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점심 먹고 들어오는 길에 좁아지는 그림자처럼, 습하고 뜨거운 공기 속으로 내 영혼이 녹아 없어지는 기분이다.
이런 날씨에는 정말 함부로 멍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무더위에 지치고 늘어진 마음에 힐링이 필요하다.

 

(에어컨을 켠다.)
오르골의 태엽을 감는다.
눈을 감는다.
마음으로 소리를 듣는다.

그래 이게 힐링 이지.

단조로운 멜로디의 울림을 듣고 있다보면 왠지 모르게 차분해 진다.
기특한 요녀석. 넌 이름이 뭐니?

 

Orgel

오르골의 역사는 중세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던 교회 시계탑에서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각각의 소리를 낼수 있는 여러가지 크기의 종을 울리는 방식이었다.
18세기 말 스위스의 시계장인 앙투안 파브르(Antoine Favre)에 의해 ‘종 없는 카리용(Carillon, 시계탑 등에 설치된 많은 종을 음계 순서대로 달아놓고 치는 악기)’이 서로 다른 음을 낼 수 있는 종 대신 금속핀을 튕겨주는 최초의 오르골로 알려져 있다.
오르골이 발명된 이후 시계, 담뱃갑등 소형화된 오르골 무브먼트를 집어 넣은 제품들이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이때의 오르골은 실린더에 그려진 악보대로 음악이 연주되는 형식이었다.
1880년대 독일에서 동그란 원반에 악보가 그려진 오르골이 발명 되었다. 하나의 오르골만 있으면 원반을 교체해서 다양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되면서 원반형 오르골이 실린더형 오르골의 인기를 대신하게 됬다.
1920년대 토마스 애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의 탄생,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의 영향으로 오르골 산업은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2차 세계대전 유럽에 주둔해 있던 미군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되면서 다시 한번 인기를 끌게 된다.
1950년대 이후 현재는 일본의 Sankyo 사에서 소형 오르골의 무브먼트를 대량생산하면서 세계 오르골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됬다.

 

orgel-04요즘 구매할 수 있는 오르골은 대부분 태엽을 감아 자동으로 미리 들어가 있는 악보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구조다.
내장되어 있는 악보의 한 곡만 연주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음악의 오르골을 수집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월급은 그렇게 ‘스치듯 안녕’ 하는 거니까)

 

orgel-01오르골의 구조가 들여다보이는 제품이라면 안에서 돌아가는 악보가 새겨진 원통과 한번씩 팅기면서 소리를 만들어 주는 핀을 보고 있는것 만으로도 좋지만,
소리와 함께 움직임을 주어 볼거리를 함께 제공해 주는 제품들도 있다.

 

orgel-07대만 출신 동화 작가 ‘지미 리아오’의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라는 책속의 한 장면이 스노우볼 속에 장식되어있다.
매일 습관적으로 지나치는 풍경들 속에 스쳐지나던 두 남여가 만나게 되는 결말의 장면과 함께 뮤지컬 캣츠의 ‘Memory’가 감미롭게 흐른다.

 

orgel-03오르골중에는 내장되어 있는 한가지 멜로디만 연주 할 수 있는 제품들이 대부분이지만 펀칭된 악보를 바꿔가며 다양한 멜로디를 연주 할 수 있는 제품도 준비되어있다.
사용해본 제품은 산쿄의 Organette20 모델. 원하는 악보를 넣고 손으로 손잡이를 돌리면 악보에 뚫린 구멍에 맞춰 멜로디가 연주된다.
구입할때 함께 들어있는 악보외에도 원하는 악보를 만들 수 있는 빈 종이 악보와 펀칭기가 포함되어 있어 원하는 멜로디를 만들어 감상할 수 있다.

 

orgel-02‘힐링’이란 단어가 익숙해진 요즘. 잔잔한 연주곡이나 바람소리, 시냇물 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이들이 많다.
오르골의 태엽을 감아 잠시동안이라도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학대받은 동물의 마음처럼 매말라버린 감성을 달래줄 무엇인가가 필요한 오늘.
오르골을 지르기에 좋은 날씨다.

오늘같은 날에는 나에게 오르골을 선물하자.
실장님
보기에 좋거나 쓰기에 좋은 걸 사고 싶지만 그냥 싼 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