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모어(1MORE)의 이어폰을 처음 만났을 때, 그 데면데면했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샤오미라는 분위기 메이커 친구에게 소개받은 모범생 같았다고 할까. 분명 좋은 능력을 갖고 있는 녀석이었지만 무언가 2% 부족한 매력에 딱히 자주 연락할 마음은 들지 않는 그런 느낌. 그랬던 녀석이 이리저리 변신을 시도하면서 내 마음을 두드리더니, 이번에는 초심으로 돌아와 더 멋진 스펙을 만들어서 의기양양하게 내 앞에 나타났다. 이름은 E1010.

 

 

원모어의 새 이어폰인 E1010은 쿼드 드라이버(Quad Driver)를 탑재했다. 드라이버 3개가 들어있던 지난 버전에 또 하나의 드라이버를 더해 4개가 들어간 제품이라는 뜻이다. 3개가 트리플, 4개라서 쿼드다. 드라이버는 이어폰에서 소리를 내는 파트다. 이 부분의 개수나 퀄리티에 따라서 음질은 확확 달라진다. 4개라니까 음질이 더 좋아졌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긴다.

 

 

4개의 드라이버는 종류에 따라서 또 다시 나눠진다. 베이스의 풍성함을 맡는 다이나믹 드라이버(Dynamic Driver;DD) 1개, 그리고 고음을 세밀하고 깨끗하게 표현하는 밸런스드 아마추어(Balanced Armature;BA) 3개로 말이다. BA가 많이 들어갈수록 기술적으로도, 사운드 튜닝 측면으로도 만들기 어려워지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이런 이어폰은 대체로 비싸다.

 

20만원선인 E1010도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저렴한 이어폰은 아니다. 하지만 4개의 드라이버를 집어넣고 소리를 이렇게 멋지게 튜닝한 기술력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다. 20만원대의 다른 이어폰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 나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 녀석, 그 동안 정말 많이 노력했구나.

 

 

지금껏 들어봤던 1MORE의 이어폰 중에서는 가장 좋은 음질이라 말하고 싶다. 1MORE 특유의 살짝 도톰한 사운드 톤은 여전한 가운데, 베이스가 굉장히 명확하게 분리되어 들린다. 둥둥 울리면서도 다른 소리들을 잡아먹지 않고, 저기로 한 발짝 떨어져서 맛깔난 음악을 만들어준다. 저음이 풍성하면 음악을 듣는 맛이 살아나지만 조금만 심하게 웅웅거리면 거북하기만 한데, 다행히도 굉장히 깨끗하게 재생한다. MUSE의 ‘Hysteria’라는 곡을 예로 들면, 토할 것 같이 어지러운 베이스 라인을 가진 곡이지만 이펙터 사운드를 먹인 그 특유의 베이스 소리를 잘 살리면서도 부부부부 부부붕붕하는 멋진 울림을 들려준다.

 

그리고 3개의 BA드라이버 덕분인지 목소리와 심벌 등의 소리도 뾰족하고 맑게 다듬어준다. 생각나는 노래는 박혜경의 ‘Yesterday’. 겹겹이 쌓인 상큼한 어쿠스틱 기타와 박혜경의 깨끗한 가성으로 상쾌한 봄의 아침이 생각나는 이 노래의 매력을 완벽하게 살려준다. 이렇게 작은 부분도 미세하게 표현하는 특성 덕분에 모던 재즈 쿼텟의 연주와도 무척 잘 어울린다. 부궁궁궁 푸근한 더블 베이스와 스믓챡 스믓챡 쫄깃한 드럼, 그리고 도롱동동 영롱한 비브라폰의 울림은 연못처럼 고요한 마음에 오랫동안 일렁이는 파장을 만든다.

 

 

다양한 악기 소리가 서로 겹치지 않도록 훌륭하게 분리해서 풍성하게 들려주는 이 감동.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좌/우로 함께 느껴지는 공간감과 입체감이 살짝 약하다는 것이다. 무대의 넓이가 약간 좁게 만들어진 것 같다는 뜻인데,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KBS 홀이 아닌 대학로 지하 소극장에서 진행되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해상력이 높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20Hz에서부터 40kHz의 음역대 주파수 범위는 Hi-Resolution 고음질 음원 재생에도 충분한 실력을 발휘한다. 이는 인간이 실제로 들을 수 있는 가청 범위를 넘어선 것이긴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약간의 믿음을 더하면서 들으면 어렵지 않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음질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리저리 생김새를 살펴본다. 이전 모델보다 오히려 작아진 유닛 크기에, 금속과 레드 컬러의 조합이 멋지다. 제트 엔진도 닮았고, 어쩐지 아이언맨이 생각나기도 한다. 모던하고 심플한 맛은 없지만 개성적이다. 서로 부딪힐 때 짤그락 짤그락하는 효과음을 듣는 것도 묘하게 기분이 좋다.

 

 

귀에 꽂아도, 보기에 크게 이상하지 않다. 다행이다. 45도 각도로 틀어져 있는 구조 덕분인지 착용감도 편안하다. 바깥의 소음도 잘 막아준다.

 

 

케이블이 독특하다. 조금 빳빳한 느낌이다. 재질은 케블라 섬유. 선이 살짝 비치는 어두운 컬러다. 일반적인 이어폰들보다는 고급스럽다. 옅은 톤의 블랙 스타킹이 생각나기도 하고. 주머니에 막 넣고 다녀도 쉽게 꼬이지 않고, 금세 풀 수 있다.

 

리모컨에는 3개의 버튼이 있고, 재생/정지는 오목하고 볼륨 조절은 볼록하게 튀어 나와있다. 만듦새도 뛰어나다. 마이크도 들어있어서 통화도 할 수 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 모두에 잘 작동하니 스마트폰으로 간편히 고음질 음악을 즐길 때 제격이다. 사실, 프리미엄 이어폰일수록 리모컨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 작은 부분에서도 음질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E1010에는 리모컨이 들어있음에도 이렇게 깊은 음질을 들려준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나일론 바람막이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을 때다. 옷에 케이블이 툭툭 부딪히며 터치노이즈가 조금씩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키지에 케이블 클립이 들어 있나 보다.

 

패키지는 여전히 풍성하고 독특하다. 여러 크기의 실리콘팁에 폼팁까지 마련되어 있다. 누가 나에게 선물해 준다면 3개월 동안은 매일 같이 감명받으며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종합해보면, 원모어의 이 새로운 커널형 이어폰 E1010은 20만원선이라는 가격에 비해 상당한 스펙을 갖췄고 그 능력에 어울리는 고음질을 충실하게 구현해주는 멋진 녀석이라고 할 수 있다. 번들 이어폰을 확실하게 벗어나고픈 이에게, 그리고 원모어의 진가를 느끼고픈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장점
– 음역대를 고루 발전시키는 파워풀한 능력
– 고음질 플레이어부터 스마트폰까지 잘 어울리는 범용성
– 잘 꼬이지 않고 쉽게 풀 수 있는 케이블
– 안정적인 착용감
– 패키지의 다양한 구성품
단점
– 옷의 재질에 따라 터치노이즈가 발생한다.
미래적 디자인
풍부한 음질
안정적인 착용감
튼튼한 케이블
언제나 든든한 패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