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JI / 벽걸이형 CD 플레이어

벽에 걸린 환풍기. 무심코 줄을 당기니 시원한 공기 대신 상쾌한 음악이 나온다. 자세히 보니 환풍기 날개 대신 CD가 돌아가고 있다. 무지(MUJI)의 대표적인 아이템, 벽걸이형 CD플레이어다.

 

벽걸이형 CD플레이어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이것을 디자인한 사람이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슈퍼 노멀(Super Normal)’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그런 디자인이다.

 

 

pmz_2이 디자인 철학은 그가 제안한 브랜드인 플러스마이너스제로(±0)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적당한 그것’을 추구하는 브랜드로 도구와 생활의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추구하고, 디자인한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는 일본의 완구제조업체인 타카라와 출판사인 다이아몬드, 그리고 산업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의 합작 프로젝트로 실현된 브랜드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를 설명하기 위해선 제안자인 후카사와 나오토를 빼놓을 수 없다.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

 

후카사와 나오토는 1956년 출생해 1988년 세이코 엡슨 주식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재직 후 IDEO의 전신인 ID TWO에 입사한다. 이후 일본 IDEO 지사 설립을 도운 후, 2003년 1월 독립. 도쿄에 ‘후카사와 나오토 디자인’을 설립하고 MUJI의 자문위원으로 합류한다.

 

그의 디자인을 단순히 심플, 혹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디자인 기저에 ‘생각 없이(Without Thought)’라는 가치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라는 것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관찰하는 데서부터 디자인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 Fukasawa Naoto / Umbrella

작은 우산을 보자. 다른 우산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손잡이 끝이 오목하게 들어갔다는 정도. 이 홈은 무엇을 하는 용도일까? 바로 가방과 같은 짐을 걸어두는 곳이다.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으레 가방을 손잡이에 거는 모습을 보고 착안한 것. 그가 사람의 행동을 꾸준히 관찰하고 이를 디자인에 적용한 것이다.

 

 

© Fukasawa Naoto / A light with Stand

또 다른 디자인인 스탠드도 마찬가지다. 다른 스탠드와 다른 점은 밑판이 살짝 오목하게 파여 그릇과 같다는 점. 잠들기 전 머리맡에 시계나 안경 같은 소지품을 더듬거리며 올려놓는다는 사실을 관찰한 결과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0)

 

그가 제안한 브랜드인 플러스마이너스제로(±0)는 사물을 분류하는 기준에서부터 다른 노선을 걷는다. 가전제품과 생활용품과 같은 제품 카테고리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 ‘생활의 한 도구’로 본다. 그러므로 가전이면 가전만, 잡화면 잡화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삶과 소통하는 부분으로 본다. 이 도구와 생활의 조화를 디자인하는 게 플러스마이너스제로가 추구하는 디자인이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의 최초 테마는 프로덕트 아트(Product Art)였다. ‘갖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막상 사려고 하면 사고 싶은 게 보이지 않는다’는 경험을 넘어 본능적으로 제품 자체에 감동할 수 있는 디자인. 그런 디자인을 갖추도록 노력한 상품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pmz_5이후 플러스마이너스제로는 2009년 후카사와 나오토와 결별했다. 이후에는 스타 디자이너 개인의 결과물이 아닌 여러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감각적이고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한다. 그러면서도 플러스마이너스제로 디자인에 깔린 사람을 관찰하고 도구와 생활의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대로 흔들림없이 중용을 지키고 싶다는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사람을 관찰하고 조화를 디자인하는 이 예리한 미니멀리스트 집단. 이들의 디자인은 플러스마이너스제로를 일본의 인기 가전 브랜드로 만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본에 충실하고 넘치지 않는 디자인을 선보일 것이다.

 

 

 

눈여겨볼 만한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제품 Best3

 

플러스마이너스에서 내놓은 제품 중 도구와 생활의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오롯이 갖춘 몇 가지 눈여겨볼 만한 제품을 찾아보자.

 

 

pmz_61.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청소기

어디에 둬도 어울리는 간결한 디자인이 특징인 청소기.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외곽선, 한 점의 티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깔끔한 색상이 조화를 이룬다. 청소기가 아니라 소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예쁜 청소기다. 쓰는 방법에 따라 어떻게 쥐더라도 편안함을 느끼는 손잡이는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청소기 디자인의 백미.

 

그러면서도 청소기가 갖춰야 할 모든 기능을 갖췄다. 일반 모터보다 8배가량 긴 수명을 갖춘 BLDC 모터를 채택해 견고한 내구성을 자랑하고, 금속 브러시가 없어 청소기에서 브러시 마모로 생기는 금속성 미세먼지가 발생하지 않는다. 최대 70분 동안 쓸 수 있는 무선 배터리, 한 손으로도 충분히 청소할 수 있는 1.3kg의 무게는 청소기 본질을 놓치지 않은 탄탄한 기본기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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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스팀 가습기

도넛 모양의 스팀 가습기. 어디에 두더라도 예쁜 스팀 가습기는 가운데 움푹하게 파인 부분에 아로마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리면 디퓨저로 쓸 수 있다. 파인 부분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아로마 오일을 머금고 공간을 아로마 색상으로 물들인다.

 

디자인에 아무런 설명이 없지만, 직관적으로 쓰임새를 알 수 있는 후카사와 나오토의 디자인 철학이 그대로 묻어났다. 물론, 가습기 자체 기능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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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러스마이너스제로 계산기

책상 위에 가만히 두면 그저 인테리어 소품으로 보일 정도로 작고 앙증맞은 디자인을 갖췄다. 책상 위에서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예쁜 색도 대표적인 특징이다.

 

패널 부분이 살짝 휘어져 책상 위에서도 계산 결과를 쉽게 볼 수 있고, 버튼마다 같은 디자인, 복잡한 요소를 줄이고 같은 색상을 입히면서도 숫자와 기호는 분명히 구분되도록 시인성을 고려한 점. %, 세금 계산, 메모리 기능 등 일상생활을 넘어서 업무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폭넓은 기능은 계산기의 본질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존재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미니멀리스트를 위한 브랜드
박병호
테크와 브랜드를 공부하며 글을 씁니다. 가끔은 돈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