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사용자는 2014년 6월 기준, 13억 2천만 명을 돌파했다. 이미 인도를 넘어섰고, 중국의 13억 5천만 명에 근접했다. 중국이 페이스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인구 1위의 타이틀을 빼앗기지 않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페이스북은 온라인상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새로운 신세계를 만들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언어조차도 기존 언어와는 다르다. (페이스북은 FBML : FaceBook Markup Language라는 고유의 개발자 언어를 써야만 한다.) 사이버상의 완전히 새로운 제국. 21세기의 중간계를 꿈꾸는 환상의 제국. 잠깐 하던 업무를 멈추고 페이스북에 대해 성찰해 보자. 이 정도 시간은 애덤스미스도 용서할 거다.

 

페이스북은 신세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Duncan-Hull-CC-BY
Duncan Hull, CC BY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 때문이다. 그리고, 민노씨가 느끼는 페이스북에 대한 불만과 불안함은 충분히 공감된다. (슬로우 뉴스 – 페이스북, ‘좋아요’만 있는 멋진 신세계)
페이스북이 제공하지 않는 검색기능, 규격화된 UI, 획일화, 슬로우뉴스가 2년째 찾고 있는 ‘싫어요’ 버튼, 그들에게 페이스북은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세계도 마찬가지다. 추악한 정치가들, 전쟁, 산불, 기근, 굶주림, 전염병, 질병, 고통. 아무리 ‘싫어요’라고 외쳐도 변하지 않는 현실 세계. 이해가 가는가?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싫어요’가 거세된 페이스북은 현실을 모방했지만 보다 긍정적인 복제의 세계다. 페이스북은 타임라인과 ‘하이라이트’라는 큐레이션 시스템을 활용하여 의도적으로 현실의 이야기에 집중시킨다. 그러나 나는 프랑스 철학자가 경고했던, 사유가 멈추고 시간이 소멸된 세계의 발현을 페이스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얼리어답터는 기술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자율의지가 아직까지는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이라는 세계로 들어오는 관문.

페이스북의 세계에 들어오려면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반드시 입력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관음증적인 유혹은 생각보다 강하다. 남의 정보를 보기 위해서라도 가입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가입 후에 페이스북은 끊임없이 나의 취향과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거부할 수도 있지만 기입하는 정보가 늘어날 수록 페이스북이라는 세계에서 더 많은 관심과 노출이 이뤄진다. 문제는 있다. 이렇게 많은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페이스북은 비즈니스를 이어나간다. 정보의 독점과 그 폐해에 대한 경고는 옳은 지적이다. (참고 링크 : 페이스북은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서비스는 상식선에서 아직까지는 합리적이다.
잠깐 네이버북이라는 서비스를 상상해 보자. 네이버북에 접속하면 우선 파워링크 콘텐츠 5개가 눈에 띈다. 스크롤을 내리면 파워이웃 콘텐츠 5개, 지식이웃 콘텐츠 5개, 유명 신문사의 기사링크가 타임라인을 장식할 것이다.
페이스북은 인터페이스를 권력구조와 기술 기반으로 나누지 않고, 사용자와 관련된 구조로 나눴다. 친구들이 더 관심 갖는 이야기를 먼저 노출시키고, 이는 사용자의 관계맺음으로 이뤄진다. 정말 위험한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끊임없이 닥달하고,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는 구글 나우가 더 무섭다. 테슬라의 엘런머스크가 말했듯이 인류의 가장 큰 적은 인공지능일지 모른다.
일례로 페이스북이 아무리 PPSS의 글을 읽으라고 추천해도 나는 읽지 않는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농담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나의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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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은 이름처럼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재의 시간은 과거로부터 자신이 선택한 결과다. 과거의 행동이 현재를 규정짓는 것은 페이스북의 독특한 데이터 마이닝 기법 덕분이다.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성향, 언론, 브랜드에 대한 소식에 ‘좋아요’를 누름으로써 그 소식을 받아 볼 수 있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친구와 친구맺기가 가능하거나 셀러브리티를 ‘팔로우’할 수도 있다. 이런 소셜속의 반응이 타임라인속에 현재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13억의 인구는 모두 페이스북에 접속할 때, 다른 화면을 보게 된다. 13억의 인구가 모두 다른 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웹서비스가 도달해보지 못한 경지다. 모두 같은 인터페이스를 동시에 접하지만 구성된 화면은 모두 다르다. 동일한 지구상에 사는 각자의 이야기를 이처럼 명쾌하게 풀어낸 서비스가 또 있었던가?

인간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은 또 존재한다. 페이스북은 ‘하이라이트’라는 독특한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많은 포스트는 삭제하고, 페이스북이 설정한 알고리즘에 따라 일부 게시물만 볼 수 있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접속할 때마다 평균 1500개의 포스트를 읽어야 하는 페이스북의 구조상의 단점을 극복한 아이디어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의 기억을 묘하게 닮았다. 친구가 관심을 표명하고, 더 공감한 이야기를 오래 남긴다. 타임라인은 인간의 기억력에 대한 비유다. 글보다는 사진처럼 생생했던 순간들이 더 오래 기억된다. 돌아본 기억은 대개 아름답다. 이는 무드셀라 효과를 가장 완벽하게 재현한 예다. https://www.facebook.com/lookback/

 

현실보다 긍정적인 새로운 지구

페이스북은 정교한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모방한 공간이다. 이는 ‘마이스페이스’나 ‘심즈’처럼 외피적 모방이 아니다. 한정된 지구라는 비유를 동일한 인터페이스로 강제했고, 여기에 타임라인과 하이라이트로 각자의 삶을 구현시켰다. 어쩌면 마크 주커버그는 전지자의 입장에서 흐뭇하게 페이스북을 굽어 살피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페이스북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좋아요’를 통해 인간의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우리는 더 많은 ‘좋아요’를 위해 좀 더 젠틀하고, 박애적이며, 공감적인 모습을 비추려 노력한다. 이는 인간의 긍정적인 측면을 극대화시키는 시스템이다. 일종의 사회적 정화효과다.
따라서 나는 페이스북의 세계가 이분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소개하는 누군가의 생각에도 동의할 수 있다.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누군가의 생각에도 동의할 수 있다. 사실 ‘싫어요’라는 버튼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무시다. 페이스북은 이 방식을 잘 활용했다. 페이스북은 “좋아요”만 수렴하는 세계가 아니다. “싫어요”보다 더 무서운 무관심과 팔로우 취소, 심지어 상대방과의 관계를 유지하지만 소식은 전달하지 방법까지 마련했다.
남의 죽음마저도 ‘좋아요’를 눌러야 하는 모순적 공간은 혼란스럽지만 이는 구조상 단점에 불과하다. 원본이 형편없을 때, 모방된 세계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주커버그에게 페이스북은 지구를 축소한 아름다운 동화같은 세계인 디즈니랜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페이스북이라는 디즈니랜드는 현실을 무시한 환상의 공간이 아니다. 어쩌면 인류가 도달해야 하는, 또는 도달할 수 있었던 이상향에 가깝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세계를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 모두와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실현시키겠다.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질 수 있고, 우리는 그렇게 만들 것이다." - 마크 주커버그 인터뷰

 

검색이 불가능한 세계

페이스북이 과거를 단절시키고, 정보를 독점한다고 오해를 사는 이유 중에 하나는 검색을 제공하지 않는 것에 있다. 그러나 페이스북에 검색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페이스북은 복잡한 관계설정과 다양한 옵션으로 자신의 공개 범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에게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울 수 있고(차단), 친구 사이를 유지하면서도 내 글을 못 보게 하는 옵션도 있다(먼 친구). 이런 다양한 개인화 서비스 때문에 검색은 굉장히 복잡해 진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반 검색엔진이 직렬로 연결된 문서를 정렬화시켜 보여준다면, 페이스북은 직렬로 연결된 문서를 공개설정에 따라 결과값을 병렬로 인덱싱하고, 친구와 비친구에 따른 옵션에 따라 다시 병렬화해야 한다. 검색엔진의 검색이 1차원적이라면 페이스북 같은 소셜 서비스는 3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아직까지 인류의 기술이 효과적으로 도달하지 못한 부분이다. 검색이 불가능한 페이스북 방침은 철학적 문제라기 보다는 기술적 문제에 가깝다는 얘기다.

 

솔직히 말해 죄가 무슨 죄냐? 죄를 저지르는 놈이 나쁜거지. (영화 넘버3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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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마크 주커버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처럼 무서운 전인미답의 서비스를 괴짜 유대인 청년에게 맡겨도 되나 하는 의구심도 가끔 든다.
다만 아직 인간의 자율의지는 유효하고, 기술은 죄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 원자력은 폭탄과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태를 일으켰지만 탄소배출을 줄이는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은 튀니지에서 발생한 재스민 혁명을 주도했고, 이집트 혁명에서는 대통령직을 물러나게도 했다. (물론 트위터와 함께지만)
현실속에서 벗어나 사이버 공간속에 매몰되는 세계라는 비판도 있지만 투표참여를 독려하고, 결과적으로 현실을 바꾸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http://www.buzzfeed.com/bensmith/the-facebook-election
페이스북의 누군가는 허세를 하고, 누군가는 화려한 삶을 사는 듯 꾸민다. 그러나 현실도 마찬가지다. 허세로 고급차를 타고, 허세로 멋진 공간만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관음증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 때문에 관음증이 생긴 게 아니라, 인간은 원래 관음의 욕망이 있기 때문에 페이스북을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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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Artigas, CC BY ND

페이스북은 인간의 삶에 대한 거대한 비유이며, 진지하고 복잡한 인간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다. 또한, 원본 없는 복제의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원본, 좀 더 긍정적인 원본, 긍정적일 수 있었던 원본에 대한 실험일 수도 있다.
나는 페이스북이 ‘카르페디엠(현재에 충실하라)’이라는 시대정신을 웹적으로 구현한 철학적 산물이라고 본다. 다만 카르페디엠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과거와 유리된 채, 현재만을 즐기라는 뜻’도 있지만,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뜻도 있다. 나는 페이스북의 가르침이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를 멋지게 만들고, 기억될 수 있도록 공감하라."

마크 주커버그의 생각도 부디 나와 같았으면 좋겠다.

김정철
레트로 제품을 사랑합니다. xanadu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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