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다세네두여섯일곱여덟아홉시자정이삼십사오십오분

주문이 아닙니다. 랩 가사도 아니고요. ‘한글시계’ 글자판에 쓰여있는 25자의 한글입니다. 단 25자만으로 시간을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나요? 새삼스레 한글의 위대함이 느껴집니다. 영어였다면 몇 배의 알파벳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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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최근 온라인에서 네티즌의 눈을 사로잡은 그 시계, 국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와디즈에서 펀딩을 받고 있는 그 시계, 한글시계를 아직 펀딩 중이지만 미리 만나봤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리뷰용 제품을 흔쾌히(?) 지원해주신 Daddy’s Lab과 와디즈의 담당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리뷰는 제공받은 제품 기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펀딩이 종료된 후 실제 제품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참고 링크 : 와디즈

장점

– 한글의 놀라움을 느낄 수 있다.
– 한글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 DIY가 가능하다.

단점

– 메인보드가 노출되어 있어 불안하다.
– USB 케이블을 연결해야만 한다.
– 3D 프린터의 퀄리티가 아쉽다.

 

이게 정식 패키지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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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로 만들어진 패키지 위에 간단하게 부착한 Daddy’s Lab 스티커. ‘이게 전부일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단순합니다. 굳이 특징을 짚어낸다면 100% 재활용 종이라는 정도? 사실 패키지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또 펀딩이 아직 끝나지 않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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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를 열면 새하얀 한글시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역시 단순합니다. 한글시계 본체와 USB 케이블이 전부죠. 패키지든, 구성품이든, 어떤 탁상시계라도 이 정도 수준일 테니 별다른 아쉬움은 없습니다.

 

세종대왕도 아름다워할 만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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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크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본체는 8x8cm로 아담한 크기입니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왠지 일반적인 탁상시계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요. 실제로 보니 의외로 작은 크기에 살짝 놀랐습니다. 물론 실망감이라기보다는 귀여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글시계 05

억지스럽지만 손목에 차고 다닐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아주 잠깐 생각해 봤습니다. 글자판만큼은 손목시계로도 전혀 손색없어 보입니다. 한글시계 최초의 모티브가 된 ‘클락투(QLOCKTWO)’는 손목시계 버전도 있는데 한글시계라고 불가능할 건 없겠죠.

한글시계 06

USB 전원을 연결하면 ‘O시O분’이라고 해당되는 글자판에 불을 밝혀 시간을 알려줍니다. 불이 들어오면 아름다움이 더욱 배가됩니다. 각 글자의 크기는 1x1cm고요. 크기가 크기인지라 다소 작게 느껴지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여섯+시+이+십+오+분처럼 여기저기 복잡하게 불이 들어온 모습일수록 아름다워 보이네요. 반대로 네+시+십+분처럼 단순한 모습은 좀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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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특별한 심심함도 있습니다. 정오와 자정이죠. 단 두 글자에만 불이 들어올 뿐이지만 왠지 꽉 차게 느껴집니다. 글자판에 별도의 오전, 오후 표시가 없는데 열한시 오십오분 다음에 정오나 자정, 어떤 불이 들어오는가에 따라 시간을 제대로 맞췄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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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시 오십오분 다음에 정오나 자정? 그렇습니다. 한글시계는 5분 단위로 끊어서 시간을 알려줍니다. 25자 만으로 24시간을 전부 표시해주는 줄 알았는데 살짝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네요. 1~9분 단위까지 표시할 수 있다면 8자가 더 필요하네요. 그래도 33자 밖에 안되네요. 정사각형 비율이 맞지 않지만 1~9분 단위까지 표시해주는 한글시계도 나와준다면 좋겠습니다.

 

등짝… 등짝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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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이 동반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글자판과달리 뒤판은 엔지니어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마치 귀여운 여대생을 만났는데 알고 봤더니 공대생? (공대생을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반전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자 공대생 자체도 반전의 매력을 지닌 캐릭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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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는 해도 메인보드가 노출된 뒤판은 아쉽습니다. 메인보드가 그대로 들여다보이니 고장 난 시계가 떠오를 수밖에 없죠. 파손의 위험도 있어 보이고요. 뒤판까지 PLA 재질로 덮여있다면 어땠을까요? 제작 단가는 올라가겠지만, 3D 프린터로 만들어졌으니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일 것 같습니다. 펀딩 종료 후, 그 이후의 양산 제품에서 살짝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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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해 보이지만 구조는 간단합니다. 복잡한 메인보드는 사실 눈여겨볼 필요는 없고, ‘시’와 ‘분’을 조정하는 두 개의 버튼과 USB 전원을 분리했을 때도 시간을 기억하기 위한 납작한 배터리, USB 케이블 연결 단자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작은 하얀색 버튼도 있는데요. 리셋 버튼입니다. 유틸리티 사용 중 버벅거릴 때 누르면 깔끔하게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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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시계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꼭 USB 전원을 연결해야만 하죠. 사용하는 케이블은 약 30cm 길이의 미니 USB 규격입니다. 스마트폰 충전할 때 쓰는 마이크로 USB 케이블이 아니라 좀 더 도톰한 미니 5핀입니다. 오랜만이네요. 요즘은 보기 쉽지 않은데요. 마이크로 USB 규격이었다면 훨씬 유용했을 것 같습니다. 길이도 그리 길지 않으니 말이죠. 노트북에 좀 떨어뜨리고 싶다면 보조배터리를 사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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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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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을 누르면 시간이 바뀝니다. 우측 버튼은 ‘시’ 버튼으로 누르면 1시간씩 바뀝니다. 좌측 버튼은 ‘분’ 버튼이고요. 누르면 5분 단위로 올라갑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1~9분 표시는 불가능합니다. Daddy’s Lab에 따르면 중간 시간을 기준으로 잡는다고 하는데요. 58분부터 2분까지가 정각이라고 하네요. 2~3분 정도라면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겁니다. 한글이 가미된 제품에서는 디자인이 어떻든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느껴지는데 한글시계에는 이런 아름다움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여유까지 담고 있습니다.

 

굳이 DIY를 하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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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버튼을 3초 이상 길게 누르면 USB 전원을 연결했을 때와 동일한 USB 전원을 현란한 빛의 향연이 진행되고 글자판 전체에 불이 들어옵니다. 이 빛을 이용해 한글시계를 디지털 액자로 활용할 수 있는데요. 3D 프린터로 사진을 출력만 하면 됩니다. 간단하네요. 다만 얼리어답터에 3D 프린터가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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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전용 유틸리티를 이용해 한글시계를 간단한 사물인터넷(IoT) 디바이스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시간대신 아이콘을 표시할 수도 있는데요. 총 8개까지 아이콘을 지정할 수 있고 아이콘 수에 따라 무한 반복됩니다. 미세하게 번쩍거리는 게 신경 쓰입니다. 노트북 옆에 놔뒀더니 자꾸만 시선을 뺏기네요. 왜 이래야 하는지는 모르겠군요. 그냥 시간을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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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표시도 가능합니다. 아이콘과 마찬가지로 조금 정신없습니다. 맑은 날은 내리쬐는 햇살을 묘사한 듯 네모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무한 반복하고 흐린 날은 구름처럼 불빛이 마구 흘러갑니다. 어떻게 말로 설명하기가 그러네요. 여자 공대생이긴 한데 맑은 날은 맑아서, 비 오는 날은 비 온다고 정신 없이 노는 걸 좋아하는 여자 공대생 느낌? 그냥 시간을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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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틸리티 사용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한글시계인데 유틸리티는 영어로 되어 있지만요. 몇몇 버그처럼 보이는 부분도 보였습니다. 날씨 표시 후 아이콘으로 넘어간 경우 다시 날씨가 표시되고, 마찬가지로 날씨에서 시간으로 넘어갔을 때도 다시 날씨가 표시되더라고요. 날씨나 아이콘이나 다시 시간 표시까지 전환되는 게 조금 느리기도 합니다. (답답하면 뒤판에 리셋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그냥 한글시계에 이런 기능이 있다 정도로만 만족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시간만 계속 보는 걸로.

 

3D 프린터의 한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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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시계는 3D 프린터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표면이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층간의 결이 보이는 것은 물론 일정하지도 않죠. 살짝 실망할 뻔했지만 아직 3D 프린터의 품질이 이 정도니 이해하고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볼 필요가 없는 시계라서 다행이죠. Daddy’s Lab은 프로젝트 참여자가 너무 많을 경우 레이저 커팅이나 금형으로 제작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요. 크라우드 펀딩이 4일 남은 현재 목표액의 무려 534%를 달성했으니 어쩌면 3D 프린터로 만든 한글시계가 리미티드 에디션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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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판과 바둑판 모양의 본체는 단단히 고정됩니다. 다만 본체와 메인보드는 다소 헐겁습니다. 메인보드를 붙들고 있는 홈이 하나뿐이고 나머지 세 군데는 그냥 걸쳐 있기만 해서 버튼을 누르다가도 분리되고 받침대에서도 쉽게 빠져버리죠. 정신없이 놀기 좋아하는 여자 공대생인데 약간은 엉성한 구석이 있다고 할까요? 부디 얼리어답터가 입수한 한글시계만 이러기를 바랍니다.

 

시계는 시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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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시계는 한글의 놀라움과 위대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시계입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 중이고, 펀딩 종료 전에 받은 제품이라 아쉬운 부분도 있죠. 때문에 정신없이 놀기 좋아하고 엉성한 구석을 지니고 있는 여자 공대생 같은 시계이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잔재주를 부리기는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시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글시계 24

 

펀딩 하세요

– 한글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분
–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가미된 데스크토이를 원하는 분
–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프로젝트가 실패했던 분 (534% 달성입니다.)

펀딩 하지 마세요

– 책상 위 노트북 옆에 시계가 필요 없는 분
– 3D 프린터의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분
– 어쨌든 크라운드 펀딩을 믿지 못하는 분
※ 본 리뷰에 사용된 제품은 와디즈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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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 액수의 적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