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기계식 시계가 얼마나 연약한 물건인지를 알게 된다면 아마 놀랄 거다.
언젠가 만난 유명 시계 브랜드 서비스센터의 매니저는 수리하러 온 사람 반 이상이 시계가 고장 난 이유를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자동차와 엘리베이터의 문에, 벽에, 걷다가 난간에 부딪히는 정도의 충격으로도 기계식 시계는 망가질 수 있다. 복잡한 기능을 갖고 있거나 우아하게 얇은 고급 시계일수록 더 그렇다. 우리 곁 어디에나 있는 물과 먼지, 자기장 역시 기계식 시계를 고장 내거나 부정확하게 만드는 주범들이다. 기계식 시계의 작동에 문제를 일으키는 ‘적’들과 그걸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낸 기계식 시계들을 소개한다. 아울러 기계식 시계를 소유하고 있다면 다음의 3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1. 시계의 적 : 충격

기계식 시계는 정말 사소한 충격에도 고장이 난다. 심지어 골프장에서 드라이버를 휘두르는 순간의 가속도 때문에 시계 속 부품이 이탈하는 경우도 있다. 고가의 기계식 스포츠 워치라면, 스포츠를 즐기는 동안엔 풀어 두는 게 낫다. 그걸 차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버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기계식 스포츠 시계엔 충격 방지 장치가 들어가 있다. 1930년대 개발된 잉카블록 시스템이 지금까지도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신소재를 사용한 롤렉스의 ‘파라플렉스’ 시스템, 오메가를 비롯한 스와치 그룹의 시계에 들어가는 ‘니바쇽’ 등이 비교적 최근에 나온 해결법 들이다. 하지만 핀셋이 없으면 집을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부품 수백 개가 복잡하게 맞물려 계속 움직이는 방식으로 시각을 표시하는 기계식 시계 특성상 크고 작은 충격에 의해 계속 고장 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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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한 시계 : 브레몽 MB

브레몽은 2002년부터 파일럿 워치를 전문으로 생산해 온 영국의 시계 브랜드다. 브랜드의 가치와전통이 거의 모든 걸 좌우하는 시계 분야에서 신생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끝내주게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거나 기능적으로 두드러지는 장점이 있거나 엄청 저렴한 가격을 매겨야 한다. 브레몽은 ‘튼튼함’을 내세운다. 고전적인 영국식 파일럿 시계의 디자인을 재현한 브레몽의 ‘MB’엔 자체 개발한 충격 방지 시스템이 들어 있다. 무브먼트와 케이스 사이에 신축성 좋은 고무를 채워 넣고 케이스를 여러 겹의 구조로 만들어 충격을 흡수한다. 비슷한 수준의 유명 브랜드 시계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시계 업계에선 거의 유일하다 싶은 ‘3년 품질 보증’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 좋은데 어쩐지 시계 이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뒤의 이니셜이…국내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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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계의 적 : 물

기계식 시계의 내부에 물이 들어가면 금속 부품에 녹이 스는 건 물론, 수심이 깊은 곳에선 압력에 의해 시계 안팎에 변형이 일어나기도 한다. 역시 가장 좋은 건 방수 성능이 있는 시계라도 물에 닿지 않는 게 최선이다. 시계 다이얼에 써 있는 ‘30m 방수’라는 표시는 바다 밑 30m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해도 괜찮다는 표시가 아니다. 대부분의 브랜드에서 일정한 크기의 수조에 인위적으로 공기압을 가하는 방식으로 방수 성능을 테스트한다. 이론적으로 그 깊이에서 안전하다는 의미지만 물 속에서 가만히 가라앉는 사람은 없다. 팔을 휘두르면 몇 배의 수압이 시계에 가해진다. 따라서 30m 방수 시계를 차고 스쿠버다이빙을 한다는 건 시계와의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시계의 방수성능은 영원하지 않다. 특히 시계를 차고 바다에 들어갔을 때는 반드시 점검을 받아야 한다. 시계를 차고 워터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1년에 한 번 정도는 점검하는 편이 좋다. 일반적인 30m 방수 시계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세게 틀어놓고 씻는 것만으로도 고장 날 수 있다. 수영을 하려면 100m, 스노클링이나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면 200m 이상의 방수 성능이 필요하다. 프로페셔널 다이버 워치는 보통 300m 이상의 방수 성능을 가진 시계를 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프로페셔널 다이버는 기계식 시계를 차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물속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꼭, 쿼츠 시계를 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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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한 시계 : 롤렉스 딥 씨 챌린지

롤렉스는 1926년 최초의 방수 시계 오이스터를 개발했다. 케이스와 베젤, 백 케이스, 크라운, 글라스 등 시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꼭 맞게 맞물리도록 만든 최초의 시계. 가장 비싼 시계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규모와 지명도 면에서 롤렉스가 명실상부 최고의 시계브랜드인건 이때부터 한결같이 단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현재 바다 속 가장 깊은 곳까지 다녀 온 시계도 롤렉스의 ‘딥 씨 챌린지’다. 2012년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이 시계를 차고 잠수정으로 마리아나 해구 바닥 10,898m까지 잠수했다. 시계는 물 밖으로 나온 후에도 정상 작동했다. 이론적으로 이 시계는 수중 12,000m까지 방수 가능하다. 엄청 크고(지름 51mm) 엄청 두꺼운(두께 28.5mm) 이 시계에 롤렉스는 티타늄, 질소합금 등 신소재를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이 시계는 현재 구입할 수 없지만 그 밖에 롤렉스의 다이버워치 콜렉션은 대부분 1000m 이상의 방수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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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계의 적 : 자성

대부분의 부품이 금속으로 제작되는 기계식 시계에서 자성은 최악의 적이다. 느끼지 못할 뿐, 자기장을 일으키는 물건은 우리 곁 어디에나 있다. 선풍기, 전기면도기, 헤어드라이기, 하드디스크 등 모터를 사용하는 모든 기계엔 자석이 있고, 음악을 재생하는 스피커에도 꽤 커다란 자석이 들어간다. 클럽의 대형 스피커 앞에서 춤추기 전엔 손목에서 시계를 풀자. 시계가 자성의 영향을 받으면 그 안의 얇디 얇은 스프링(헤어스프링)이 달라붙거나 꼬일 수 있다. 이러면 시계를 들고 서비스 센터를 찾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오랜 세월 많은 브랜드들이 자성에 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시계의 케이스를 두껍게 만들거나 안에 연철을 넣기도 했다. 최근의 추세는 애초에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실리콘으로 시계의 핵심 부품을 만드는 거다. 오메가, 브레게, 율리스 나르덴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 가장 최근의 해결책은, ‘고심 끝에 헤어스프링을 해체…’ 아니 없앤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태그호이어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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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한 시계 : 태그호이어 까레라 마이크로펜둘럼 S

태그호이어는 헤어스프링 대신 시계 안에 자석을 집어 넣었다. 희한한 발상의 전환. N극과 S극이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을 이용해 진자의 일정한 진동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식의 매커니즘이다. ‘까레라 마이크로펜둘럼 S’는 투르비용 메커니즘까지 들어간 호사스러운 시계다. 다만 이 시계는 작년 바젤월드에 등장한 콘셉트 워치다. 즉, 양산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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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한 시계들은 브레몽을 제외하면 가격을 따질 수도 없이 비싸거나 아예 가격표가 없는 시계들이다. 애호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식 시계를 찬다. 결국 계속 돌고 도는 이야기다. 사실 기계식 시계가 가진 문제는 값싼 쿼츠 시계로 대부분 해결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쿼츠는 기계식 시계를 대신할 수 없다. 그리고 어쨌든 기계식 시계의 역사는 크고 작은 문제를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간 과정의 기록이다. 기계식 시계를 차는 건 스스로 그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얼리어답터의 시계 이야기 연재순서

1. 기계식 시계 입문을 위한 5개의 시계

2. 애플 워치가 두렵지 않은 쿼츠 시계들

 

편집 : 김정철 / 본 컬럼은 얼리어답터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규영
갤러리아 매거진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