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가 투자했던 크라우드 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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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저희는 꿋꿋하게 삽니다. 여태껏 그렇게 사 왔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저희 얼리어답터가 직접 펀딩했던 제품들 말입니다. 지금까지 13개나 샀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반 년이나 지났는데 하나도 안 와요.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특성상, 기다림은 필수이긴 하지만, 기다리는 게 힘들다는 사실은 알지만, 힘들어도 너무 힘듭니다. 왜 이렇게 안 올까요? 제품을 만들다가 갑자기 절이라도 들어간 걸까요? 짐을 실은 비행기가 테러라도 당한 걸까요? 나를 싫어하나? 혹시 돈을 떼먹고 잠적했나? 신고를 해야 되나…

 

아이디어에 투자해서, 세상을 바꿀 제품을 사는기다리는 크라우드 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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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저희 얼리어답터가 유독 좋아하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신박하고 재밌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에게 조금씩 돈을 투자하면 그 돈으로 제품을 완성하죠. 하지만 물건을 받기까지 힘든 건 기나긴 기다림 때문입니다. 장/단점을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장점
– 쉽게 살 수 없는 제품을 갖는다는 유니크한 매력이 있다, 진정한 얼리어답터가 된다!
– 나의 투자로 좋은 물건이 탄생되었을 땐 뿌듯함과 자부심도 느낄 수 있다!
– 빨리 투자하면 나중에 정식으로 출시될 때보다 싸게 살 수 있다!
단점
– 해외 사이트라면 영어의 압박을 견뎌야 한다…
– 사기를 당하는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 최소 몇 개월에서 1년 넘게도 기다려야 한다…
– 돈이 안 모이면 프로젝트가 사라진다…

 

희비가 엇갈리는 크라우드 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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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업계에서 가장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라고 부를 만한 짱짱맨 제품이 있다면 단연 ‘페블(Pebble)’이 아닐까 합니다. 스마트워치의 1세대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2012년에 시계와 스마트폰을 결합한 아이디어로 스마트워치의 개념을 선보이며 무수한 돈을 긁어모았죠. 목표 금액의 10배가 넘는 약 1000만 달러 이상을 모았습니다. 그 뒤로 페블은 여유롭게 축배를 들며 페블 타임 스틸, 페블 타임 라운드, 페블 헬스 등 지금까지 다양한 스마트워치 라인업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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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크라우드 펀딩 제품은? 저는 최근의 면도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스카프(Skarp)라는 녀석인데, 보통의 면도기처럼 생겨서 무려 레이저로 털을 제거한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자랑했죠. 킥스타터를 통해 46억에 달하는 모금을 했지만, 어쩐지 프로젝트는 갑자기 종료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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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스타터에 따르면 시제품이 보이지 않아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였습니다. 하긴 그렇기는 했죠. 그래서 결국 스카프를 만든 팀은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운 인디고고에서 다시 모금을 시작합니다.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역시 인디고고에서도 엄청난 모금액이 모였습니다. 올해 6월쯤 제품이 완성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네요.

 

그분이 오셨다

어쨌든, 어느 추운 날 드디어 저희에게 뭔가가 왔습니다. 저희 얼리어답터 사무실에는 하루에도 몇 개의 택배 박스가 수시로 오지만 이번 건 느낌이 좀 달랐죠. 순간 봄이 찾아온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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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 봉투의 그것은 무려 DHL! 정갈한 태도로 서명을 받고 떠나시는 노란 점퍼의 기사님. 역시 DHL은 뭔가 다르네요. 물 건너 온 물건이 더 궁금해지는 건 인지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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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크기에 놀라고, 이게 도대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지난 여름에 펀딩했던 넥스트 드라이브 플러그(NextDrive Plug)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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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에 샀던 게 가장 먼저 오다니,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모르겠습니다. 여튼 저희 사무실 내부에서 무려 2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선택되었던 물건이었죠. 펀딩했던 가격은 90달러(약 11만원)입니다. 배송비 포함해서요. 나쁘지 않죠?

 

이 녀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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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드라이브 플러그의 정체는 아기 주먹만 한 클라우드 시스템입니다.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어댑터 정도 되는 작은 크기인데요. 여기에 하드 디스크를 꽂으면 나스(NAS)처럼 인터넷 스토리지로 쓸 수도 있고, 웹캠을 달면 원격 CCTV로도 변신하는 다재다능한 제품입니다.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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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드라이브 플러그를 만든 팀은 타이완의 젊은이들입니다. 회사를 만든 지는 3년이 채 안됐지만, 2015년 대만 컴퓨터 박람회에 자신들의 이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죠. 게다가 이들의 모토는 인간 중심의 사물 인터넷 솔루션을 구축해서 미래의 스마트홈을 만드는 거라고 하네요. 너무나도 건설적이고 희망찹니다. 저도 올 새해 목표는 ‘헬스장 다니기’같은 하찮은 거 말고 더 대국적인 다짐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능력을 살펴보면
– iOS 8.0 이상 아이폰, 안드로이드 4.0 이상 지원(NextDrive 어플)
– 맥, 윈도우 PC 프로그램도 지원(하지만 아직 몇 개월째 개발 중)
– USB 포트는 한 개(USB 2.0)
– 와이파이 802.11 b/g/n (ac는 지원하지 않아서 2.4GHz로만 연결됨)
– 블루투스 v4.0
– 전원 Input : 100V-240V 50/60Hz 0.45A
– USB Output : 5V 2.1A (스마트폰, 태블릿도 충전 가능)
– 무게 90g (작고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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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한 종이상자에 들어있는 거라곤 조그만 본체와 100V 플러그, 영어/중국어로 된 사용 설명서 하나. 샤오미 제품을 살 때도 매번 느꼈던 거지만, 중국어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그랬어요. 저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중국어였는데, 지금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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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그를 꽂는 부분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대로 멀티탭에 딱 꽂으면 좋으련만… 역시나 220V 돼지코가 필요하죠. 역시 난감합니다. 철물점에서 천 원밖에 안 하긴 해도요. 저는 책상에서 쓰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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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난 게 바로 이 케이블. 건전지 충전기에 들어있던 녀석을 꽂아주니 그야말로 완벽! 바닥에 있는 멀티탭에서 책상 위로 쭉 끌어올리니 편하네요. 퍼렇게 불도 번쩍번쩍 들어옵니다. 불 들어오는 건 신발이든 뭐든 참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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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할 일은 블루투스로 넥스트 드라이브 플러그를 찾아 인터넷에 붙여주는 것. 그러면 나중에는 어디서든지 이 녀석에게 들러붙어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죠. 접속은 스마트폰 어플로 가능합니다. 별다른 복잡함 없이 비밀 번호 정도만 만들면 되니 참 쉬웠습니다. 인터페이스도 쉽고 깔끔하죠. 다만 좀 아쉬운 건… 빠른 5G는 못 찾고 2.4G로만 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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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USB를 꽂으면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파일을 볼 수 있습니다. 음악도 듣고, 사진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예능도 보고! 폰으로 찍은 사진을 여기에 백업도 할 수 있죠. 저는 구글 드라이브에 꼬박 꼬박 저장하니 별로 쓸 일은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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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파일을 인터넷으로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하고 편리한 일입니다. 다음 클라우드가 없어지고 네이버 클라우드의 30G는 애매할 때, 아예 큰 외장하드를 꽂아 놓는다면 그걸로 개인 클라우드가 만들어지는 편한 마법!

 

6개월을 기다렸는데, 잘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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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좋은 물건이긴 합니다. 제일 좋은 점은 나만의 클라우드를 너무 쉽게 만드는 것. 그리고 웹캠이나 CD-ROM을 인터넷 연결로 쓸 수 있는 점은 보너스라고 느껴집니다. 장치를 문어발처럼 여러 개 연결해도 쓸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USB 허브를 꽂아봐도 인식은 안 됐습니다. USB 구멍을 아예 더 달아서 이것저것 한꺼번에 쓸 수 있게 했다면 좀 더 유용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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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이미 집에 나스를 만들어놓아서 큰 메리트는 없었습니다. 회사에 USB와 함께 세팅해 놓으니 집에 와서 업무 환경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던 장점 아닌 장점은 있었죠. PC용 프로그램도 빨리 만들어줘서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컴퓨터에서도 자유롭게 파일을 관리할 수 있다면 개인 클라우드로 충분히 더 좋은 제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품이 완성되었던 11월부터 일반 쇼핑몰에서도 판매가 시작되었죠. 아마존에서도 99.99달러(약 12만원)에 팔고 있네요.

그럼 이쯤에서 잠시 계산을 해보죠. 저희가 샀을 때보다 약 1만원 정도가 비싸졌습니다. 저희는 몇 달을 기다려 물건을 받았는데, 투자를 할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요?

 

채점

– 제품은 얼마나 창의적인가? : 50점
외장하드나 USB외에 CD-ROM, 웹캠을 꽂아 쉽게 쓸 수 있는 건 좋지만 샤오미 라우터처럼 공유기에 바로 꽂을 수 있는 물건도 요즘엔 많죠. ‘맘카’처럼 편리한 홈 CCTV도 있으니 매력이 조금은 반감되기도 합니다.
– 기다림은 아깝지 않았는가? : 65점
반 년 동안의 기다림에 비해 조금 허무한 느낌도 들지만, 제품의 상태나 어플의 인터페이스는 괜찮은 편입니다. PC용 유틸리티도 빨리 나왔었다면 더 좋았겠네요.
– 투자 금액은 적절했는가? : 85점
지금은 아마존에서 12만원에 살 수 있고 저희가 샀을 때는 11만원이었습니다. 더 빨리 투자했었다면 7~8만원 정도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가격입니다.
– 제품은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은가? : 80점
스마트폰 하나로 집 안의 모든 것들을 조종할 수 있는 사물 인터넷 시대가 다가옵니다. 특출나진 않지만 가능성을 보여준 제품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next drive plug earlyadopter crowd funding series (18)처음 받아 본 펀딩 제품 치고는 잘 만들어진 짜임새와 특징, 적절한 가격까지.
지금 와서는 그닥 필요가 없어졌지만 한 번쯤 써볼 만한 물건

 

넥스트 드라이브를 더 잘 쓸 것 같은 분들
– 나스고 뭐고 어려워서 잘 모르겠고, 영상 들어있는 외장하드 하나 꽂아 놓고 폰으로 보고 싶은 분
– 포털의 클라우드 서비스는 찜찜하고, 남는 USB를 부담 없이 꽂아서 내 클라우드를 만들고 싶은 분
– 아이가 잘 노는지 궁금한데 마침 웹캠이 집에 하나 굴러다니는 분

 

반 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처음으로 펀딩 제품을 써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제품은 뭐가 올지 기대가 되는데요. 뭐라도 좋으니 빨리 오기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젝트 진행들이 얼마나 됐는지, 중간 상황을 한 번씩 훑어보고 미지근한 팀들에겐 채찍질(?) 좀 해줘야겠습니다.

 

박세환
여러분의 잔고를 보호하거나 혹은 바닥낼 자신으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