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제품이 출시되면 가장 먼저 경험해보고, 그 제품에 대한 이야기나 의견을 빠르게 알리는 얼리어답터. 쉴 새 없이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런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에야 누구나 다 얼리어답터지만 처음 얼리어답터라는 말이 처음 쓰이던 당시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리 길지 않은 역사라고는 하지만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뒤늦게 얼리어답터 반열에 합류한 우리가 그런 역사를 자세히 알기는 힘든 만큼, 선배뻘인 초기 얼리어답터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 당시의 분위기와 히스토리를 전해 듣는 것도 즐겁지만, 무엇보다 그런 시대를 거친 그들이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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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얼리어답터의 인터뷰 레이더망에 여섯 번째로 포착된 이는, 사진 분야에서 국내외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KDK, 김도균 작가다. 지난 인터뷰이였던 조현경 대표의 절친답게 초창기 얼리어답터 시절을 지내며 사진에 대한 꿈을 키웠고 그 분야에서 자리잡은 지금은 조금 더 성숙한 얼리어답터로서의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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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의 이름과 본인의 이름을 따서 ㅋㅋㄹㅋㄷㅋ라 이름 붙인 작업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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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성수동 그의 작업실. 건물 밖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아늑하고도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는데 건축가인 친누나와 함께 직접 하나하나 만들어낸 공간이라고 했다. 곳곳에 그의 작품을 활용해 만든 가구와 액자도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 몫 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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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만남에도 그다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덕분에 나도 모르게 대뜸 본인 소개를 청하며 인터뷰를 시작했고, 조금은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본인을 ‘사진 찍는 사람’이라 소개한 그는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술술 털어놓았다.

 

그는 ‘소나무’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의 제자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던 그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며 배병우 교수와 연을 맺었고, 3년간 어시스트로 일하며 사진에 대한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졌다. 그러다 독일로 넘어가 배움의 길을 이어나갔는데 도제식인 그곳의 학업 스타일 덕분에 세계적인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를 사사하며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해 더욱 체계적으로 배우며 공부하고 작업했다고 한다. 다른 곳도 많은데 왜 그는 독일을 택했을까.

 

 

모든 업계마다 앞서가는 나라가 있잖아요. 물론 미국도 유명했지만 전 독일이 사진에 있어 매우 탄탄한 나라라고 생각을 했고, 독일풍의 사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느낌이 좋았어요. 몰랐는데 가보니 학비도 없더라고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저에게는 최고의 선택이 되었죠.

 

 

Q. 독일풍 사진이라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정서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딱딱함과 ‘이게 뭐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심심하고 모호한 느낌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도, 배병우 교수님 밑에서 일할 때 제 마음을 빼앗았던 책도 대부분 독일풍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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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독일풍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감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늘 우리가 생활하는 가까이에서 보아오던 공간이나 사물의 모습이 전혀 다른 시선으로,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때로는 한쪽 벽 귀퉁이가 작은 상자의 모서리처럼, 작은 상자 속 틈새가 거대한 건축물처럼,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도 그것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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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균 작가의 P시리즈 중 한 점.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한 점이 돋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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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전시를 할 때에도 전시장 내부의 공간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기획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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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사진이라는 것이 길을 걷다 우연히 멋진 것이 보일 때 마다 찍는 게 아니거든요. 물론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살펴보고 관찰하기 위해서 많이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영감이라는 것은 ‘이런 것도 있구나’라는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것 모두 포함될 수 있겠죠. 그리고 특별히 ‘이 작업은 꼭 해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진행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무엇을 쥐어짜내기 보다는 제 관심사에서부터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가지치기를 하면서 진행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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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그와 함께하는 린호프 마스터 테크니카 클래식 –

Q. 작가님은 어떤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실지 정말 궁금해요.

거의 모든 사진을 Linhof Master Technika Classic 대형카메라로 찍습니다. 매일 가지고 다녀요. 완전히 접으면 철제 도시락처럼 변해서 크게 불편함도 없죠. 20년 전 제 손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까지 쭉 쓰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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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마자 신고식을 제대로 했다는 그의 첫 DLSR 카메라, 니콘 D810 –

작년에는 첫 DSLR 카메라로 니콘 D810을 장만했어요.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암스테르담에서 도둑맞았다 찾은 일화도 있지만 첫 디지털 작업을 무사히 마쳤죠. 요즘 디지털 시대의 얼리어답터라면 온갖 최첨단 장비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전 사진하는 사람치고 장비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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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KDK 김도균 작가의 lu 시리즈 작품 –

 

 

Q. 상당한 얼리어답터라고 들었어요.

단지 제가 좋아하는 분야나 제 생활에 밀접한 제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질 뿐이에요. 그리고 관상용 제품이 아닌, 진짜로 사용할 제품만 구매하죠. 자꾸 보고 관심 가지다 보니 보는 눈도 생기더라고요. 지금 앉아있는 의자도 세계적인 건축가 에곤 아이어만이 만든 의자인데 독일 유학시절 벼룩 시장에서 5개를 2만원 정도에 샀어요. 아는 사람들은 절대 그 가격에 못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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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책상 위에서 더욱 빛나던 Kaiser Idell Lamp –

조명도 화려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LED 조명보다 훨씬 멋스러워 선택한 카이저 이델 램프도 같은 맥락이고요. 그냥 제 취향에 맞춰 사다 보니 사람들이 얼리어답터라고 부르더라고요.

 

 

Q. 아주 오래 되었음에도 지금과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 많은 것 같아요.

대부분의 작업을 아날로그로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속한 시대는 완전히 디지털로 넘어온 시대죠. 이런 상황에서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점점 커졌고 그런 것들이 제가 좋아하는 아이템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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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작업을 할 때 김도균 작가가 늘 사용한다는 BENQ 모니터 –

작품 활동과 관련해서도 Re-Analog적인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아날로그 인화로,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디지털 기기로 프린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어요. 말하자면 그레인을 픽셀로, 픽셀을 그레인으로 만든 것이죠. 지금까지 이런 프로세스는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BENQ 모니터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줬어요. 특히 버튼 하나 만으로 흑백사진으로 만들거나 내가 설정해놓은 프로파일로 간편하게 바꿔주는 기능은 정말 뛰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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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질감과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W시리즈 중 두 점. 더 많은 작품은 그의 홈페이지에서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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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포토샵이라고는 사용해본 적도 없고, 디지털로 진행되는 수업이 싫어 휴학을 할 정도로 디지털을 싫어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양분하는 것은 현 시대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더라고요. 화가가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포토샵이라는 붓을 쓸 뿐이라 생각해요. 개인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이제 그런 것들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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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제가 좋아하는 게 은근 많아요. 가구, 자전거, 보드도 좋아하고 안경도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마이키타 (MYKITA)라는, ‘나의 유치원 시절 놀이터’라는 귀여운 의미를 가진 독일 안경 브랜드가 눈에 들어오네요. 그리고 소소하게 연필도 수집하고 있어요. 전문적으로 수집하시는 분들에 비할 수는 없지만 꽤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모았네요. 이제는 친구들도 특이한 연필만 보면 선물해주고 있어서 더 소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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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또 좋아하는 것 중에 (요즘엔 유명해져서 많이 볼 수 있지만) 폴라로이드 카메라 SX-70이 있어요. 폴라로이드에는 임파서블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폴라로이드라는 회사가 망하자 아쉬움에 마니아가 회사를 인수하고 다시 재현해내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죠. 이러한 움직임 또한 제가 생각하는 Re-Analog와 같은 차원이라고 생각을 해요. 폴라로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같이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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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얼리어답터라는 매체를 알고 계셨나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럼요. 당연히 진작부터 알고 있었죠. 글도 주제도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 자주 봤었어요. 뭔가 관심 있는 아이템이 생겼을 때 바로 사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고, 정보를 얻고 싶을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기에 이런 매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어느 곳에 가던지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분위기 메이커가 매우 중요한데 바로 그런 역할을 얼리어답터가 해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Q. 얼리어답터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세요.

요즘은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 되는 세상이잖아요. 하지만 딱딱 맞아 떨어지고 정확한 디지털의 이점은 취하더라도 속으로는 말랑말랑하고 여유도 있고 삐걱거릴 수 있는 그런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계속 간직해주셨으면 해요. 표리부동한 삶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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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고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그리움과 그런 감성을 지금의 디지털 문화에 조화롭게 녹이고자 하는 노력이 그대로 느껴졌던 김도균 작가와의 인터뷰! 어쩌면 날카롭고 차가운 디지털 감성에 더 익숙해 더 진보한 기술,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디자인만 찾으려는 우리 후배 얼리어답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뜨거운 가슴과 열정이 있기에 지금의 현재가 있고, 과거라는 아름다운 역사가 만들어졌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김태연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할 제품들을 쏙쏙 골라 소개하는 친절한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