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90년대의 소리를 찾아서

ⓒ 서편제
ⓒ 서편제

90년대 스타일 발라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전에 미리 갖춰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90년대의 소리를 찾는 것. 제작 계기부터 장비 구입까지.

 

같은 시간 속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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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속의 너 : 보컬 멜로디를 자연스럽게 보조하는 절제된 편곡이 인상적이다.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좋은 멜로디를 만드는 일인 것 같다. ⓒ 인넥스트트렌드

 

어떤 악기도 무리해서 튀어 나오지 않는다. 극적인 반전을 강요하기 위한 장치도 없다. 보컬의 목소리와 멜로디를 보조하는데 주력한, 기본에 충실한 편곡이었다. 불필요한 메시지가 많은 시대라서 그런가? 많은 것을 덜어냄으로써 오히려 돋보이는 음악이었다. 물론 그만큼 보컬의 역량을 신뢰하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같은 시간 속의 너(작사/작곡 나얼, 편곡 강화성)’ 이야기다. 한 동안 이 노래에 푹 빠져 지냈다.

 

90’s

실제 악기 연주를 레코딩하거나, 전자 악기를 사용하더라도 실연 사운드에 근접한 편성을 지향하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라면, 90년대 발라드는 신디사이저가 중심이었다. 건반, 드럼, 베이스, 브라스, 스트링 등 상당수의 악기가 신디사이저 혹은 샘플러가 만들어낸 전자 신호로 채워졌다.

리얼 악기 연주와 풍성한 대편성 편곡에 익숙한 지금의 귀로 듣기엔 성기고 빈약하게 느껴지지만 요즘 음악과 다른 독특한 감성과 매력이 그 시절 음악에 담겨 있다. ‘같은 시간 속의 너’는 그런 오래된 감성을 일순 소환하는 힘을 가진 노래였다. 따뜻한 톤의 EP(전자 피아노)와 리드로 구성된 소박한 인트로는 쉽게 그 시절의 감성들을 되살려냈다.

궁금해졌다. 나 같은 초보자도 그런 노래를 만들어볼 수 있을까? 무작정 도전해보자. 90년대 스타일 발라드 만들기.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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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데…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같은 시도를 한 적이 있다. ‘90년대 발라드’라는 몹시 직접적인 제목을 붙였던 그 노래는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멜로디는 어색했고, 낯뜨거운 가사는 겉돌았다. 원하는 톤의 악기를 찾는 데도 실패했다. 믹싱, 마스터링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는 것도 문제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운드였지만 고칠 방법을 몰랐다. 결국 끝까지 참고 듣기 어려운 음악이 되고 말았다. 그 때의 실패로 배운 것이 있어야 했다.

 

90년대의 소리를 찾아서

최우선 미션은 90년대 톤을 간직한 악기를 찾는 것이다. 내가 ‘90년대 가요(특히, 발라드)’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악기들의 전형적인 음색은 다음과 같다(사람마다 크게 다를 것이다).

 

요런 감성을 소환해야 하는 미션
요런 감성을 소환해야 하는 미션

 

드럼 : 풀 스윙으로 곤장을 치는 듯한 강력한 타격감의 스네어(금속 울림줄이 달린 작은 북으로 드럼 연주 시 ‘쿵빡’에서 ‘빡’을 담당한다. 곡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기에 톤 메이킹이 중요하다.). 당시에는 조용한 발라드에도 풀파워의 스네어가 등장하여 사람을 놀라게 했다.
EP : 대개는 알맹이가 비어있는 듯한 소리이며, 대신 음이 사라지고 남는 잔향이 강하다. 코러스, 리버브 등 공간감을 부각시키는 이펙트가 강하게 걸려 있다.
베이스 : 일렉 베이스보다는 콘트라베이스의 뭉툭하고 텁텁한 음색에 가깝다. 미들 영역이 강조되어 도드라지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기타 : 별도의 앰프 출력을 거치지 않고 다이렉트로 녹음되어, 흔히 말하는 댐핑(음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이 없고 가볍게 날리는 소리가 난다. 조용한 발라드 곡에도 드라이브(찌그러진 소리) 깊게 걸린 강렬한 기타 솔로가 등장해 역시 사람을 놀라게 했다.
브라스 : 신디사이저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브라스 소리. 실제 금관 악기의 음색과는 큰 차이가 있다. 가볍고 얄팍하고 촐싹 맞은 음색이 많이 쓰였다.

 

실패작이었던 ‘90년대 발라드’는 기타를 제외한 모든 악기를 VSTi로 만들었다. 악기 별로 원하는 소리를 찾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뒤졌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리얼 악기에 가까운 고용량의 프로그램이 많지만 VSTi는 가상 악기 특유의 느낌이 배어 있다. 악기 별로 정도는 다르지만 아날로그 지향의 음악을 만드는 데 VSTi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VSTi는 소프트웨어 형태의 가상 악기를 말한다. 전자 신호를 소스로 하는 소리부터 실제 악기를 레코딩한 VSTi까지 다양한 악기가 존재한다. 10MB 내외의 가벼운 악기도 있지만 실제 악기의 매우 디테일한 부분까지 잡아낸 VSTi는 수십 기가바이트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VSTi는 소프트웨어 형태의 가상 악기를 말한다. 전자 신호를 소스로 하는 소리부터 실제 악기를 레코딩한 VSTi까지 다양한 악기가 존재한다. 10MB 내외의 가벼운 악기도 있지만 실제 악기의 매우 디테일한 부분까지 잡아낸 VSTi는 수십 기가바이트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장비 지르기

VSTi가 아닌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어떻게 90년대 소리를 만들 수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당시 뮤지션들이 사용하던 악기를 구하면 되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키보디스트 양태경 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실마리를 발견했다. Roland사의 JV1000이라는 악기인데 꿈에 그리던 EP 소리가 났다. 샘플로 연주한 ‘Chaka Khan’의 ‘Through The Fire’는 감동이었다.

 

 

오래 전 단종된 모델이기에 중고 장터를 뒤졌지만 매물이 없었다. 대신 같은 음원을 공유하는 XV-3080이란 모델을 발견했고 구입했다. 약 170만 원에 판매되던 이 모델의 현 중고가는 30만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악기치고는 몹시 소박한 가격이다. 그만큼 최근에 이런 (촌스러운?) 소리를 찾는 사람이 드물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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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and의 XV3080 : EP, 패드, 드럼, 브라스, FX 등 다양한 음원을 내장하고 있다. 음원과 모듈레이터만 있으므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마스터키보드 등의 별도 입력 장치가 필요하다.

 

EP와 패드(넓게 퍼지는 잔향에 초점을 맞춘 악기. 악기와 악기 사이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에 강점이 있는 XV-3080이지만 드럼 사운드는 취약했다. 소리에 힘이 없어 댐핑이 부족하고 특색도 없었다. 곤장을 치는 듯한 강력한 스네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같은 블로그에서 발견한 Korg의 01/Wfd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01/Wfd에 내장된 드럼은 린(Lynn) 드럼 계열에서 파생된 소리로 아래 영상에서 보듯 훌륭한 파괴력과 타격감을 자랑하고 있다.

 

 

Korg의 01/Wfd : 제품명의 fd는 플로피디스크를 의미한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통해 음원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악기가 얼마나 오래된 골동품인지 감히 추측할 수 있게 한다. 현재 중고가는 약 40만 원.
Korg의 01/Wfd : 제품명의 fd는 플로피디스크를 의미한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통해 음원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악기가 얼마나 오래된 골동품인지 감히 추측할 수 있게 한다. 현재 중고가는 약 40만 원.

 

좀 더 쾌적한 작업 환경을 위해 마스터키보드도 함께 구입했다. 마스터키보드는 음원이 내장되어 있지 않은 건반 형태의 미디 입력 도구를 말한다. 주로 XV-3080과 연결하여 사용하게 될 것이다. 가성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M-Audio사의 Axiom61을 구매했다. 신품 판매가는 약 45만원.

 

M-audio의 Axiom61 : 61개의 건반으로 이뤄진 보급형 마스터키보드. 리듬 컨트롤 등 편의를 위한 8개의 터치 패드(우측 상단)를 제공하지만 입력 센서가 민감하지 않아 큰 도움은 안 된다.
M-audio의 Axiom61 : 61개의 건반으로 이뤄진 보급형 마스터키보드. 리듬 컨트롤 등 편의를 위한 8개의 터치 패드(우측 상단)를 제공하지만 입력 센서가 민감하지 않아 큰 도움은 안 된다.

 

악기가 만들어낸 소리를 PC로 받기 위해 오디오 인터페이스도 필요했다.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Focusrite의 Scarlett 2i4를 구입했다. 가격은 약 22만원.

 

Focusrite의 Scarlett 2i4 : 2개의 신호 입력과 4개의 신호 출력이 가능한 오디오 인터페이스. 미디 인아웃을 함께 제공한다. PC에서 입력한 미디 신호를 XV-3080과 01/Wfd로 보내기 위해 미디 아웃 단자가 있는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필요했다.
Focusrite의 Scarlett 2i4 : 2개의 신호 입력과 4개의 신호 출력이 가능한 오디오 인터페이스. 미디 인아웃을 함께 제공한다. PC에서 입력한 미디 신호를 XV-3080과 01/Wfd로 보내기 위해 미디 아웃 단자가 있는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필요했다.

 

이로써 장비는 어느 정도 구색이 갖추어졌다. 이제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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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명상이 취미인 호랑이