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부터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실시된다. 한가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완전히 없던 법이 아니다. 기존에도 도서정가제가 있었다. 기존에는 출간 18개월 미만의 신간도서는 19%까지 할인이 가능했다. 18개월이 지난 책에 대해서는 큰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도서정가제는 신구간 상관없이 10%의 할인과 5%의 마일리지 적립만 가능하다. 즉, 최대 15%의 할인만 공통 적용된다. 언뜻 누구를 위한 법인지 알 수 없다.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무엇을 바꾸고, 과연 효과적인 법인지를 알아보자.

book_02

1. 누구를 위한 법일까?

우선 행정부에서는 이 법안이 중소형 서점에게 도움이 될 거라 주장한다. 그러나 기존 도서정가제도 중소형 서점을 위한 법안이었다. 예스24나 알라딘 등이 생겼을 초창기에 온라인 서점이 할인 경쟁을 하자 중소형 서점이 고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의 할인만 가능하도록 만든 법안이었다. 그러나 그걸로도 동네서점은 절반 이상 줄어들어 1,600개(2014년 기준) 정도만 남을 정도로 몰락했다. 그래서 이번에 결정한 수치는 15%. 그러나 이 법안 역시 여전히 동네 서점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동네서점은 5% 정도의 가격할인의 여지밖에 없지만 그에 비해 인터넷 서점은 15% 할인에 무료 배송, 거기에 카드사 연계할인까지 하면 최대 25%의 할인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예외사항을 또 두면 가격만 어설프게 오르는 법이 될 수 밖에 없다.

 

2. 한국만 있는 법일까?

book_03

프랑스도 비슷한 도서정가제가 있었고, 2014년 7월부터는 더 강력한 속칭 ‘반아마존법’을 통해 도서 정가의 5% 이내에서 할인만 가능하고, 무료배송은 완전히 금지시켰다. 이 법안 이후로 프랑스의 일반 서점의 책값은 온라인서점에 비해 더 저렴해 졌다. 같은 5%를 할인하더라도 온라인서점은 배송비를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이처럼 극단적인 방법으로 동네서점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한국의 도서정가제는 동네서점도 살리지 못하고, 책값만 약 4%정도 올리게 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출판문화진흥원에서는 새로운 도서정가제 이후에 책 1권당 가격이 220원씩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3. 비정상적인 책 가격이 정상화 될까?

기존의 도서정가제는 결과적으로 역효과를 일으켰다. 기존에 8천원 하던 책들도 1만원 이상은 무료배송인 온라인서점의 정책에 따라 가격을 모두 1만원대로 올려 버렸다. 어차피 8천원에 배송비를 더하나, 1만원에 무료배송이나 소비자 부담은 같기 때문이다.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할인율을 제한하면서 비정상적으로 높던 책 가격을 출판사 스스로 낮추기를 기대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데자뷰다. 단통법이다. 이런 순진한 상상은 출판사나 유통사의 모든 구성원이 도덕적이고 착한 기업일 때 가능한 얘기다. 우리나라 입안자들은 맹자의 가르침을 너무 순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유치원을 1시간만 견학하기 바란다.

 

4. 소비자에게 피해가 있을까?

우선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할 때, 4%가 오르게 되어 기본적으로 부담이 늘어난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18개월이 지난 도서와 실용서, 초등학생용 참고서는 무제한 할인이 가능했다. 그러나 새로운 도서정가제는 예외 항목이 없다. 따라서 여행자들(여행 활용서, 가이드북)과 취미용 실용서 등은 돈을 더 주고 구입해야 한다.
학부모에게도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초등학생용 참고서 가격도 할인율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참고서의 정가가 낮아지면 해결될 일이지만 시행초기에는 제 값을 다 줘야 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출판사 수익이 낮아져서 또 변칙적인 할인이 시작되겠지만 먼저 산 사람은 여전히 ‘호갱’이 될 수 있다.

 

5. 정가가 더 낮아지면 해결될까?

ds_01
이미지 캡쳐 : SNL코리아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신간 발행 부수는 8천 6백만부다. 언뜻 많아 보이지만 국민 한 명당 2권이 안 되는 숫자다. 2007년까지는 판매부수가 1억부가 넘었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책이 비싸서 안 읽기 보다는 책을 읽을 필요성이 없어서 안 읽는다는 말이 맞다. 책에 쓰인 대로 살면, 교활한 대한민국에서는 노예가 되거나(아프니까 청춘이다.) 순진한 바보(정의란 무엇인가?)가 되기 쉬우니까. 또, 앞으로도 책 읽을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일은 덜 하면서 월급만 많이 받는 파렴치니까 앞으로도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 (참고 :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인들 일은 덜하면서 월급만 많이 받아)
책의 판매량이 그다지 늘지 않는 상태에서 만약 지금보다 정가가 더 낮아지면 출판업계의 수익률은 더 악화될 것이다. 따라서 출판사들은 일부 오래된 서적을 제외하고 정가를 낮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6. 도서정가제 이전의 마지막 세일로 책을 사야 할까?

현재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는 21일 이전에 각 인터넷 서점은 재고떨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때를 이용하면 저렴하게 책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재고가 전부 소진되면 새로운 판형부터는 가격을 새롭게 매겨서 ‘정상적인’ 가격에 판매가 가능하다. 따라서 정가가 낮아지는 책은 지금 힘들게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21일 이후에 정가가 낮아지는 책은 다음 사이트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http://www.kpipa.or.kr/reprice/main/main.do#
아직 이 리스트에 오르지 않았더라도 2년 이상 지난 오래된 서적은 가격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고전이나 유명한 서적이 아닌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는 책들은 새로운 판을 찍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지금 사는 게 최선이다.

 

7. 그래도 싸게 사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book_01

책의 정가가 바뀌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패밀리 세일이나 일시적 할인, 이벤트도 모두 금지다. 단통법처럼 스팟으로 구입한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 보내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15%가 넘는 할인은 원칙적으로 모두 금지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카드사 연계할인이나 배송료 등은 조항에 빠져 있기 때문에 대형 온라인 서점들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따라서 새로운 도서정가제는 출판사와 대형 온라인 서점등에서는 적잖이 반기는 눈치다.

 

8. 그럼 또 대기업을 위한 조치인가?

yes
인터넷 서점 1위. 예스24의 최근 3개월 주가추이

뺏기니까 한국시민이다.
물론 도서정가제의 취지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따라하려면 제대로 따라해야 한다. 어설프게 따라하면서 주저리주저리 의견을 듣다보면 목소리가 크거나 힘을 가진 이들의 의지가 개입되고, 마지막에는 누더기가 된 법에서 강한자만이 살아 남는다. 결과적으로는 일반 소비자들과 동네서점에게 해가 되는 조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철
레트로 제품을 사랑합니다. xanadu7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