끄러움은 보는 사람의 몫이고, MDR-1000X를 쓴 모습을 보는 것은 내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다. 라고 다짐했지만, 내심 전철에서 케이스를 꺼낼 때마다 심호흡을 하고 꺼낸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푹신한 쿠션이 안경을 써도 괜찮다는 것도 알았지만, 오래 쓰다 보면 결국 다리에 귀가 눌리는 건 마찬가지라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이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MDR-1000X가 가격이 무섭게 내려가는 게 새로운 제품을 앞두고 있음을. 소니는 매년 9월 IFA를 전후해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고, 8월에 가격이 내려가는 건 재고를 없애기 위한 마케팅 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 IFA2017에서 소니는 1000X라인업으로 내세운 다양한 노이즈 캔슬링 제품을 선보였다. 헤드폰, 블루투스 이어폰, 완전 무선 이어폰까지.

 

마지막으로 이 사실도 알았다. 에디터의 재정은 넉넉치 않음을. 새로운 제품을 사기엔 능력이 모자르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럼에도 신제품의 호기심 때문에 새 제품을 어떻게 해서든 써볼 것이라는 사실 또한 말이다.

 

 

그래서 결국 2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좋은 가격으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했다. 새로운 헤드폰을 고를지 블루투스 이어폰을 고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으나, 곧이어 새로운 노이즈 캔슬링과 함께 들어오겠다. 당분간은 지하철에서 위험한 짐승이 되겠다. 쉬익쉬익.

 

 

리뷰에 들어간 에디터의 지출
355,110원(MDR-1000X) + 49,000원(엘라고 H Stand) – 330,000원(중고 판매) = 74,110원
노이즈 캔슬링만 놓고 보면, 이만한 헤드폰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